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김지미 클릭' 전 '박근혜 책 사러 가자'가 있었다…미스터리 낙서가 담은 '낙서의 심리' [묻:따]

서윤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유튜브 채널에 박근혜 옥중 서신 엮은 책·김지미 추모로 문구 변화
낙서가 발견되는 지역도 중구·성동구 넘어 종로·동대문구로 확장 
시민 추적단 꾸려지고 전시회까지 열려…낙서 찍는 사람들도 목격
전문가 "감정의 배설이자 과시 욕구 발현…대상 바꿔 우상화 가능성"
공공기물 훼손 책임 남아…경찰 수사는 작성자 특정 못 해 수사 종결

'김지미 클릭'(위)이라는 낙서가 발견되기 전에도 2021년엔 한 유튜브 채널을 클릭(아래 왼쪽)하라는 낙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 서신을 담은 책을 소개하며 클릭하라는 낙서가 도로 곳곳에 나타났다. /사진=서윤경 기자
'김지미 클릭'(위)이라는 낙서가 발견되기 전에도 2021년엔 한 유튜브 채널을 클릭(아래 왼쪽)하라는 낙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 서신을 담은 책을 소개하며 클릭하라는 낙서가 도로 곳곳에 나타났다. /사진=서윤경 기자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대신 질문하습니다. 알고 싶고 궁금한 데 묻기 어렵거나 찾아보기 귀찮았던 일들, [묻:따]가 대신 물어보고 찾아내서 답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의 '질문',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파이낸셜뉴스] 2021년 보도블록 위에 적힌 '클릭', 2022년 공사장 가설 울타리에 남겨진 '클릭', 그리고 2026년 변압기에서 다시 발견된 '클릭'.

서울 도심 속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낙서는 6년 전 유튜브 채널을 클릭하라더니 박근혜 전 대통령을 기억하기 위한 클릭으로 이어졌고 최근엔 원로배우 김지미를 향한 추모하는 '김지미 클릭'이라는 문구로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전봇대와 신호등, 변압기, 건물 외벽, 공사장 가설 울타리까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적힌 굵은 손글씨는 이제 이를 찾아 기록하고 전시하는 '추적단'까지 등장할 정도로 하나의 도시 현상이 됐다.

도대체 누가, 왜 서울 곳곳에 이런 낙서를 남기고 있는 것일까.

유튜브에서 박근혜 책, 다시 '김지미 클릭'으로

지난 2021년 서울 중구 명동에서 충무로로 향하는 길 위에 쓰여진 낙서는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를 '사기 탄핵'이라 주장했다./사진=서윤경 기자
지난 2021년 서울 중구 명동에서 충무로로 향하는 길 위에 쓰여진 낙서는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를 '사기 탄핵'이라 주장했다./사진=서윤경 기자

'김지미 클릭' 낙서의 흔적은 적어도 2021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 중구 명동에서 충무로로 향하던 길에서 발견된 '○○○TV 유튜브 클릭하자'는 내용의 낙서는 2000년 전국의 선영이들을 가슴 설레게 한 여성포털 사이트의 광고를 떠올리게 했다.

당시 서울 대학가와 골목길 전봇대에 별다른 설명없이 '선영아 사랑해'라는 글귀만 적힌 종이가 부착됐고 광고라는 사실이 알려지기 전까지 화제가 됐다. 길 위에 매직으로 휘갈겨 쓴 듯한 낙서 역시 특정 유튜브 채널을 알리기 위한 비공식 홍보물이라는 추측이 나올 법 했다.

궁금증은 금새 해결됐다. 비슷한 시기 같은 필체로 추정되는 '사기 탄핵 진실을 바로 알자'는 낙서가 발견됐고 해석은 달라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7년 3월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뒤 국정농단 사건 등으로 재판을 받았고 2021년 1월 징역 20년을 확정받은 해였다.

낙서의 내용은 그해 말부터 달라졌다. 박 전 대통령이 수감 중 지지자들과 주고 받은 편지를 묶은 책 '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습니다'가 2021년 12월 출간된 이후부터다. 책 제목과 함께 '국내도서 최고 인기 베스트셀러 1위 교보문고'라거나 '클릭해서 보자' 등의 문구로 책에 대한 정보를 알리는 긴 문장을 담기 시작했다.

지난 2021년 12월 이후 서울 성동구 왕십리와 을지로의 공사장에 세워진 가설 울타리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 서신을 묶은 책 '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습니다'를 홍보하는 낙서가 쓰여졌다./사진=서윤경 기자
지난 2021년 12월 이후 서울 성동구 왕십리와 을지로의 공사장에 세워진 가설 울타리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 서신을 묶은 책 '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습니다'를 홍보하는 낙서가 쓰여졌다./사진=서윤경 기자

이후 비슷한 내용으로 박 전 대통령을 향하던 메시지는 지난해 말부터 또 한 번 달라졌다. 2025년 12월 7일 미국에서 별세한 원로배우 김지미를 추모하는 내용이었다. 김지미는 70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하며 1960~197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했던 배우로, 향년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거리에는 '동양 최고 미인 김지미씨 클릭 극락왕생', '한국영화 상징 경국지색 동양 최고 미인 김지미 별세', '김지미 별세 인생무상' 같은 장문의 낙서가 나타났다.

최근들어 표현이 점차 짧아지더니 '김지미 클릭'이라는 다섯 글자로 압축됐다. 글자수가 줄어드는 대신 낙서의 수는 늘어났고 지역도 확장됐다.

중구와 성동구 일대에서 주로 발견되던 낙서는 종로구와 동대문구 등으로 활동 반경을 넓혀 서울역과 시청, 종각, 종로5가, 청량리 등 주요 도심 구간에서잇따라 목격됐다.

