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검찰·법원

'명시적 합의 없었다' 유가담합 칼끝 피한 일부 정유사…로펌 압수수색 쟁점도

최은솔 기자
파이낸셜뉴스

단순 추종·담합 경계…직접 의사연락 입증 못해
ACP 시행 앞두고 로펌 압수수색 기준도 주목

이날 서울 시내의 한 주유소 모습. 연합뉴스
이날 서울 시내의 한 주유소 모습. 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검찰이 최대 26조원 규모의 유가 담합 사건으로 정유 4사를 재판에 넘기면서 직접적인 가격 담합 대상자로는 두 정유사만 지목했다. 나머지 정유사 2곳도 가격을 함께 올렸지만 형사처벌이 가능한 수준의 '의사 연락'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과점시장의 '의식적 병행행위'와 담합을 구별하는 현행 공정거래법 법리의 한계가 다시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나희석 부장검사)는 유가 담합 혐의로 HD현대오일뱅크와 직원들을 기소했다. 함께 담합한 SK에너지는 자진신고자 감면제도(리니언시)로 기소에서 제외됐다. 반면 가격을 함께 올린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은 기소 대상에서 빠졌다. 이들이 경쟁사 가격을 모니터링하며 추종한 정황은 있으나, 직접 가격을 조율한 구체적 합의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과점시장에서 경쟁사 가격을 단순히 따라가는 '의식적 병행행위'는 담합으로 처벌할 수 없어, 형사 처벌을 위해서는 명확한 사전 의사 연락 증거가 필수적이다.

실제 대법원은 2014년 E1·SK가스 LPG 담합 사건에서 가격 일치뿐 아니라 지속적인 모임과 연락, 경쟁 자제에 대한 공감대 형성을 근거로 담합을 인정했다. 검찰도 이번 사건에서 그 수준의 증거는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에 대해서만 확보됐다고 설명했다. 검찰 관계자는 "4사가 모두 담합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면서도 "증거관계가 공소 제기를 할 만큼의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만 정유 4사는 모두 전량구매계약과 사후정산제를 통해 자영주유소의 거래를 제한한 혐의로는 함께 기소됐다.

검사 출신 호승진 법무법인 혜명 변호사는 "담합 사건의 관건은 구체적인 합의 여부"라며 "'의식적 병행행위'와 담합은 한 끗 차이"라고 설명했다. 한 대형로펌 공정거래 전문 변호사도 "검찰이 의식적 병행행위는 처벌 대상이 아닌데도 '유가를 교란했다'고 수사 결과를 표현하는 것은 오해를 부를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증거인멸과 로펌 관여 문제도 쟁점으로 떠올랐다. 검찰은 일부 정유사 관계자들이 공정위 조사 사실을 미리 알고 단체대화방과 PC 자료를 삭제한 정황을 확인했다. 관련 HD현대오일뱅크 법무실장과 GS칼텍스 국내영업부문장은 조사방해 혐의로 기소됐다.

또 외부 포렌식 업체가 추출한 자료를 정유사를 대리한 일부 로펌이 먼저 받아 선별한 정황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메시지가 제외된 상태로 자료가 제출될 뻔했지만 검찰이 별도로 확보하면서 변호사에 대한 형사처벌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검찰은 향후 로펌이 증거인멸에 적극 관여한 정황이 확인될 경우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법조계에서는 내년 시행되는 변호사 비밀유지권(ACP) 제도와 맞물려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개정 변호사법은 법률자문 관련 자료는 보호하지만, 증거인멸이나 범인은닉 등 범죄에 가담한 경우에는 보호 대상에서 제외한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증거인멸과 오해가 되는 자료를 정리하는 것 사이 구분이 매우 어렵다"고 설명했다.

scottchoi15@fnnews.com 최은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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