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환율

잔뜩 풀죽은 '원화'···1550원 시대의 새로운 환율 문법

김태일 기자, 홍예지 기자
파이낸셜뉴스

BIS 집계 원화 명목실효환율 17년만 83 하회
64개국 중 60위..아르헨티아, 일본 등만 뒤에
경상수지, 국제유가 등으로만 설명하지 못 해
자본시장 수급, 환전 수요가 새로운 요소로 부상

사진=챗GPT
사진=챗GPT

[파이낸셜뉴스] 환율을 설명하는 문법이 달라지고 있다. 경상수지 흑자도, 국제유가 하락도 달러 대비 원화 가치를 회복시키지 못하고 있다. 대신, 외국인의 국내 증시 이탈과 예정된 대미 투자 등 자본의 수급이 새로운 결정 요소로 자리 잡았다.

원화 실질실효환율, 뒤에서 2등
28일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달 말 원화의 명목실효환율(NEER·2020년=100)은 83.69였다. 해당 지표는 주요 교역상대국과의 무역강도를 반영해 산출한 일국 통화의 상대적 가치로, 84 아래로 떨어진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7월(83.43) 이후 약 17년 만이다.

집계 대상인 64개국 가운데 원화보다 수치가 낮은 곳은 아르헨티나(5.1), 튀르키예(15.4), 일본(68.7), 인도(80.4) 등 4개국이 전부였다. 명목실효환율에 물가 수준까지 적용해 통화의 실질적 값을 나타내는 실질실효환율(REER)로 따지면 우리나라보다 뒤처진 나라는 일본이 유일했다.

그간 원·달러 환율 상승의 최대 요인은 중동 사태가 꼽혔다. 국제유가 급등으로 강화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 전망에 전 세계 달러가 흡수됐고,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원화의 약세 흐름이 거셌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종전 합의 이후 국제유가가 배럴당 70달러 아래로 내려왔음에도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550원을 앞두고 있다. 기존 공식으론 설명이 어려운 '약원화'를 부추기는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만자 달러 환전 수요가 크다. 실질실효환율 추이에서 그 영향이 드러난다. 지난 2월 말 이후 3개월간 1.74p 떨어지는데 그쳤지만 지난해 4·4분기엔 4.04p 추락한 바 있다. 국내 투자자가 해외주식·채권·부동산 등에 투자한 금액인 대외금융자산이 분기 기준으로 처음 2조8000억달러를 넘은 시기다.

지금은 외국인의 국내 자산 매도세가 더해졌다. 올해 2·4분기에만 76조원어치 이상을 팔아치웠다. 원화 매도까지 겹치며 우리 통화가 국제적 구매력을 잃고 있다는 뜻이다. 경상수지도 더 이상 환율을 결정하는 제1 요인이 아니다. 올해 4월만 봐도 경상수지가 역대 2위(282억9000만달러)를 기록했으나 실질실효환율은 85.07에 머물렀다.

대미 투자 부담이 원화가 기를 못펴게 압박하는 근간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통화 약세인 한국·일본·대만의 공통점은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고, 대규모 투자약정을 맺었다는 것"이라며 "투자가 대거 집행될 초기에 환율 상방 압력이 높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업 구조적으론 수출기업들이 해외에 생산시설을 구축한 뒤 현지에서 발생한 수익을 재투자하면서 자금이 국내로 환류되지 않고 있다. 재정경제부가 최근 대기업들 상대로 수출 대금을 원화로 환전해달라고 요구한 이유이기도 하다.

백윤민 교보증권 연구원은 "기업 입장에선 미국 투자시 재차 달러를 매입해야 하는데 지금 원화로 바꿨다가 재환전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확신이 없다"며 "원화가 강세로 돌아설 것이란 신뢰 없이는 보유심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원화 향한 시선을 바꿔야
환율 상승은 경제의 약한 지점부터 흔든다. 수입 업체, 그 중에서도 중소기업 중심으로 원재료값 상승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정 이코노미스트는 "완충력이 부족한 곳들이 허점"이라며 "환헤지 등 위험 관리 정책이 있어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 만큼 실제 이용률을 높이기 위한 홍보도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환율 경로에 부정적 요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미국 6월 소비자물가 (전월 대비) 상승률이 마이너스로 나오면 단기금리가 빠지면서 달러인덱스가 하향 조정될 수 있다"며 "SK하이닉스가 주식예탁증권(ADR) 미국증시 상장으로 조달한 자금을 (국내 투자용으로) 환전하면 원화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짚었다.

원화가 엔화와의 동조화가 강해진 만큼 일본의 재정·통화정책도 변수다. 조 연구원은 "엔화가 강해지면 원화 약세도 해소될 여지가 있다"며 "외환보유고 등을 활용하거나 일본중앙은행(BOJ)이 기준금리를 올리면 엔화 가치 하락이 방어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은 원화 가치를 되찾는 일이 관건이다. 국민연금의 선물환 매도, 외환당국 개입 등은 단기 처방이다. 백 연구원은 "환율 방향을 틀려면 시장 참여자들 심리가 변해야 한다"며 "원화로 이후 비슷한 수준에서 달러를 살 수 있거나 오히려 환차익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형성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taeil0808@fnnews.com 김태일 홍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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