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주권'시대...K-AI 생태계 구축 전략 시급
美, 국가안보 차원에서 AI모델 접근권한 관리
中, 기술자립 이어 세계시장 확장 전략
EU도 소버린AI 총력
"韓, AI생태계 정책 여전히 미흡"
[파이낸셜뉴스] 6월 12일(현시간) 미국 상무부는 미국 인공지능(AI) 기업 앤트로픽에 "국가안보 권한에 따라 페이블5·미토스5에 대한 모든 외국 국적자의 접근을 즉시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앤트로픽은 즉시 최상위 AI모델에 대해 전세계 모든 사용자의 접근을 차단했다.
전례없는 글로벌 'AI 셧다운'이 현실화되면서 전세계는 AI가 언제든 비용을 지불하고 쓸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국가가 통제하고 무기화할 수 있는 전략자산이라는 것을 체감했다. 프랑스 유력 대선 후보 중 한명인 브뤼노 르타이요 상원의원은 "AI는 주권 그 자체"라고 진단했다. 미국과 중국이 이미 AI를 국가 전략자산으로 규정하고 정부차원의 관리체계 구축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유럽연합(EU)도 본격 AI 주권 강화에 나서고 있다. 세계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국가대표 AI모델 개발에 이어 1000조원 규모 AI데이터센터(AIDC) 구축 정책을 내놨다.
13일 파이낸셜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미국, 중국 유럽 등 주요국가들은 단순한 AI모델 개발이나 반도체 생산 등 개별 사업의 영역을 넘어 국가 핵심산업과 안보, 공공서비스가 해외 AI 플랫폼이나 외국 기업의 정책 변화에 좌우되지 않도록 기술·산업적 자립 기반을 갖추는 'AI 주권' 정책을 본격화하고 있다. AI 경쟁이 반도체 생산이나 AI모델 개발, AIDC설립 등 개발기업의 경쟁을 넘어 AI모델-AIDC-클라우드-데이터 정책을 연결하는 국가단위 AI 생태계 경쟁으로 확장된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도 AI정책을 AI생태계 전체의 자립기반을 제시하는 AI 주권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이 잇따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공개연설을 통해 "우리는 어떤 외국 국가도 AI경쟁에서 우리를 이기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 며 '국가AI행동계획'을 공개했다. AI를 미래 경제의 핵심 산업인 동시에 군사력과 정보력, 외교력까지 좌우하는 기반 기술로 규정하고, 첨단 AI모델이 경쟁국으로 이전되는 것이 국가 안보 위협요인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올들어서는 첨단 AI 반도체에 이어 최첨단 AI모델까지 국가 안보의 범주에서 관리하기 시작했다. 첨단 AI반도체에 이어 앤트로픽, 오픈AI 등 AI모델을 공개하기 전 미국 정부의 사전점검을 거치도록 한 것이다.
AI 기술 단속과 함께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초대형 AIDC와 AI컴퓨팅 인프라를 확충하고, 민간 기업의 연구개발을 적극 지원하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AI 기업들이 미국 내에서 경쟁과 협력을 이어가도록 생태계를 짜고 있다.
중국은 글로벌 시스템 의존을 최소화하고 자체 인프라·플랫폼 중심의 완전 자립형 생태계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 2030년 세계 1위 AI국가가 되겠다는 'AI+ 전략'을 축으로 산업 전반에 AI를 융합하는 동시에, 딥시크·키미 같은 AI기업 육성을 통해 자체 모델로 기술 자립과 글로벌 확장을 동시에 노리고 있다.
특히 중국은 국가데이터관리국(NDG)을 중심으로 공공기관이 보유한 교육, 보건, 환경 등 고품질 데이터를 선별해 AI 개발에 개방하는 공공 데이터 AI 최적화 정책을 통해 중국인들의 막대한 데이터를 AI기술 자립 핵심 자산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중국 정부 차원의 강력한 지원 아래 화웨이는 자체 AI반도체와 클라우드 플랫폼을 개발했고, 알리바바와 바이두 등 빅테크 기업은 물론 딥시크 같은 스타트업도 이미 자체 AI칩을 개발,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는 단계다. 게다가 딥시크, 큐원 등 중국 AI기업들은 최신AI모델을 오픈소스(오픈웨이트) 형태로 공개해, 올 6월 기준 전세계 AI토큰 사용량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AI 모델을 통제하는 이면에서 중국은 성능 좋은 AI모델을 개발해 기술자립을 실현한데 이어 오픈소스형으로 세계 AI 개발 생태계를 잠식하고 있는 셈이다.
유럽연합(EU)은 AI 경쟁에서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아왔지만, 최근에는 '소버린 AI(Sovereign AI)'를 핵심 정책으로 내세우며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유럽의 소버린 AI는 유럽의 언어와 문화, 법률, 산업 구조를 반영한 AI를 유럽의 인프라 위에서 안전하게 운영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데이터 주권과 개인정보 보호, 산업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EU는 AI 활용을 촉진하면서도 위험도에 따라 규제를 차등 적용하는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공공서비스와 의료, 금융, 고용처럼 사회적 영향이 큰 분야에는 높은 수준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요구하는 반면, 일반적인 AI 서비스에는 혁신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유연성을 유지하려는 접근을 택하고 있다.
산업 정책도 달라지고 있다. 프랑스는 대규모 AI 컴퓨팅 인프라 구축과 미스트랄AI 같은 스타트업 육성에 집중하고 있다. 독일은 제조업 AI와 산업용 데이터 플랫폼을 강화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1000조원 규모 AIDC 구축 프로젝트에 시동을 걸었다. AI반도체와 프론티어급 국가대표 AI모델 개발의 뒤를 이어 대규모 연산을 담당하는 AI데이터센터까지 국내 생태계로 묶어 소버린 AI를 완성하겠다는 구상이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난달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전 세계에서 향후 5년간 AI데이터센터에 투자하겠다는 금액이 5.5조달러, 우리 돈으로 약 8400조원에 달한다"며 "우리나라는 2029년까지 8.4GW 규모의 AI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데 550조원을 투자하고, 2035년까지 10GW를 추가 구축해 총 1000조원 이상의 투자 유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AI 산업의 핵심 부가가치가 국내에서 순환하는 밸류체인을 구축한다는 목표다.
그러나 업계와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의 AI정책이 여전히 개별산업 단위의 분절된 정책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그동안 우리 정부의 국내 AI 전략은 국산 반도체와 독자 AI 모델 확보에 집중돼 있던 정책이 AIDC 중심의 인프라 정책으로 확장됐지만, 전체 생태계를 아우르는 종합전략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학계 한 전문가는 "반도체와 AI모델 분야에서는 정책이 끌고 기업이 발을 맞추는 구조가 완성됐지만, 정작 AI 서비스가 돌아가는 클라우드·AIDC 같은 인프라는 해외 의존도가 높고, 데이터 정책은 여전히 정책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은 정부가 시장을 만들고 민간이 혁신을 주도하는 구조이고, 중국은 국가가 생태계를 설계하고, 유럽은 규범과 산업 정책을 함께 추진하는 반면 한국은 우수한 기업과 연구 인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국가 차원의 장기전략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며 "기업의 투자 계획에 속도를 붙여줄 수 있는 범부처 차원의 구체적인 AI주권 세부 정책이 시급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cafe9@fnnews.com 이구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