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동남아판 반도체 동맹 '아세안 칩스법'으로 韓·대만 추격

김준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차이나+1'넘어 독자 공급망 추진
설계부터 패키징까지 분업 가속화
태국 '차량용'·베트남 '팹 착공'
말레이시아 '첨단 패키징' 승부수

동남아판 반도체 동맹 '아세안 칩스법'으로 韓·대만 추격

【파이낸셜뉴스 하노이(베트남)=김준석 특파원】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이 최근들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의 핵심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아세안 각국은 '중진국 함정'을 벗어날 미래 성장동력으로 반도체를 낙점하고 대규모 인센티브를 쏟아붓고 있다. 태국은 전력반도체를 앞세워 제조국 도약에 나섰고, 베트남과 말레이시아는 각각 제조 자립과 첨단 패키징을 무기로 글로벌 기업 투자 유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공급망 핵심 거점을 확보해 대만의 '실리콘 방패'와 같은 전략적 지위를 구축하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미·중 갈등 장기화 속에 단순 생산기지 중심의 '차이나 플러스 원(China+1)' 전략을 넘어 '반도체 허브'를 향한 경쟁이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아세안의 디트로이트' 태국, 차량용 반도체 승부수

7일 외신에 따르면 아세안 각국은 정부 주도로 반도체 산업 육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국가는 태국이다. 태국 정부는 올해 1월 총리 직속 '국가 반도체 및 첨단전자 정책위원회'를 출범시킨 데 이어 지난달에는 '국가 반도체 로드맵 2050'을 발표했다. 로드맵은 2050년까지 2조5000억바트(약 114조원)를 유치해 세계적인 반도체 제조 허브로 도약하는 것이 목표로 하고 있다. 전문 인력 23만명을 양성하고 전력반도체(SiC) 공급망 구축과 첨단 전자제품 국산화율 50% 달성을 통해 설계와 제조 역량을 갖춘 '칩 주권' 확보를 추진한다.

'아세안의 디트로이트'로 불리는 태국은 자동차 생산 기반을 활용해 차량용 반도체를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전기차 전환에 맞춰 핵심 부품인 반도체를 자국에서 생산해 공급망까지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기업 투자도 이어지고 있다. 인피니언은 사뭇프라칸 전력모듈 공장을 가동했고, 하나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는 한국 파워마스터반도체 기술을 기반으로 태국 최초의 SiC 웨이퍼 공장을 건설 중이다. 2027년 양산이 시작되면 자국산 전력반도체를 전기차 산업에 공급하는 수직계열화가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베트남은 제조 자립, 말레이시아는 첨단 패키징

베트남은 후공정을 기반으로 제조 역량 확대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와 하나마이크론, 인텔, 앰코테크놀로지 등 글로벌 기업들이 생산거점을 운영 중이며, 정부는 반도체·AI 연구개발(R&D) 센터 운영 기업에 초기 투자비의 최대 50%를 환급하는 등 파격적인 지원책을 내놨다.

반도체 자립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베트남 최대 국영 통신기업이자 군 소유 기업인 비엣텔은 지난 1월 하노이 호아락 하이테크파크에서 베트남 최초의 반도체 칩 제조공장(팹·Fab) 착공식을 열었다.

말레이시아는 50년 넘게 후공정 경쟁력을 축적하며 세계 반도체 테스트·패키징 물량의 약 13%를 담당하는 아세안 최대 반도체 거점이다. 반도체는 국가 전체 수출의 40%를 차지한다.

인텔은 페낭에 엔비디아 차세대 GPU 생산에 필요한 2.5D 첨단 패키징 단지를 구축했으며, 마이크론은 두 번째 후공정 공장을 증설했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와 램리서치도 투자를 확대했으며, 인피니언은 쿨림에 1조원 이상을 투입해 세계 최대 규모의 SiC 전력반도체 공장을 완공했다.

안와르 이브라힘 총리 정부가 추진하는 '국가반도체전략(NSS)'은 최소 5000억링깃(약 186조원)의 투자 유치와 고숙련 엔지니어 6만명 양성을 목표로 한다. 지난해 말 기준 승인 투자액은 이미 850억링깃(약 31조원)을 넘어섰다.

싱가포르는 고부가가치 연구개발(R&D)과 첨단 제조에 집중하고 있다. 마이크론은 10조원 규모의 고대역폭메모리(HBM) 전용 첨단 패키징 공장을 건설 중이며, 2027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세안 '제3의 반도체 블록' 구상

아세안은 개별 국가 경쟁을 넘어 역내 공급망 통합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달 열린 아세안 장관급 회의에서 태국은 '아세안 칩스법'을 제안했다. 국가별 인센티브를 표준화하고 공급망 간 관세와 물류 장벽을 낮춰 설계는 싱가포르, 제조는 태국, 후공정은 말레이시아와 베트남이 맡는 단일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궁극적으로는 한국과 대만에 맞서는 '제3의 반도체 블록' 구축이 목표다.

고영경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디지털통상 연구교수는 "팬데믹으로 공급망 불안정과 AI 붐을 겪으면서 아세안 국가들은 미래 성장을 위해 반도체 산업이 필수라는 점을 인식하게 됐다"며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생산하는 최첨단 반도체 수준은 아니더라도 각국의 산업 구조에 맞는 수입 대체와 미래 기술 확보 차원에서 반도체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rejune1112@fnnews.com


#아세안 #반도체 #동맹 #한국 #대만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