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사설] 기업의 지역투자, 정치 바람에 휘둘려선 안돼
[파이낸셜뉴스] 기업들이 앞다퉈 지역 투자에 나서고 있다. 삼성은 광주·전남 반도체 클러스터를 포함한 대규모 첨단산업 투자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SK도 광주·전남에 전공정 팹을 비롯해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를 망라한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내주 국민보고회를 앞둔 26일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기업들의 발표 숫자가 매우 낯설 것"이라고 밝힌 것도 막대한 투자 규모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현대차와 LG, 한화 등 주요 기업들은 K뉴딜 아카데미를 통한 지역의 청년 인재 양성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반도체, 인공지능(AI), 방산 등 미래 산업이 지역으로 확산되고, 투자가 청년 인재 양성과 맞물리는 흐름은 환영할 만하다. 수도권 집중과 청년 일자리 부족이 한국 경제의 고질병이 된 상황에서 기업 투자는 지역을 살릴 가장 강력한 동력이라 할 수 있다.
실제 기업의 대규모 투자가 지역의 운명을 바꾼 사례도 적지 않다. 대만 가오슝이나 일본 구마모토가 반도체 공장 유치로 지역이 부활한 좋은 예다. 국내에서도 삼성디스플레이 공장을 유치한 충남 아산은 인구가 크게 늘며 젊은 생산도시로 바뀌었다.
하지만 기업이 들어선다고 지역이 저절로 부흥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데이터센터 같은 첨단 시설은 막대한 전력과 용수, 숙련 인력, 물류망, 정주 여건이 뒷받침 돼야 한다. 지방에 공장을 짓겠다는 발표만으로 균형발전이 완성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정부는 관련 지역들이 실제로 대규모 첨단산업을 감당할 수 있는 지 두번 세번 따져보고 전력·용수·인재 공급 대책을 주도면밀하게 추진해야 한다.
호남권 반도체 유치를 둘러싼 타지역의 반발도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대구·경북과 구미 등은 소부장 기반과 산업단지 경쟁력을 내세우며 반발하고 있다. 그 밑바탕에는 산업 입지 결정에 정치가 과도하게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깔려 있다. 처음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새만금으로 옮기겠다는 식의 얘기가 나왔고, 반발이 커지자 호남에 별도의 새 공장을 짓는 방향으로 정리되는 모양새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자율적 판단이 얼마나 보장됐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지역 균형발전은 더 미룰 수 없는 시대 과제다. 수도권 일극 체제를 완화하고 지방에도 첨단산업의 성장판을 열어야 한다는 방향은 지극히 타당하다. 하지만 과정은 투명하고 공정해야 하는 것도 물론이다. 발전이 필요한 곳은 호남만이 아니다. 대구·경북, 부울경, 전북, 강원 등도 각자의 산업 기반과 절박한 사정을 갖고 있다. 기업의 투자가 특정 지역을 위한 선물처럼 비칠 경우 균형발전은 오히려 지역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는 문제다.
거듭 강조하지만 반도체는 지역 선물 보따리가 아니라 국가 생존 산업이다. 지역의 미래 경쟁력에 기반한 과학적이고 전략적인 전국 단위 산업지도가 필요하다. 기업이 가장 효율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곳을 시장 원칙에 따라 선택하고 정부는 그 결정을 적극 뒷받침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기업이 앞다퉈 지역투자 의지를 보이는 지금이야말로 이 기준이 더욱 지켜져야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