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규제·노봉법이 판 키운 소송… 대형로펌 실적 뛰었다
태평양 상반기 매출 25% 증가
지평·율촌 등도 10%대 성장세
조 단위 인수 자문·경영권 분쟁
개인정보 유출 등 이슈 잇따라
하반기 AI 시스템으로 역량 강화
국내 대형 로펌들이 올해 상반기 일제히 두 자릿수 성장세를 기록하며 몸집을 불렸다. 공정거래 규제 강화와 노란봉투법·개정 상법 시행, 미국·유럽연합(EU)의 수출통제 등 규제 환경이 지정학 리스크와 맞물리면서 대형 사건이 쏟아진 결과로 해석된다. 로펌들은 하반기에도 인공지능(AI) 기반 업무 혁신과 통합 전문센터 확대 경쟁에 나선다는 전략이다.
■대형 로펌 상반기 두 자릿수 성장
7일 김앤장·태평양·세종·광장·율촌·화우·지평·바른 등 주요 8개 로펌의 상반기 실적 자료에 따르면, 정보를 공개한 로펌 대부분이 두 자릿수 성장을 기록했다. YK와 대륜은 매출 기준 10대 로펌에 들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제외됐다.
성장 폭이 가장 큰 곳은 태평양이다. 태평양은 상반기 전년 동기 대비 25% 수준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지난해 매출 4402억원으로 6년 만에 업계 2위를 탈환한 데 이어 올해도 가장 빠른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지평도 상반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 늘었다. 율촌, 광장, 화우 역시 10%대 성장을 이어갔다. 김앤장과 세종, 바른은 반기 실적을 공개하지 않았다. 세종은 지난해 10대 로펌 중 가장 높은 매출 성장률을 기록했으나 일시적 성공보수가 반영된 탓에 올해는 기저효과로 상승이 제한될 전망이다.
대형 로펌 한 관계자는 "대다수 로펌들이 매출 인식을 하반기에 몰아서 하는 경향이 있어 실제 순위는 하반기 실적을 포함한 연간 실적에서 갈린다"고 말했다.
■초대형 딜·분쟁이 실적 갈랐다
상반기 실적을 견인한 것은 조 단위 거래와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대형 분쟁 덕분으로 분석됐다. 태평양은 하나은행의 두나무 지분(약 1조원) 인수 자문, KKR의 SK그룹 신재생에너지 사업 인수(약 1조8000억원) 등 대형 거래를 자문했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서는 영풍·MBK파트너스 측을 대리하며 국내 자본시장 사상 최대 규모의 경영권 분쟁을 수행 중이다. 세종은 SK-KKR 거래에서 매각 측을 자문했고, SKT·KT에 이어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건까지 대리하며 사이버보안 분야 강자 입지를 굳혔다.
송무에서는 판례를 새로 쓴 승소가 잇따랐다. 광장은 중대재해처벌법 1호 사건인 삼표산업 사건에서 무죄 판결을 이끌어냈고, 변호사-의뢰인 비밀유지권(ACP)에 관한 대법원 결정도 받아냈다. 지평은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공정위 처분 취소소송 승소로 네이버·카카오모빌리티에 이은 '플랫폼 3연승'을 완성했고, 1200억원대 설탕 담합 과징금의 집행정지 결정도 받아냈다. 바른은 1조원대 피해가 추산되는 홍콩 젠투펀드 환매중단 사태에서 판매 금융기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을 이끌어냈다. 율촌은 재판소원 제도 신설 후 녹십자를 대리해 최초의 전원재판부 심판 회부를 받아냈고,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재산분할 소송 또한 진행하고 있다.
■하반기 승부수는 AI·통합 전문센터
대형 로펌이 공통적으로 꼽은 하반기 키워드는 AI, 경제안보, 재판소원 등이다. 태평양은 이달 1일 글로벌 리걸 AI 플랫폼 '하비(Harvey)'를 국내 로펌 최초로 전사 도입했다. 태평양 관계자는 "시범 적용을 넘어 로펌 전체의 업무 방식을 바꾸는 첫 사례로, 자체 AI 지식 시스템도 연내 구축이 목표"라고 말했다.
세종은 국내 대형 로펌 최초로 'AI·디지털 경쟁법팀'을 출범시켰다. 지평은 하반기 'AI 인프라 센터', 'AI바이오헬스케어센터' 등 특화 조직을 전면 배치한다. 율촌도 통합TMT센터를 출범시켜 AI·데이터·플랫폼 신산업 자문을 강화한다.
대형 로펌 대다수는 올해 통합 전문센터 출범을 핵심 전략으로 제시했다. 공정거래와 노동, 금융규제, 형사, 통상, 조세, 개인정보, 국제분쟁 등이 하나의 프로젝트 안에서 동시 발생하면서, 분야별 전문가를 하나의 조직으로 묶는 '원스톱 서비스'가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김앤장이다. 김앤장은 올해 기존 내부통제팀과 자금세탁방지팀을 통합해 100여 명 규모의 금융리스크컨설팅센터를 출범시켰다. 법률 자문뿐 아니라 내부통제, 검사 대응, AI 기반 리스크 관리까지 하나의 조직에서 수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2022년 출범한 신국제조세연구소도 글로벌조세대응센터로 확대 개편해 다국적 기업의 국제조세 리스크 대응 역량을 강화했다.
대형 로펌 한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하나의 투자나 계약을 추진하더라도 공정거래와 조세, 해외 규제, 개인정보, 기술유출, 노동까지 검토해야 하는 시대"라며 "로펌의 다양한 팀을 하나의 지붕 아래 모은 통합센터가 강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