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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맞닿은 거대한 소금호수… 순임금의 '남풍가' 들리는 듯 [Weekend 레저]

정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김성곤의 중국한시기행]
④요순의 도시 린펀과 윈청

전설 속 성군 요임금 수도 삼은 곳
린펀 요묘에서 中최초 용 문양 토기
4000년 전부터 소금 생산한 '염호'
관우의 고향 해주 '관제묘'도 찾아
황새가 둥지 틀었다는 곳 '관작루'
절경 감상하러 수많은 시인들 발길

염호는 중국 산서성에 위치한 내륙 호수로, 4000년 이상의 소금 채취 역사를 가지고 있다. 중국관광청 제공
염호는 중국 산서성에 위치한 내륙 호수로, 4000년 이상의 소금 채취 역사를 가지고 있다. 중국관광청 제공

황하를 따라가는 길, 이번 여정은 산서성 남부 린펀(臨汾)에서 시작한다. 이곳은 전설 속 성군 요임금이 도읍으로 삼았던 곳으로, 중국에서는 '화하제일도(華夏第一都)', 곧 중국 최초의 수도라 부른다. 린펀 남쪽에 자리한 요묘(堯廟)에 들어서자 '문명시조(文明始祖)'라 쓴 거대한 패방이 먼저 방문객을 맞는다. 본전인 광운전에는 황금색 도포를 입은 요임금이 위엄 있는 모습으로 앉아 있다. 그러나 고전 속 요임금의 모습은 이처럼 화려하지 않았다. '한비자'에 따르면 요는 초가집에서 살며 거친 음식을 먹고, 여름에는 베옷으로, 겨울에는 사슴가죽으로 몸을 가렸다고 한다. 백성 위에 군림하는 제왕이 아니라 백성과 함께 살아가는 지도자였던 것이다.

중국 최초의 용 문양 '천하제일용'. 사진=김성곤 교수
중국 최초의 용 문양 '천하제일용'. 사진=김성곤 교수

■중국 최초의 龍문양 '천하제일용'

요묘에서 꼭 보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하나는 '천하제일용(天下第一龍)'이라 불리는 중국 최초의 용 문양이다. 부근 도사(陶寺) 유적에서 출토된 채색 토기에 그려진 이 용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화려한 용과는 전혀 다르다. 날카로운 발톱도, 위엄 있는 뿔도 없이 곡식 이삭을 입에 문 소박한 모습이다. 백성 위에 군림하지 않았던 요임금의 모습과 어쩐지 닮아 있다.

또 하나는 광운전 앞에 서 있는 비방목(誹謗木)이다. 여기서 '비방'은 헐뜯는다는 뜻이 아니라 백성이 자신의 어려움과 정치에 대한 의견을 알린다는 뜻이다. 억울한 일이 있으면 적고, 글을 모르면 나무를 두드려 알렸다고 한다. 훗날 황제 권력의 상징인 화표(華表)로 변했지만, 그 출발은 백성의 소리를 듣고자 했던 작은 나무였다.

어진 요임금이 70년 동안 천하를 다스려 태평성대가 찾아왔다. 어느 날 민정을 살피러 나간 요임금은 골목에서 노인들이 돌 던지기 놀이인 '격양'을 하며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았다. 자신이 만든 태평한 세상을 칭송하는 노래라 생각했지만 들려오는 가사는 뜻밖이었다.

해 뜨면 일어나고
해 지면 쉰다네
우물 파서 물 마시고
밭 갈아 밥 먹나니
임금의 힘이 내게 무슨 상관 있으랴

日出而作, 日入而息
鑿井而飮, 耕田而食
帝力於我何有哉

최고의 정치는 백성이 임금의 존재조차 잊고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뜻일까. 요묘를 나서며 4000년 전 골목길에서 울렸다는 이 태평성대의 노래를 마음속으로 따라 불러보았다.

거대한 소금호수 염호의 일몰. 사진=김성곤 교수
거대한 소금호수 염호의 일몰. 사진=김성곤 교수

■소금호수 염호에서 만난 순임금

요임금의 '격양가'를 만났으니 이제 순임금의 '남풍가'를 찾아갈 차례다. 그 현장은 린펀에서 남쪽으로 내려간 윈청(運城)의 염호(鹽湖)다. 윈청은 옛 이름이 하동(河東)이다. 황하 동쪽의 이 땅에서는 삼국지의 영웅 관우, 당나라 문인 유종원, 송나라 역사가 사마광 같은 걸출한 인물이 태어났다. 그중에서도 윈청의 역사를 만든 것은 거대한 소금 호수 '염호'였다. 동서 30㎞에 이르는 이 내륙 호수에서는 4000년 전부터 소금을 생산했다고 한다. 황하 문명의 성장과 함께 이곳의 소금은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훗날 천하를 누빈 산서 상인 진상(晉商)의 경제적 기반이 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순임금은 이곳 염호에서 힘겹게 일하는 백성들을 보았다. 뜨거운 햇살 아래 소금을 거두는 백성들을 바라본 순임금은 와운강(臥雲崗)에 올라 오현금을 뜯으며 노래를 불렀다.

