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일반

"커피 한 잔에 담긴 파리의 시간"…레 되 마고에서 만난 1500년 도시의 기억 [커피와 공간 '끽(喫)']

서윤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프랑스 파리 카페 레되마고 Les Deux Magots 이야기]
사르트르가 토론하고 헤밍웨이가 글을 쓰다…예술·철학이 태어난 '파리의 거실'
140년 된 카페에서 마주한 1500년의 시간…생제르맹데프레 성당이 품은 건축
귀족들의 공간 '살롱'이 거리로 나온 노천카페…파리의  도시 문화를 바꾼 이유

파리 6구 생제르맹데프레에 가면 헤밍웨이와 사르트르의 단골 카페 '레되마고'를 만날 수 있다./사진=카페 레되마고 인스타그램 캡처
파리 6구 생제르맹데프레에 가면 헤밍웨이와 사르트르의 단골 카페 '레되마고'를 만날 수 있다./사진=카페 레되마고 인스타그램 캡처

오스만튀르크 시절엔 '현자들의 학교', 17세기 영국에선 1페니 내고 논쟁적 대화에 참여하는 '페니대학'이라 불렸습니다. 오스트리아 신경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프랑스 철학가 장 폴 사르트르는 글을 쓰고 피카소는 예술을 말하며 계몽주의 사상가들에겐 만남의 장소였습니다. '커피'를 대전제로 사람들이 모이는 유형의 공간, 우리는 '카페'라 합니다. 커피를 마시고 공간을 누리는 '끽(喫)'의 장소에서 이야기를 만끽(滿喫)합니다. 주말, 그 공간에서 '건축' 한 잔 어떠신가요. [편집자주]

[파이낸셜뉴스] 1920년 프랑스 파리의 어느 밤. 소설가 길 펜더는 피츠제럴드 부부의 안내를 받아 한 카페로 향한다. 그곳에서 만난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소설가를 꿈꾸는 길에게 "용기 있는 글쓰기는 진실한 글쓰기"라고 조언하며 그의 원고를 거트루드 스타인에게 보여주겠다고 제안한다.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속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다. 영화는 끝내 카페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그러나 피츠제럴드와 헤밍웨이, 거트루드 스타인 등 당시 예술가들의 실제 동선을 떠올리며 많은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한 곳을 떠올린다

파리 6구 생제르맹데프레의 카페 '레되마고(Les Deux Magots)'다.

파리의 지성을 품은 카페

파리 6구 생제르맹데프레에 가면 초록색 파라솔이 눈길을 끄는 카페가 보인다. 헤밍웨이와 사르트르의 단골 카페 '레되마고'다./사진=서윤경 기자
파리 6구 생제르맹데프레에 가면 초록색 파라솔이 눈길을 끄는 카페가 보인다. 헤밍웨이와 사르트르의 단골 카페 '레되마고'다./사진=서윤경 기자

파리 6구 생제르맹데프레 성당 맞은편에는 오래된 카페들이 줄지어 있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곳이 초록색 차양 아래 둥근 테이블이 놓인 레되마고다. 지금은 관광객들이 줄을 서는 명소지만, 한 세기 전만 해도 철학과 문학, 예술이 탄생하던 '파리의 거실'이었다.

1884년 문을 연 레되마고는 원래 비단과 잡화를 판매하던 상점이었다. 이름 역시 가게 안을 장식하던 두 개의 중국풍 목각 인형에서 유래했다. 프랑스어 '마고(Magot)'는 동양풍 장식 인형을 뜻하며, 지금도 두 인형은 실내 높은 선반 위에서 손님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카페 레되마고는 비단과 잡화를 판매하던 상점 자리에 1884년 문을 열었다. 카페 이름도 원래 상점 안을 장식하던 두 개의 중국풍 목각 인형에서 가져욌고 그때 있던 인형을 지금도 볼 수 있다./사진=서윤경 기자
카페 레되마고는 비단과 잡화를 판매하던 상점 자리에 1884년 문을 열었다. 카페 이름도 원래 상점 안을 장식하던 두 개의 중국풍 목각 인형에서 가져욌고 그때 있던 인형을 지금도 볼 수 있다./사진=서윤경 기자

카페가 이곳에 자리 잡은 건 우연이 아니었다.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인 생제르맹데프레 성당과 마주한 이 거리는 19세기 말부터 출판사와 화랑, 서점이 밀집하면서 자연스럽게 문화예술인의 아지트가 됐다. 카페는 커피를 마시는 장소를 넘어 사상을 교환하고 작품을 구상하는 공공의 작업실 역할을 했다.

20세기에 들어서며 레되마고는 프랑스 실존주의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다.

