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AI가 반도체 사이클 바꿨다…AGI까지 수요 폭증"
【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반도체 산업이 과거의 경기순환(사이클) 산업에서 구조적 성장 산업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AI가 범용인공지능(AGI) 단계에 이를 때까지 메모리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만큼 과거처럼 공급 과잉에 따른 급격한 다운사이클을 반복하던 시대와는 달라졌다는 분석이다.
최 회장은 1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SK하이닉스 나스닥 상장 기념 뉴욕특파원 간담회에서 "구조적인 변화는 이미 일어났다"며 "예전과 같은 반도체 사이클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은 확실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반도체 산업은 공급과 수요의 균형에 따라 업황이 반복적으로 오르내렸지만 AI 시대에는 시장의 작동 방식 자체가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현재는 AI 수요 증가 속도가 생산능력 확대를 크게 앞지르고 있으며, 반도체 공장을 증설하려 해도 전력과 용수, 부지 확보 등 다양한 제약으로 공급을 단기간에 확대하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AI 서비스 확산으로 토큰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데이터를 저장하는 KV 캐시(Key-Value Cache) 규모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토큰 사용량이 늘어난다는 것은 결국 저장해야 하는 KV 캐시가 늘어난다는 의미"라며 "AI 시대가 오면서 메모리 저장 수요 자체가 구조적으로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AI는 아직 성장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는 점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지금의 AI는 4~5살짜리 어린아이와 같다"며 "아직 완성형 AI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AGI에 도달할 때까지 엄청난 양의 학습이 계속 이뤄지고 새로운 애플리케이션도 끊임없이 등장할 것"이라며 "어린아이가 성장할수록 기억해야 할 것이 늘어나듯 AI 역시 저장해야 할 데이터가 계속 늘어나 메모리 수요도 함께 커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HBM과 D램, 차세대 저장 기술, 압축 기술 등이 계속 발전하겠지만 어떤 기술 혁신이 나오더라도 저장해야 할 메모리 총량이 늘어나는 흐름 자체를 막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AGI 시대가 올 때까지 메모리 수요 확대는 상당 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실리콘밸리 주요 고객들과의 미팅에서도 화두는 메모리 공급이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고객들이 가장 많이 묻는 것은 '메모리를 얼마나 더 공급할 수 있느냐'는 것"이라며 "올해 물량뿐 아니라 앞으로 폭증할 AI 수요를 전제로 공급 계획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AI 시대에는 과거보다 10배 빠른 의사결정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투자 가능성도 열어뒀다. 최 회장은 "전력과 용수, 부지 등 조건만 갖춰진다면 미국이든 다른 나라든 투자를 검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한국 생산을 줄이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글로벌 공급 능력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은 어느 한 나라의 생산기지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공급 능력 자체를 더 늘려야 하는 시기"라고 강조했다.
나스닥 상장 이후 주가에 대해서는 기업가치 제고를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그는 "주가를 인위적으로 올리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비즈니스를 잘해 기업가치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며 "공모가인 149달러를 지켜낼 수 있도록 성장 잠재력을 실제 성과로 보여주는 것이 경영진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 액면분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투자자들의 요구가 많아지고 회사 내부 검토가 이뤄진다면 고려할 수 있다"면서도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검토된 사안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pride@fnnews.com 이병철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