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각

[강남視角] '셔세권'과 실리콘밸리의 교훈

파이낸셜뉴스
임상수 논설위원
임상수 논설위원

2013년 12월 어느 새벽, 미국 샌프란시스코 미션 디스트릭트 24번가. 저소득 주민이 반세기 넘게 살아온 이 동네에 구글 로고를 단 2층 통근버스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곧바로 기다리던 노란 조끼의 활동가와 주민 수십명이 버스를 둘러쌌다. 확성기에서 날카로운 구호가 터졌다. "샌프란시스코는 투기 대상이 아니다."

이듬해 4월, 인근 오클랜드에선 애플·구글·야후의 통근버스가 시위대에 30분 넘게 가로막혔다. 한 시위자는 버스 지붕 위로 올라가 오물을 투척했다. 과격했지만 그만큼 절실했다. 주민들에게 통근버스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었다. 빅테크의 성공과 오만,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현실, 그 불평등을 보여주는 존재였다. 시위는 2016년까지 이어졌다.

실리콘밸리 빅테크의 성장과 주택 공급 부족 속에서 통근버스는 고소득 정보기술(IT) 인력을 샌프란시스코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했다. 출퇴근이 편해지자 편의시설이 좋은 도심에 살며 인근 사무실로 출근하는 직원이 늘었다. UC버클리 연구 결과 셔틀버스 정류장 인근 임대료는 주변보다 20% 이상 높았다. 2011년부터 2014년 사이 샌프란시스코 평균 임대료는 50% 넘게 뛰었다. 원주민들은 하나둘 동네를 떠났다. 통근버스는 '젠트리피케이션'의 표상이 됐다.

2026년 6월 한국에서는 수도권 남부가 들썩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슈퍼사이클을 구가하고 있다. 직원들에게 최대 수억원대 성과급이 돌아갔다. 대출규제로 일반인 자금줄은 막혔지만, 이들은 최대 5억원까지 저금리 사내대출도 받을 수 있다. 일반 수요자보다 훨씬 강한 구매력을 갖게 된 셈이다.

'삼전닉스' 직원들이 많이 거주하는 용인·수원·분당 일대는 이미 이들 회사의 셔틀버스 노선을 중심으로 생활권이 형성돼 있다. 이른바 '셔세권'(셔틀버스+역세권)이 새 투자처로 떠올랐다. 부동산 커뮤니티에서는 셔틀버스 노선도가 임장 지도로 공유된다. 용인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요즘은 셔틀 노선도를 들고 집을 보러 다니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했다. 시장은 곧바로 반응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15일까지 화성 동탄 아파트값은 9.57% 올랐다. 전국 상승률 1위다. 용인 수지(9.03%), 성남 분당(7.4%), 수원 영통(5.72%)의 누적 상승률도 5%를 넘겼다. 수도권 평균 아파트값 상승률(2.8%)을 크게 웃돈다. 동탄은 규제지역 지정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연히 전월세가 상승세도 가파르다.

다시 10여년 전 실리콘밸리. 거센 시위 뒤에야 기업과 지방정부가 움직였다. 빅테크들은 정류장 사용료를 내고 일부 노선과 운행 횟수를 줄였다. 구글은 저소득층 청소년에게 무료 버스 패스를 지원했다. 구글과 메타는 각각 10억달러 규모의 주택지원 계획을 내놓고 보유 토지를 주택용으로 돌렸다. 애플도 수십억달러를 주거 지원에 쏟았다. 하지만 한번 뛴 집값과 주택난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한국에 실리콘밸리 사례를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셔세권' 주민들이 거리로 나온 것도 아니다. 기업 문화도, 주택시장 구조도 다르다. 단순 비교는 무리다. 그렇다고 교훈까지 외면할 일은 아니다. 통근버스가 집값을 끌어올리고, 그 부담이 누군가를 밀어내며, 결국 기업과 지역 모두의 비용으로 돌아오는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

부동산은 특히 한국 사회에서 민감한 문제다. 갈등은 대개 집값이 오른 뒤에야 터져 나온다. 샌프란시스코시 당국은 이를 한동안 외면했다. 기업들도 자신과 무관하다고 여겼다. 그 대가로 주민과 기업, 도시 모두 수년간 막대한 갈등비용을 치러야 했다.

'셔세권'이 성공의 상징으로 남을지, 갈등의 씨앗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주민들의 불만이 밖으로 터져 나온 뒤에는 이미 늦다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의 외침은 치솟는 집값보다 그 뒤에 가려진 주민들의 고통을 외면한 데서 비롯됐다. '셔세권'이 양극화의 상징이 되어서는 안 된다.

sangsoo123@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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