장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는 거의 매일 이곳에서 만나 원고를 쓰고 토론을 이어갔다. 두 사람은 학생과 예술가들을 만나 철학을 논했고, 카페는 실존주의가 거리로 확장되는 무대가 됐다.

보부아르는 회고록에서 생제르맹의 카페를 "집과 같은 작업실"이라고 표현했다. 사르트르 역시 카페를 단순한 휴식 공간이 아니라 세상과 연결되는 창작 공간으로 활용했다.

카페 레되마고는 비단과 잡화를 판매하던 상점 자리에 1884년 문을 열었다. 카페 이름도 원래 상점 안을 장식하던 두 개의 중국풍 목각 인형에서 가져욌고 그때 있던 인형을 지금도 볼 수 있다. 목각 인형의 이미지는 초콜릿 포장지 등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진=서윤경 기자
카페 레되마고는 비단과 잡화를 판매하던 상점 자리에 1884년 문을 열었다. 카페 이름도 원래 상점 안을 장식하던 두 개의 중국풍 목각 인형에서 가져욌고 그때 있던 인형을 지금도 볼 수 있다. 목각 인형의 이미지는 초콜릿 포장지 등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진=서윤경 기자

이 곳은 철학자들만의 공간이 아니었다.

헤밍웨이는 젊은 시절 파리에 머물며 이곳을 즐겨 찾았고 회고록 '파리는 날마다 축제(A Moveable Feast)'에서 생제르맹의 카페 문화가 자신의 창작 인생에 큰 영향을 줬다고 기록했다.

파블로 피카소와 앙드레 브르통, 알베르 카뮈, 자크 프레베르 역시 이곳을 드나들었다.

말 그대로 레되마고는 카페를 넘어 문학, 철학, 미술, 음악이 자연스럽게 뒤섞이는 창조의 플랫폼이었다.

140년 된 카페에서 바라보는 1500년의 시간

카페 레되마고는 테라스에 앉으면 또다른 매력을 찾을 수 있다. 길 건너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을 갖고 있는 150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 생제르맹데프레 성당을 마주할 수 있다./사진=서윤경 기자
카페 레되마고는 테라스에 앉으면 또다른 매력을 찾을 수 있다. 길 건너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을 갖고 있는 150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 생제르맹데프레 성당을 마주할 수 있다./사진=서윤경 기자

레되마고의 또다른 매력은 테라스에도 있다. 커피잔 너머로 시선을 돌리면 140년 역사의 카페 앞에 1500년 역사의 시간이 펼쳐진다. 바로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인 생제르맹데프레 성당이다.

543년 메로빙거 왕조의 왕 킬데베르 1세가 세운 이 성당은 현재까지 남아 있는 파리 최고(最古)의 교회다. 단순히 오래된 종교시설이라는 의미를 넘어 로마네스크에서 고딕으로 이어지는 유럽 중세 건축의 진화를 한눈에 보여주는 '살아 있는 건축 교과서'로 평가받는다

11세기에 완성된 본당과 서쪽 종탑은 전형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이다. 두꺼운 석조 벽체와 둥근 아치, 묵직한 비례는 중세 요새를 떠올리게 한다.

12세기 중반 증축된 성가대석은 초기 고딕 건축의 시작을 보여준다. 갈비뼈처럼 생긴 리브 볼트(Rib Vault) 구조가 천장의 하중을 효율적으로 분산하면서 내부 공간은 높고 가벼워졌다. 건축사적으로 더 주목받는 건 고딕 건축의 상징인 공중부벽(Flying Buttress)의 초기 실험장이었기 때문이다.

공중부벽은 건물의 높은 외벽을 지지하기 위해 고안된 아치형 외부 구조물로 고딕 양식 건축물의 대표적 기법이다.

카페 레되마고는 테라스에 앉으면 또다른 매력을 찾을 수 있다. 길 건너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을 갖고 있는 150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 생제르맹데프레 성당을 마주할 수 있다./사진=카페 레되마고 인스타그램 캡처
카페 레되마고는 테라스에 앉으면 또다른 매력을 찾을 수 있다. 길 건너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을 갖고 있는 150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 생제르맹데프레 성당을 마주할 수 있다./사진=카페 레되마고 인스타그램 캡처

돌로 만든 무거운 천장의 하중을 건물 밖으로 빼는 혁신적인 구조 덕분에 로마네스크 양식에서 보여주던 두꺼운 벽은 얇아졌고 커다란 창을 낼 수 있게 됐다. 이때부터 고딕 성당들이 추구한 '빛의 건축'이 시작됐고 뒤이어 건립된 노트르담 대성당을 비롯한 프랑스 고딕 성당으로 확산됐다.

