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국민 96% "폭염에 스트레스"…냉방비 부담에 식비·의료비도 줄였다

이보미 기자
파이낸셜뉴스

서울대 보건대학원 폭염 인식 조사
무기력·짜증 경험도 90%대
42.5% "냉방비 탓 필요한 지출 포기"
폭염은 기상 아닌 삶의 질 문제"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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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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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지난해 폭염을 겪은 국민 96.4%가 "별다른 이유 없이도 기분이 나빠지고 스트레스가 쌓였다"고 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무기력과 일처리 능력 저하를 경험했다는 응답도 95.7%, 짜증과 성가심을 느꼈다는 응답도 94.6%에 달했다. 폭염이 단순히 더운 날씨나 온열 질환 문제를 넘어 정신 건강과 일상생활, 가계 지출까지 흔드는 사회적 재난으로 번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대 보건대학원은 25일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폭염과 사회정신건강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응답자들은 폭염을 신종 감염병에 이어 건강과 안녕을 위협하는 주요 요인 2위로 꼽았다.

이번 조사를 총괄한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국민들에게 폭염은 이미 기상 문제가 아니라 '국민 삶의 질 문제'로 인식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폭염, 감염병 이어 건강·안녕 위협 2위

응답자들은 폭염을 이미 주요 위험 요인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나의 건강과 안녕에 가장 큰 위협'을 묻는 질문에서 신종 감염병이 31.3%로 1위였고, 폭염이 21.5%로 2위를 차지했다. 경제둔화는 18.9%였다. 폭염이 경기 침체보다 높은 순위에 오른 셈이다.

올해 폭염 피해에 대한 우려도 컸다. '우리나라에 올해 폭염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응답은 67.6%였다. 피해가 발생할 경우 '심각할 것'이라는 응답은 68.9%, '걱정된다'는 응답은 66.2%로 집계됐다. 개인보다 국가 차원의 위험으로 폭염을 더 크게 받아들이는 흐름도 나타났다.

응답자들은 폭염 취약집단으로 노인(37.0%)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빈곤층·노숙자 등 사회적으로 열악한 계층이 30.1%, 만성질환자가 14.3%였다.

자신이 폭염에 취약하다고 답한 비율도 전체의 41.2%에 달했다. 특히 일용직 노동자의 경우 54.8%가 자신을 폭염 취약자로 인식했다. 유 교수는 "폭염 취약성을 설명하는 핵심 요인으로 노동환경과 주거환경이 꼽힌 것은 국민들이 폭염 피해를 사회구조적 문제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재난문자는 읽지만 "너무 자주 온다"

정부와 지자체의 폭염 대응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중앙정부의 폭염 대비·대응을 '잘한다'고 본 응답은 68.9%, 지자체는 60.7%였다. 잘한다고 평가한 이유로는 중앙정부와 지자체 모두 '폭염 정보 및 안내 전달'이 가장 많이 꼽혔다.

반대로 잘못하고 있다고 본 이유는 달랐다. 중앙정부에 대해서는 '긴급 대응 및 의료 체계'가, 지자체에 대해서는 '냉방비 등 에너지 복지 지원'이 1위였다. 폭염 대응에서 단순 정보 제공은 일정 부분 작동하고 있지만, 의료 대응과 취약계층 지원은 아직 부족하다는 인식이 드러난 것으로 풀이된다.

재난문자에 대한 피로감도 확인됐다. 폭염 관련 안전안내문자를 '아예 받지 않는다'는 응답은 5.9%, '받지만 읽지 않는다'는 응답은 13.3%였다. 문자를 보지 않는 이유로는 '문자·알림이 너무 자주 와서'가 57.7%로 가장 많았다. '내게 필요하지 않아서'는 23.2%, '제때 제공되지 않아서'는 19.3%였다.

유 교수는 "폭염 정보는 상당수 국민에게 전달되고 있었지만, 재난문자 피로감 등이 확인됐다"며 "앞으로의 폭염 위험 소통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10명 중 4명 "냉방비 탓 지출 포기"

폭염은 일상생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줬다. 지난해 폭염 때 줄어든 활동으로는 운동 등 신체활동이 54.6%로 가장 많았다. 모임 등 사회적 관계나 활동이 줄었다는 응답은 44.2%, 수면이 줄었다는 응답은 40.9%, 직장·학교 업무 능률이 떨어졌다는 응답은 30.4%였다.

정서적 영향도 컸다. 응답자의 90% 이상이 지난해 폭염으로 스트레스·무기력·짜증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 교수는 "폭염이 열사병 같은 신체 건강 문제를 넘어 정신 건강에도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폭염으로부터의 건강 보호를 정신건강으로 확장해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가계 부담도 확인됐다. 전체 응답자의 42.5%는 지난해 폭염 기간 냉방비 부담 때문에 꼭 필요한 지출을 줄이거나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이 줄인 항목은 여가·문화비 60.5%, 의류·생활용품비 51.6%, 식비 48.6% 순이었다. 의료비를 줄였다는 응답도 11.5%였다.

기후위기와 폭염에 대한 인식은 높았다. 응답자의 58.8%는 "폭염·기후변화의 심각성이 실제보다 과소평가됐다"고 봤다. 또 폭염과 기후위기 대응에서 정부와 지자체가 경제 성장보다 대응을 우선해야 한다는 응답도 절반을 넘었다.
서울대 연구진은 이번 조사 결과를 두고 폭염을 기상 문제가 아니라 일상과 건강, 경제 활동을 위축시키는 사회적 위험으로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유 교수는 "정부와 지자체의 폭염 대응과 소통은 기상 정보 전달을 탈피해 사회적 위험 관점에서 폭염을 다루면서, 신체 건강은 물론 정신심리건강 측면에서 보호와 지원 방안을 확대하고 국민이 폭염 위험을 이해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소통의 질 개선을 시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조사는 지난 4월 13일부터 20일까지 케이스탯리서치에 의뢰해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19%포인트다.

spring@fnnews.com 이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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