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포럼] 베트남, 중진국 함정 넘을까

파이낸셜뉴스
권율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권율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세계은행이 최근 베트남을 상위 중소득국(Upper Middle-Income Country·UMIC)으로 상향 조정했다. 2025년 1인당 국민총소득이 4970달러를 넘기며 도이머이 개혁 40년 만에 새로운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그러나 상위 중소득국 진입은 축배를 들 시점이 아니라 중진국 함정(middle income trap)을 피해야 하는 더 어려운 과제의 시작이다. 아세안 주요국은 물론 수많은 국가가 이 문턱에서 생산성 정체와 산업혁신 부재로 성장의 벽에 부딪혔다.

동남아에서 그 시험대가 바로 전기차 산업이다. 전기차는 배터리, 반도체, 전력망, 소프트웨어, 인공지능을 연결하는 대표적인 융합산업으로 제조업 전반의 생산성 향상을 견인할 핵심 산업으로 평가된다. 이에 따라 한때 일본 브랜드가 장악했던 아세안의 자동차 시장은 전기차를 기반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자동차 생산허브인 태국은 오랜 기간 축적한 부품 생태계와 숙련인력을 바탕으로 중국 전기차 기업의 투자를 끌어들이며 생산량을 늘리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 수준의 니켈 자원을 앞세워 배터리 원료에 기반한 공급망을 강화하고, 말레이시아는 중국계 전기차의 위탁생산 거점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베트남의 선택은 다르다. 단순한 하청 생산기지에 머무르지 않고 독자 브랜드를 키우는 길을 택했다. 빈패스트(VinFast)는 2025년 한 해 17만5000여대를 판매하며 베트남 전체 승용차 시장의 약 30%를 차지하여, 15개월 연속 1위 브랜드에 올랐다. 빈그룹 계열의 빈에스는 배터리팩 생산을 시작했고, 브이그린이 구축한 15만개 이상의 충전포트도 전국으로 확대됐다. 전기차 시장 규모는 2025년 31억달러에서 2030년 80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빈패스트의 성장은 단순한 판매실적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베트남이 처음으로 자국 브랜드를 중심으로 미래차 생태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산업정책 전환이 현실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전기차 보급을 넘어 핵심 부품과 기술을 내재화하고 녹색전환과 함께 미래차 기술과 브랜드, 설계 역량을 축적하겠다는 장기적 포석이다. 베트남이 전기차를 축으로 디지털 경제와 첨단제조업의 결합을 서두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현실은 아직 녹록지 않다. 베트남의 완성차 판매는 빠르게 늘고 있지만 배터리·반도체·차량용 소프트웨어 등 핵심 기술은 해외 의존도가 높다. 시장을 키우는 것과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은 전혀 다른 과제다. 특히 중국의 저비용 대량생산에 대응하려면 베트남은 전기차 산업생태계 구축과 전략산업 연구개발(R&D) 확대를 뒷받침할 수 있는 새로운 산업협력 모델이 필요하다.

한국 역시 이를 새로운 공급망 파트너십의 기회로 인식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투자 확대가 아니라 기술과 공급망을 함께 설계하는 전략적 협력이다. 베트남의 도전은 이제 시작이며, 그 성패는 결국 중진국 함정을 넘어설 수 있는 산업 경쟁력 확보에 달려 있다. 그 도전에 한국이 전략적 파트너로 참여할 때 양국은 물론 동남아시장에서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함께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권율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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