낙서를 수집하는 사람들…전시회와 영화 상영회까지

'김지미 클릭'이라는 미스터리한 낙서는 사람들을 거리로 불러냈다.

온라인에서는 낙서가 발견된 위치를 지도에 표시하는가 하면 작성자의 이동 경로를 추정하는 게시물도 이어졌다. 낙서가 나타났다는 지역을 직접 찾아가 낙서를 수집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지난 14일 저녁 서울 성동구 왕십리의 한 변압기 앞에서도 '김지미 클릭'을 촬영하는 시민을 만날 수 있었다.

남은주씨(23)는 "온라인에서 관련 내용을 접한 뒤부터 예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낙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며 스마트폰에 저장된 사진들을 보여줬다. 그는 "거리를 걷다가 발견할 때면 사진을 찍었는데 벌써 20장이 넘었다"고 말했다.

반복되는 낙서는 급기야 전시 소재가 됐다.

낙서를 추적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스타그램 계정 '지미츄로스'는 지난달 16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충무로의 한 복합문화공간에서 '김지미 클릭'을 주제로 전시회를 열었다.

불법 낙서가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도시 탐험과 기록, 전시로 이어지면서 뜻밖의 서브컬처로 재생산된 셈이다.

같은 사람이 썼나…"가능성 있지만 단정 어려워"

2025년 12월부터는 미국에서 별세한 원로배우 김지미를 추모하는 낙서가 쓰여졌다. 최근엔 '김지미 클릭'이라는 압축된 단어가 도심 곳곳에서 나타나면서 이를 찾아나선 사람들까지 생겨났다./사진=서윤경 기자
2025년 12월부터는 미국에서 별세한 원로배우 김지미를 추모하는 낙서가 쓰여졌다. 최근엔 '김지미 클릭'이라는 압축된 단어가 도심 곳곳에서 나타나면서 이를 찾아나선 사람들까지 생겨났다./사진=서윤경 기자

유튜브 채널과 박근혜 전 대통령, 원로배우 김지미까지 낙서가 언급하는 대상은 달라졌지만 글씨 형태와 '클릭'이라는 표현, 낙서가 발견되는 지역이 겹친다는 점에서 한 사람이 수년간 계속 문구를 바꿔가며 써온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필적감정 전문가는 사진 속 글자들에 대해 글씨를 오른쪽으로 다소 기울여 쓰는 경향, 획을 끊기보다 길게 이어가는 습관이 공통적으로 반복된다고 짚었다. 또 'ㅅ', 'ㅈ', 'ㄱ' 등 일부 자음에서 각을 세우는 방식도 유사하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다만 사진만으로 필적의 동일성을 확정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 전문가는 "일부 필기 습관이 비슷해 동일인의 필적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면서도 "대조할 수 있는 원본 필적과 충분한 반복 글자가 없어 동일인이 작성했다고 확답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2021년 낙서에 등장한 유튜브 채널 운영자는 자신과 작성자의 관련성을 부인했다.

그는 "우리 채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관련 소식을 꾸준히 다뤄온 것은 사실"이라며 "박 전 대통령의 소식을 전하다 보니 우리 채널을 알린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감정의 배설 넘어 우상화·집착 반영 가능성"

반복적으로 낙서를 하는 심리적 배경을 두고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배상훈 우석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특별한 의미가 없는 기호나 문장을 공공장소에 반복해서 쓰는 행위는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바깥으로 표출하는 '감정의 배설'이자 누군가에게 발견되기를 원하는 과시 욕구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특정 인물이나 신념을 장기간 반복해 드러내는 행위는 성격이 다르다고 봤다.

배 교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김지미처럼 특정 대상만 지속적으로 언급한다면 단순한 감정 표출보다는 우상화 또는 집착에 가까운 심리가 반영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인물과 메시지를 공공장소를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계속 보여주려는 욕구가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미츄로스' 운영자 역시 낙서의 변화에 공통된 맥락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우상이나 아이돌처럼 바라보던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김지미를 추모하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며 "표현이 공격적이거나 폭력적이기보다는 자신이 좋아하거나 중요하게 여기는 대상을 반복적으로 알리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서로 연결돼 보였다"고 말했다.

전시 소재가 됐지만 낙서는 여전히 불법

시민들에게는 호기심과 놀이의 대상이 됐지만, 시설물을 관리하는 기관에는 골칫거리가 됐다.

중구와 성동구 등 관할 자치구에는 낙서 제거를 요구하는 민원이 접수되기도 했지만, 낙서가 적힌 전봇대와 변압기, 신호등과 가설 울타리 등은 시설물에 따라 관리 주체가 달라 일괄적인 제거도 어렵다.

낙서를 했다가 법적 책임을 지는 경우도 있다. 실제 서울 용산구 일대에서 '이갈이'와 이를 뜻하는 영어 단어 'bruxism' 등을 반복해서 쓴 미국인은 공용물건손상과 재물손괴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지난해 4월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약 1년 동안 138차례 낙서를 남겼으며, 법원은 상당수 행위를 예술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김지미 클릭' 낙서와 관련해서도 동대문경찰서와 혜화경찰서가 작성자를 추적했지만, 신원을 특정하지 못해 내사를 종결한 것으로 전해졌다.

만약 작성자가 특정되고 고의로 공공장소에 반복해서 낙서를 남긴 사실이 확인되면 경범죄처벌법 위반에 따른 범칙금 부과나, 훼손 정도에 따라 재물손괴 혐의 적용도 검토할 수 있다.

y27k@fnnews.com 서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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