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민생 실패에 무너진 英 스타머, 우리도 경고 새겨야
브렉시트 10년 6명 총리 교체
개혁미루면 더 큰 비용과 대가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22일(현지시간) 집권 2년 만에 사임을 공식 발표했다. 지난해 총선에서 노동당 압승을 이끌며 14년 만의 정권교체를 이뤘던 정치 지도자가 지방선거 참패와 고물가 책임을 지고 결국 결단을 내린 것이다. 스타머의 퇴진은 한 정치인의 실패로만 볼 일은 아니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은 데이비드 캐머런부터 스타머까지 10년간 총리 6명이 교체되는 혼란의 연속이었다.
정권이 바뀌어도 민생은 나아지지 않았고 성장동력은 계속 약화됐으며, 공공서비스의 질은 떨어지고 재정 여력은 소진돼 갔다. 브렉시트는 주권 회복이라는 정치적 구호로 포장됐지만 실상은 무역장벽, 투자위축, 인력난, 생산성 둔화라는 대가를 치르게 한 것이다. 스타머를 선택했던 유권자들은 영국의 변화를 갈망했지만 달라지는 것 없는 현실 앞에서 주저 없이 등을 돌렸다. 스타머의 퇴진은 영국의 구조적 피로감의 산물로 봐야 한다.
체력 고갈은 영국만의 일이 아니다. 유럽의 또 다른 심장인 독일 경제도 비슷한 고통의 터널에 갇혀 있다. 독일은 한때 제조업 강자, 수출 강국, 재정 건전성의 모범국이었다. 하지만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이 과했고 여기에 중국시장 둔화, 전기차 전환 지연, 과도한 규제와 관료주의가 한꺼번에 발목을 잡았다. 인공지능(AI) 속도전에서도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다. 독일은 일찍이 정밀제조와 자동차 산업에서 압도적 성공을 거뒀지만 과거의 공식이 AI 대격변기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프랑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원전·관광·문화산업 등에서 강점을 갖고 있지만 높은 공공지출과 재정적자, 연금개혁을 둘러싼 사회 갈등은 심각한 부담이다. 흥미로운 것은 한때 유럽 재정위기의 상징이던 남유럽 국가들이 오히려 반전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스와 이탈리아는 한때 '피그스(PIGS)'로 불리며 유로존의 약한 고리였으나 혹독한 구조조정과 재정 관리로 체질개선을 이뤄냈다. 유럽 맹주들이 과도한 복지와 개혁 실패로 글로벌 입지가 약화된 것과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
영국의 잇단 총리 교체와 유럽의 엇갈린 흐름은 한국 경제에도 중요한 교훈을 준다. 포퓰리즘과 정치적 구호가 경제 성과를 대신할 수 없다. 과거의 성공 산업에 안주하면 순식간에 주도권을 잃게 된다는 사실도 다시금 되새길 필요가 있다.
우리 경제는 지금 반도체 호황이라는 강력한 순풍을 타고 있다. AI 시대가 열리면서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첨단 반도체 수요가 폭발했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수출과 증시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세계는 한국 반도체를 다시 주목한다. 성장률 전망도 반도체 덕분에 개선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호황이 한국 경제 전체의 체질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는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반도체 기업의 실적과 주가는 뛰지만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청년층과 서민의 체감경기는 싸늘하다. 증시와 부동산은 펄펄 끓는데 임금과 일자리, 주거안정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반도체에만 기댄 경제는 예기치 못한 리스크에 고꾸라질 수 있다. 글로벌 기술 사이클과 미중 갈등, 공급망 재편에 직격탄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배터리, 바이오, 로봇, 방산, 원전, 콘텐츠, 소재·부품·장비 등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함께 끌어올리는 비상한 노력이 필요하다. 개혁은 미룰수록 더 큰 비용과 대가를 요구한다. 영국의 실패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고른 성장을 위한 구조개혁과 산업재편에 지금 총력을 쏟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