남풍이여 향기롭게 불어오소서
우리 백성의 고단함을 풀어주소서
남풍이여 때맞춰 불어오소서
우리 백성의 살림을 풍족하게 하소서

南風之薰兮, 可以解吾民之慍兮
南風之時兮, 可以阜吾民之財兮

요순시절에는 정남풍(正南風)이 불었다고 한다. 그 바람이 불면 오곡이 익고 백성이 평안해졌다는 전설의 바람이다. 어쩌면 그 바람은 백성을 걱정하는 순임금의 마음에서 불어온 바람이었을 것이다. 염호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 무렵이었다. 하얗게 소금발이 맺힌 호수 위로 붉은 노을이 내려앉고, 새들만이 고요한 물가를 스쳐 지나갔다. 서늘한 저녁 바람 속에서 둑길을 걸으며 조용히 '남풍가'를 불러보았다.

해주 관제묘 인근에 있는 관우 동상. 중국관광청 제공
해주 관제묘 인근에 있는 관우 동상. 중국관광청 제공

■中최대의 관우 사당, 해주 관제묘

염호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관우의 고향 해주(解州)가 있다. 이곳의 '해'자는 보통 '지에'가 아니라 지명으로 쓰일 때의 옛 발음인 '하이'로 읽는다. 해주 관제묘(關帝廟)는 중국 최대 규모의 관우 사당이다. 수나라 때 창건된 뒤 역대 왕조를 거치며 크게 확장되었다.

중국인들에게 관우는 단순한 장수가 아니다. 공자가 문(文)의 성인 '문성(文聖)'이라면, 관우는 무(武)의 성인 '무성(武聖)'이다. 한때 촉한의 장수였던 관우는 시대가 흐르며 점차 신이 되었다. 송나라 때 충혜공(忠惠公)에 봉해진 뒤 명청시대를 거치며 마침내 관성대제(關聖大帝)의 지위에 올랐다.

충성과 의리의 상징이었던 관우는 상인들에게는 재물을 지켜주는 재신(財神)이 되었다. 특히 천하를 누비며 장사를 했던 산서 상인 진상들은 같은 고향 출신인 관우를 자신들의 수호신으로 삼았다.

관제묘 숭녕전(崇寧殿)에 앉아 있는 거대한 관공을 바라보았다. 300근이 넘는다는 청룡언월도도 만져보고, 전설 속 관우가 남겼다는 발자국에 내 발을 맞추어 보았다. 한 시대를 호령했던 영웅은 어느덧 천년 세월을 넘어 사람들의 마음속을 지키는 신이 되어 있었다.

관우의 고향 상평촌(常平村) 뒤편 산비탈에는 거대한 관우상이 염호를 내려다보고 있다. 왼손으로 긴 수염을 잡고 오른손으로 청룡언월도를 짚은 채 서 있는 그의 시선을 따라가니 멀리 은빛 염호가 펼쳐졌다. 젊은 시절 염호의 악덕 상인을 응징했다는 전설을 가진 사내가 훗날 염상들의 보호신이 되었으니, 관우와 염호의 인연도 참으로 깊은 듯하다.

황새가 둥지를 틀었다는 관작루. 중국관광청 제공
황새가 둥지를 틀었다는 관작루. 중국관광청 제공

■황하 동쪽 기슭 '관작루'에 올라보니

윈청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는 영제(永濟)의 관작루였다. 황하 동쪽 기슭에 처음 세워진 이 누각은 북주시대에 만들어져 수·당·송을 거쳤으나 원나라 초기 전란 속에 사라졌다. 700년 세월 동안 터만 남아 있다가 2002년 당나라 양식으로 다시 세워졌다. 관작루라는 이름은 황새가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는 데서 비롯되었다. 중조산을 등지고 황하를 굽어보는 절경 때문에 수많은 시인이 이곳에서 시를 남겼지만, 그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당나라 시인 왕지환의 '등관작루'다.

밝은 해 산에 기대어 기울고
황하는 바다 향해 흘러간다
천리 멀리 끝까지 바라보고 싶어
다시 한 층 더 오른다

白日依山盡, 黃河入海流
欲窮千里目, 更上一層樓

젊은 왕지환이 관작루에 오른 것은 당나라가 최고의 번영을 누리던 개원 연간이었다. 눈앞에는 서쪽으로 기울어가는 해가 있었고, 발 아래에는 동쪽 바다를 향해 힘차게 흘러가는 황하가 있었다. 이 장엄한 풍경을 바라보던 시인은 더 먼 곳을 보기 위해 다시 한 층을 오른다. 흥미로운 것은 시가 여기서 끝난다는 점이다. 꼭대기에 오른 시인이 무엇을 보았는지, 어떤 감동을 느꼈는지는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아마 그것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 둔 것이리라. 산 너머로 사라진 줄 알았던 저녁 해가 위층에서는 아직 찬란하게 남아 있었을 수도 있고, 어둠 속에서 떠오른 달빛이 천리 황하를 비추고 있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았느냐가 아니라, 더 높은 곳을 향해 다시 한 걸음을 올랐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등관작루'는 단순히 풍경을 노래한 시가 아니다. 이미 얻은 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 넓은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진취적인 사람들을 위한 노래다.

하늘 맞닿은 거대한 소금호수… 순임금의 '남풍가' 들리는 듯 [Weekend 레저]

김성곤 방송통신대 중문학과 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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