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가 되고 공포가 된 아동학대 "무혐의 나오면 사과하면 되죠, 법이 그렇거든요"
[대한민국 법도 '참교육' 들어가나요-③]
드라마 속 '우진이 엄마'… 현실에선 더 '매운 맛'
교육 현장, 아동학대로 신고 당할까 떠는 선생님
'정서적 학대' 모호…무조판결에도 무고죄 불성립
교사들의 '교권침해 주체' 1위…4년 연속 학부모
[파이낸셜뉴스] # 드라마 '참교육' 5화에 등장한 학부모 우진이 엄마는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교사에게 비합리적인 요구를 쏟아내더니 담임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를 아동학대로 신고한다. 아동학대로 신고당한 교사가 우진 엄마에게 "무혐의 판정이 나면 어쩔 거냐"고 묻자 모두의 분노를 유발하는 뻔뻔한 답변을 내놓는다. "사과하면 된다, 법이 그렇다"는 답이다.
결국 드라마 속 우진이 엄마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은 대가로 실형을 받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기대한 결과는 아니다. 그저 스토킹과 교사 협박 등에 대한 처벌이다.
현행법상 허위 신고자에 대한 처벌 조항은 없어 관련 처벌은 받지 않았다. 그래서 '무고죄가 나오더라도 사과하면 끝'이라는 드라마 속 대사는 실제 교사들이 현장에서 접하는 학부모의 말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교육 현장에서 학부모들이 아동학대를 했다며 교사를 신고하는 건 비일비재하다.
지난 2023년 익명의 초등교사들이 '민원스쿨'이라는 이름으로 발간·배포한 '학부모 교권침해 민원사례 2077건 모음집'에는 아동학대 단어만 총 201회 등장하고 '아동학대'와 관련 사례도 40여건 된다. 아동학대 신고가 교사의 삶마저 무너뜨린다는 고충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문제는 대다수 신고가 사실과 다른 허위라는 점이다.
가령 초등학교 2학년 학급의 담임인 A교사는 한 학생을 4명의 아이들이 괴롭힌 상황을 발견하고 이를 지도하다가 아동학대 신고를 당했다.
경찰에 접수된 신고 내용은 "아이들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담임이 거칠게 아이들을 잡아 당겼다", "(붙였던) 칭찬스티커를 다시 떼면서 정신적 학대를 가했다" 등이었다.
신고를 당한 A교사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불면증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상황에서 변호사를 선임하고 경찰 조사 출석 준비를 해야 했다.
A교사는 "다른 아이들을 교실에 두고 차마 병가를 내지 못했다. 일에 손에 잡히지 않고 아이들을 보면 눈물이 나고 숨이 막힌다"며 "이 일을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막막하다"고 전했다.
학부모가 아동학대 신고를 무기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B교사는 "학교 폭력 관련 일로 한 학부모와 상담을 하던 중 자신의 뜻대로 일이 해결되지 않자 '교사는 도대체 한 게 뭐냐'며 문자로 아동학대 법 조항을 보냈다"며 "그러면서 '이거 아시냐'며 협박했다"고 알렸다.
조재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교사권익위원장도 "선생님들은 아동학대(특히 정서적 아동학대)로 신고 당하면 경찰조사를 받아야 하고, 무혐의라도 무조건 검찰조사까지 가야 한다"고 토로하며 다양한 사례를 소개했다.
▲ 북카페에서 교과 수업 준비를 하던 중 소란스러운 아동에게 주의를 줬다는 이유로 교사가 정서적 아동학대로 신고당한 사례 ▲ 학생 상담 과정 중 '너는 이미 1년치 잘못을 다한 것 같으니 더 이상 잘못된 행동을 하지 말라' 등 표현을 이유로 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한 사례 ▲ 물건을 던지고 반성문을 강요했다는 등 허위사실로 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한 사례 등이다.
초등교사 출신인 법무법인 진수의 나현경 변호사는 "5화를 보면서 현실이 더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진이 엄마 같은 분들은 실제로 존재하고 더 '매운' 분들이 많다"라며 "아이 가방에 녹음기 넣어 학교 보내는 건 기본이고, 교사가 훈계하는 과정에서 언성이 조금만 높아져도 바로 아동학대로 신고가 들어가는데 교사들은 대응할 방안이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학부모의 교권 침해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교육부가 2024년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및 한국교육개발원과 실시한 교육활동 침해 실태조사를 보면 지역교권보호위원회(교보위)가 개최된 전체 4234건 가운데 보호자 등의 침해 행위로 인한 개최 건수가 461건으로 전체의 약 10.9%에 달했다. 이 비율은 매년 증가 추세다.
교총이 발간한 '2025년도 교권 보호 및 교직 상담 활동실적 보고서'에도 교사들이 지목한 교권침해 주체 1위가 학부모였다. 2022년 이래 4년 연속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눈길을 끄는 조사 내용이 있었다.
지난 2024년 교사노조가 교원 718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0.8%는 '아동학대 신고로 인한 피소 불안'에 시달린다고 답했다.
아동학대 신고가 학부모들에겐 교사를 압박하는 수단이 됐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법의 모호함이 상황을 유발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동복지법 제17조 5항은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 행위'를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취지는 분명하지만, 무엇이 '정서적 학대'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이로 인해 수행평가에 '노력 요함'을 줬다가, 공개 사과를 거절했다가, 민원을 거절했다가 아동학대 신고를 당하는 사례가 현장에서 반복되고 있다.
2023년 서이초 교사 사망이라는 비극적 사건 이후 이른바 '교권 5법'이 개정되면서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는 아동학대로 보지 않는다'는 조항이 아동학대처벌법에 삽입되기는 했지만, 교사들이 처한 상황은 달라진 게 거의 없다.
조 위원장은 "법은 바뀌었으나 현실에서 체감되는 부분은 미미하다"라며 "결국 아동복지법이 학교 현장에 맞게 개정되지 않는다면 아동학대로 인한 고발은 지금과 같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드라마 '참교육'을 계기로 아동학대법에 부정 여론이 커지는 걸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아동 복지 관련 단체들은 정서적 학대는 실재하며, 특정 직군을 면책하는 선례가 생기면 법이 무력화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교원 단체 관계자들도 교권 보호와 아동 보호는 대립의 개념이 아니라는 데 공감하고 있다. 다만 아동학대법에 대한 제도적 보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서적 학대의 기준을 명확히 하는 동시에, 수사 개시만으로 교사가 교단을 떠나야 하는 구조를 개선하고 허위 신고에 실질적 제동을 걸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교권국가소송제 도입과 무고성·악의성 민원 및 신고에 대한 제도적 차단 장치 마련, 중대한 교권 침해 사실의 학교생활기록부 기재를 입법 과제로 손꼽기도 했다.
강주호 교총 회장은 "학교 현장이 무분별한 악성 민원과 아동학대 신고 폭탄으로 초토화되고 매일 평균 4명이 넘는 교사가 교실에서 폭행과 성범죄에 무력하게 노출돼 있다"고 주장하며 실질적인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을 통해 경찰 무혐의 시 검찰 불송치 조항을 도입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조 위원장은 "아동학대법에 대한 고발은 무고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하지만 의도적인 고발에 대해서는 무고죄를 물을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라며 "교육청 단위에서 무고성 또는 악성 고소 고발에 대해 맞고소를 하는 방안도 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당한 교육활동에 대한 법적 보호가 필요하다. 한 교사가 악성 민원과 소송 앞에서 무너지면 그 피해는 오롯이 그 학급의 대다수 선량한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bng@fnnews.com 김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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