19세기 프랑스의 건축이론가 외젠 비올레르뒤크 역시 공중부벽이 높은 석조 천장과 대형 스테인드글라스 등 고딕 건축을 가능하게 만든 핵심 혁신으로 평가했다.

성당의 상징인 서쪽 사각 종탑 역시 특별하다. 990년 무렵 건립된 이 종탑은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종루다. 원래 세 개였던 종탑은 프랑스 혁명을 거치며 하나만 남았지만, 천 년 가까운 세월 동안 도시를 지켜오고 있다.

"달라진 도시가 만들어낸 노천 카페"

카페 레되마고에선 커피를 주문하면 문화와 역사가 함께 제공되는 걸 경험할 수 있다. /사진=서윤경 기자
카페 레되마고에선 커피를 주문하면 문화와 역사가 함께 제공되는 걸 경험할 수 있다. /사진=서윤경 기자

레되마고처럼 유럽의 카페 테라스는 커피 한 잔과 함께 도시의 기억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커피를 마시는 공간 그 이상이라 정의했다.

9로평상을 지은 이뎀건축사사무소 대표인 건축가 곽희수 소장은 도시 구조의 변화가 만들어낸 건축적 결과물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19세기 중반 나폴레옹 3세의 지시로 조르주 외젠 오스만이 파리 개조 사업을 시작한 것이 출발점"이라며 "상·하수도를 정비하고 도시를 블록 단위로 재편하면서 중세 도시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도시가 만들어졌지만 저층부는 쉽게 슬럼화됐다.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점포와 주거가 결합한 건물이 등장했고, 그 안에 레스토랑과 카페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960년대에도 카페 레되마고의 테라스는 사람들이 머물며 대화하는 공간의 역할을 했다. 길 건너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을 갖고 있는 150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 생제르맹데프레 성당이 보인다./사진=카페 레되마고 인스타그램 캡처
1960년대에도 카페 레되마고의 테라스는 사람들이 머물며 대화하는 공간의 역할을 했다. 길 건너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을 갖고 있는 150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 생제르맹데프레 성당이 보인다./사진=카페 레되마고 인스타그램 캡처

곽 소장은 "처음부터 카페를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니라 도시를 살리려는 과정에서 생겨난 공간"이라고 말했다.

그 기원에는 귀족들의 '살롱' 문화가 있었다.

"과거에는 귀족 저택 안에서 커피를 마시고 대화를 나누던 살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시 구조가 바뀌면서 개인 공간에서 향유하던 문화가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고, 그것이 노천카페가 됐습니다."

그러면서 카페 테라스를 도시와 개인의 경계를 허문 건축적 장치라고 정의했다.

곽 소장은 "원래 도로는 공공의 공간이고 집은 사적인 공간이었다. 하지만 테라스에 테이블 하나를 내놓는 순간 거실이 거리로 확장됐다"며 "그때부터 도로는 단순한 이동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머물고 대화하며 문화를 만드는 무대가 됐다"고 전했다.

프랑스 파리 6구에 있는 카페 레되마고는 1915년 개보수 이후 모습을 간직한 덕분에 붉은 가죽 소파, 대형 거울에 목재 장식까지 벨 에포크 시대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사진=서윤경 기자
프랑스 파리 6구에 있는 카페 레되마고는 1915년 개보수 이후 모습을 간직한 덕분에 붉은 가죽 소파, 대형 거울에 목재 장식까지 벨 에포크 시대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사진=서윤경 기자

그의 설명을 듣고 다시 레되마고를 바라보면 이곳은 단순한 카페가 아니라 도시가 시간을 품는 방식을 보여주는 하나의 건축물처럼 보인다.

1915년 대대적인 개보수 이후 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붉은 가죽 소파에 대형 거울, 목재 장식은 벨 에포크 시대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다만 레 되 마고는 더 이상 젊은 철학자들의 단골집만은 아니다. 파리 현지 사람들이 일상을 누리는 공간이자 세계 각국의 여행객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

커피 한 잔은 금세 식지만, 그 테이블 위에서 오간 생각과 대화는 도시의 문화가 됐다. 레되마고는 오늘도 사람들에게 커피를 내어주지만, 사실 그곳이 건네는 것은 140년 넘게 이어진 파리의 시간과 사유다.

그런 공간이 파리에만 있는 건 아니다. 한국에도 그 시간을 사유하며 문화를 만든 공간이 있다. 바로 '다방'이다. 그래서 다음에 찾아갈 곳은 서울의 학림다방과 대구의 미도다방이다.

y27k@fnnews.com 서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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