[포럼] 과정의 디자인, 길 위에서 길을 묻다
얼마 전 지하철역 앞을 걷다가 오랜만에 그 말을 들었다. "도를 아십니까?" 예전 같으면 웃으며 지나쳤겠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그 말이 오래 남았다. 도(道)는 길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모두 길 위에 서 있다. 길을 찾기도 하고 잃기도 하며, 때로는 돌아가고 멈추기도 한다. 인생은 목적지보다 그 길을 걸어가는 과정에 더 가까운지 모른다.
요즘 세상은 유난히 빠르고 시끄럽다. 주식과 인공지능, 새로운 기술이 하루도 쉬지 않고 사람들을 흔든다. 모두가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고 싶어 한다. 그래서 지름길은 유혹이 되고, 과정은 종종 생략된다. 그러나 인생에 정말 지름길이 있을까. 6·3 대선 이후의 정치 풍경도 비슷해 보인다. 승패는 갈렸지만 갈등은 여전하다. 서로 다른 길을 말하지만 정작 길의 방향보다 결과와 속도에 더 몰두하는 듯하다. 개인도 사회도 과정이 흔들리면 결국 길 위에서 길을 잃게 된다.
철학의 본래 뜻은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다. 정답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놓치지 않는 태도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새 질문보다 답을, 과정보다 결과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은 디자인을 결과물로 이해한다. 하지만 좋은 디자인은 완성의 순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질문하고, 관찰하고, 실패하고, 다시 수정하는 시간 속에서 탄생한다. 결국 디자인의 본질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다.
나는 오랫동안 도시와 공간, 색채와 디자인을 연구해 왔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은 도시도 사람도 완성되는 존재가 아니라 성장하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서울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역시 그랬다. 처음에는 낯설고 이질적이라는 평가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건축과 도시는 완공되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만나고 기억을 품고 시간을 축적하며 자신의 의미를 만들어간다. 오늘의 DDP는 건물이 아니라 경험과 문화가 자라는 플랫폼이 되었다. 도시의 공간 또한 하나의 가능태로 바라보아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가능태와 완성태의 존재로 설명했다. 도토리 안에는 이미 거대한 참나무가 들어 있다.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자기 안에 아직 피어나지 않은 가능성을 품고 살아간다. 인공지능은 수많은 답을 내놓는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지 삶의 목적까지 대신 정해주지는 못한다. 그 질문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앞으로 더 중요한 것은 기술보다 자기 기획력일 것이다.
니체는 말했다. "목적지보다 중요한 것은 춤추며 가는 길이다." 우리는 너무 자주 목적지만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좋은 삶은 가장 빠른 길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장 정직한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실패와 시행착오조차 우리가 샤랑해야 할 길의 일부다. 되돌아보니 그렇다.
도토리가 하루아침에 참나무가 될 수 없듯 사람도 삶도 공간도 시간을 품으며 성장한다. 오늘, 내 안의 작은 도토리를 떠올려 보자. 그것을 정성껏 키워 한 그루의 참나무로 만드는 일, 그리고 그 나무들이 모여 더 건강한 숲이 되어 누군가의 쉼과 숨결이 되어주는 일, 그 과정이 결국 한 사람의 삶을 빛나게 하지 않을까.
김현선 서울디자인재단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