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가 없다" 日메가뱅크, 美 투자 자금난에 정부에 SOS
89조엔 대미 투자 본격화
민간은행만 40조엔 넘는 달러 조달 부담
"이대로면 기존 기업대출 줄여야" 우려
BOJ에 달러 공급 지원 요청
【파이낸셜뉴스 도쿄=서혜진 특파원】미국과 일본이 합의한 5500억달러(약 844조6900억원) 규모의 대미 투자 프로젝트가 시작부터 자금 조달 암초를 만났다. 투자 재원 대부분을 부담해야 하는 일본 3대 메가뱅크들이 달러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정부와 일본은행(BOJ)에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27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미쓰비시UFJ은행, 미쓰이스미토모은행(SMBC), 미즈호은행 등 3대 메가뱅크와 일본국제협력은행(JBIC)은 미국 가스화력발전소 등에 대한 1차 투자 프로젝트에 약 6조엔(약 56조9730억원) 규모의 대출을 시작했다.
이는 미·일 간 관세 협상의 결과 마련된 5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 가운데 일부다. 그러나 금융권에서는 벌써부터 후속 투자에 필요한 자금 조달이 한계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 메가뱅크 관계자는 "1차 프로젝트는 일본 경제를 위해 불가피하게 추진했지만 이후 사업까지 같은 방식으로 지원하기는 쉽지 않다"며 "상황이 계속되면 기존 거래 기업에 대한 대출을 줄여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양국 정부는 차세대 원자로 건설 등을 포함한 2차 투자 사업에도 최대 12조엔(약 113조9460억원)을 투입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하지만 대형 프로젝트가 잇달아 추진되면서 이를 뒷받침할 금융권의 자금 공급 능력이 한계에 이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40조엔 달러 조달 '비상'…BOJ에 지원 요청
가장 큰 걸림돌은 달러 조달이다.
일본 정부는 대미 투자 자금을 JBIC와 민간 금융기관이 공동으로 부담하는 구조를 설계했다. 올해 기준으로 JBIC가 3분의 1, 민간 금융기관이 3분의 2를 맡는다. 이를 단순 계산하면 민간 금융기관이 부담해야 하는 달러 대출 규모만 40조엔(약 379조8200억원)을 웃돈다.
올해 3월 말 기준 일본 3대 메가뱅크의 해외 대출 잔액은 약 140조엔(약 1329조3700억원)이다. 여기에 기존 해외 대출의 약 30%에 달하는 신규 대출이 미국 투자만으로 추가되는 셈이다.
한 메가뱅크 임원은 "일반적인 대출 심사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며 "무엇보다 대부분이 달러 대출이라는 점이 부담"이라고 말했다.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메가뱅크들은 일본 재무성과 BOJ에 달러 조달 지원을 비공식적으로 요청했으며 정부와 금융권 간 협의도 시작됐다.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달러를 확보하려면 외화예금을 늘리거나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직접 매입해야 한다. 그러나 대규모 달러 매수는 엔화 매도를 동반해 엔화 약세를 더욱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후쿠오카파이낸셜그룹의 사사키 도루 수석전략가는 "1조엔(약 9조4955억원) 규모의 엔화 매도·달러 매수가 이뤄질 경우 환율이 약 1엔(약 9.5원) 정도 상승하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금융권에서는 BOJ의 달러 공급 오퍼레이션과 외환특별회계 활용, JBIC를 통한 지원 확대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다만 BOJ의 달러 공급은 금융위기 등 비상 상황에서만 허용되는 제도여서 실제 시행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평가다.
재무성은 "대출은 수년에 걸쳐 집행되는 만큼 당장 막대한 달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며 민간 금융기관이 당분간 자체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투자 실행 앞서간 정치…은행권은 달러 확보 난항
미·일 합의에 따르면 미국 대통령이 투자 대상을 확정해 일본에 통보하면 일본 금융기관은 45영업일 이내에 달러 대출을 집행해야 한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2차 투자 계획을 승인할 경우 약 한 달 반 안에 대규모 자금 조달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대미 투자는 미국의 대일 자동차 관세 인하를 위한 협상 카드로 추진됐지만 미 연방대법원이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에 대해 위헌 판단을 내리면서 관세 정책의 법적 근거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도 변수로 꼽힌다.
유럽연합(EU)과 한국도 미국과 투자 협의를 진행 중이지만 일본처럼 구체적인 투자 프로젝트를 발표한 국가는 아직 없다. 이에 따라 일본이 가장 먼저 합의 이행에 나섰지만 정치적 합의가 금융시장과 기업의 자금 조달 능력을 앞서가고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고 닛케이는 전했다.
한편 한국 역시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프로젝트를 본격 추진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한미전략투자공사를 출범시키고 원전·반도체·AI·에너지 등을 중심으로 첫 투자 사업을 선정할 계획이다.
원전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며 한국수력원자력이 북미 시장 진출을 위한 중소기업 지원 전략 마련에 착수하는 등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다만 일본 사례처럼 대규모 투자 재원 조달과 장기간 사업의 수익성 확보는 한국도 풀어야 할 과제로 지목된다.
sjmary@fnnews.com 서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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