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 4사 '14조 담합' 발표한 검찰…공정위는 신중모드
형사수사·행정심사 기준 달라…과징금 별도 산정 현장 조사정보 유출 의혹엔 "확인된 바 없어"
[세종=뉴시스]임하은 기자 = 검찰이 정유 4사 가격담합 사건을 기소한 가운데 공정거래위원회는 별도로 담합 범위와 관련매출액 산정 작업을 진행 중이다. 형사처벌을 위한 검찰 수사와 과징금 부과를 위한 공정위 행정심사는 목적이 다른 만큼 최종 제재 수위는 검찰 발표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게 공정위의 설명이다.
12일 정부에 따르면 공정위는 HD현대오일뱅크,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등 정유 4사의 가격담합 의혹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다.
앞서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6일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 간 직접 담합 규모를 14조2000억원으로 산정하고, 정유 4사 법인과 임직원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 검찰은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의 가격 추종 효과까지 포함할 경우 경쟁제한 효과가 약 26조원에 이른다고 봤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미국·이란 전쟁이 발발하자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가 공급가격 인상 시기와 폭을 사전에 조율했고,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은 이를 뒤따르는 방식으로 시장 전반의 가격 상승을 견인했다고 판단했다. 자영주유소를 대상으로 한 전량구매계약, 사후정산제 운영, 공정위 현장조사를 앞두고 있었던 자료 삭제 정황 등도 함께 적시했다.
다만 검찰이 제시한 14조2000억원은 형사처벌을 위해 산정한 담합 규모로, 공정위가 과징금 산정의 기초로 삼는 관련매출액과는 개념상 차이가 있다.
공정위는 관련상품과 위반기간, 거래 형태, 공동행위별 위반 범위 등을 다시 따져 과징금 산정의 기초가 되는 관련매출액을 산정한다는 방침이다. 이후 위반행위의 중대성과 부과기준율 등을 종합적으로 심사한다.
공정위 관계자는 "공정위는 과징금 부과는 물론 이후 행정소송까지 고려해 관련매출액을 정확히 산정해야 한다"며 "관련상품의 범위, 위반기간, 공동행위별 범위 등을 모두 따져봐야 하기 때문에 검찰 발표와 동일한 수치가 그대로 적용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남동일 공정위 부위원장도 최근 전분당 담합 사건 브리핑에서 "아무래도 검찰은 형사제재를 위해 관련매출액을 산정하지만, 공정위는 과징금 부과라는 경제적 제재의 기초가 되는 만큼 세부적으로 발라서 보는 부분들이 있어 차이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번 과징금 규모가 역대 최대 수준이 될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정유사들의 규모 자체는 크지만, 실제 가격 인상이 이뤄진 기간이 길지 않았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검찰의 결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사건은 공정위가 먼저 조사에 착수한 후 검찰이 추후 별도 수사를 거쳐 먼저 기소한 사례에 해당한다. 공정위는 올해 3월 초 정유 4사에 대한 현장조사에 착수했고, 이후 조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검찰도 뒤이어 압수수색에 나섰다.
최근 검찰이 공정거래 사건을 직접 수사하는 사례가 늘면서 두 기관의 역할이 과거보다 상당 부분 중첩되는 양상이다. 전분당 담합, 설탕·밀가루 담합 등에서도 검찰이 공정위 심의에 앞서 수사를 먼저 진행하고 결과를 발표하는 사례가 잇따랐다.
다만 공정위는 형사절차와 별개로 독립적인 행정심사를 통해 담합 여부와 경제적 효과, 관련매출액을 다시 판단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검찰 발표만으로 과징금 규모를 예단하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현재는 심사보고서 작성 전 단계로, 위반행위의 중대성이나 과징금 규모를 언급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공정위 현장조사 정보가 사전에 유출돼 관련 자료가 삭제됐다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두고는 두 기관의 시각에 다소 온도차가 나타났다.
남 부위원장은 정유사 사건과 관련해 "증거 삭제 정황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공정위와 검찰의 현장조사 시기가 비슷했던 데다, 당시 중동 정세 관련 정부의 시장점검과 언론 보도가 이어지면서 업계가 조사 가능성에 대비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까지 공정위 조사 정보가 사전에 누설됐다는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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