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모이게 한 국가, 부끄러운줄 알아야"...범죄피해자들 '보완수사권 폐지'에 성토
"보완수사 요구만? 진실 사라지라는 것"...피해자들 "구제책 마련하라"
검찰 단계서 진술·증거 보강..."제한적 보완수사권은 필요"
[파이낸셜뉴스]"증거 확보가 하루하루 시급한 사건에서 몇 달씩 보완수사 요구만 하라는 것은 그냥 진실이 사라지길 기다리라는 말과 같습니다."
15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관. 집단 성폭력과 가정폭력, 강력범죄 피해자들이 차례로 마이크를 잡고 검찰의 보완수사 필요성을 호소했다. 일부 피해자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며 울먹였다. 이들은 "경찰 단계에서 놓친 혐의와 증거가 검찰의 보완수사로 밝혀졌다"며 보완수사권을 폐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우려를 나타냈다. 현장 실무를 맡는 법조인들은 "피해자 권리 보호를 위해 제한적인 보완수사권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김모씨 등이 참여한 '피해자 없는 검찰개혁을 반대하는 피해자들과 변호사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현행 개정안은 피의자 인권 강화에 치우친 반면 피해자 권리구제 장치는 부족하다"며 경찰의 부실수사를 바로잡을 제도와 피해자 불복 절차 마련을 촉구했다.
이날 현장에서는 집단 성폭력, 교제폭력, 가정폭력,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 등 피해자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참석하지 못한 3명의 피해자는 사회자가 증언문을 대독했다.
인천 강화 가정폭력 유기치상 사건 피해자의 딸 A씨는 경찰의 초동수사 부실을 지적했다. 경찰이 현장 사진과 혈흔, 가해자의 의복 등을 제때 확보하지 못했고, 블랙박스와 폐쇄회로(CC)TV 등 주요 증거도 상당수 사라졌다는 것이다. A씨는 "수사기관이 해야 할 일을 피해자 가족이 직접 찾아다니며 요구해야 했다"며 "보완수사권이 폐지되면 피해자는 마냥 기다리며 불안과 분노로 밤을 지새워야 하느냐"고 말했다.
검찰에 송치된 뒤에야 진술 기회를 얻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김씨는 "검찰은 제게 몇 번이고 의견을 물었고 진술 기회를 줬다"며 "앞으로 검찰이 없다면 피해자는 말 그대로 참고인에 불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건은 경찰 단계에서는 중상해 혐의였지만 검찰이 살인미수로 변경해 기소했고, 항소심에서는 강간살인미수 혐의가 추가돼 형량이 높아졌다. 김씨는 "'조금만 더 신경 써줄 수는 없겠느냐'고 피해자가 나서기란 쉽지 않다"며 "결국 이렇게 피해자들을 모이게 만든 국가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 집단 성폭력 사건 피해자 B씨는 경찰의 불송치 결정 이후 검찰의 재수사 요청으로 참고인 조사가 이뤄졌고, 공소시효 만료 직전 기소가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B씨는 "경찰 조사에서는 이뤄지지 않던 참고인 조사가 검찰에서 진행됐고 그 과정에서 중요한 진술이 확보됐다"며 "보완수사가 없었다면 끝내 구제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매니지먼트 회사 대표로부터 위력관계 성폭력을 당한 C씨는 경찰이 한 차례만 피해자를 조사한 뒤 가해자를 불송치했다고 전했다. C씨는 "다행히 검찰에서 직접 수사를 해서 기소가 됐다"며 "사건이 불송치로 끝났다면 제가 살아갈 이유가 있었겠느냐"고 되물었다.
이날 현장에 모인 변호사들은 검찰의 직접 보완수사를 전면 폐지하기보다 일정 범위에서 제한적으로 유지하면서 피해자가 경찰의 불송치나 부실수사에 실질적으로 불복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보완수사는 공소제기 판단에 필요한 범위로 제한하고, 별건 인지를 금지하는 대신 증거가 사라질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긴급 보완수사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지원 변호사는 "피해자들은 현재 수사기관이 뭘하는지 모른 채 무조건 기다린다"며 "검사가 직접 확인 가능한 사항까지 '요구'해야 하면 (회신까지) 10분이 53일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 내부에서도 '보완수사요구권'만으로는 경찰 수사를 실질적으로 통제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검찰 중간 간부는 "옛날에는 검사가 경찰서를 불시에 방문해 유치장에 불법 감금한 사람이 없는지 감독하고 수사기록을 육안으로 확인해 내사 사건 등에서 위법한 수사 정황이 없는지 등을 확인했다"며 현재는 검찰의 경찰에 대한 수사통제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서 보완수사마저 사라진다면 검사는 손발이 묶인 채 사법경찰관의 수사기록만을 '열람'하는 존재로 머무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경찰 징계를 통해 보완수사요구권의 실효성을 강화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앞서 언급된 검찰 간부는 "보완수사는 경찰의 관심을 떠난 사건을 검사가 경찰을 대신해 다시 살펴보는 절차"라며 "보완수사요구를 해도 경찰이 잘 받아들이지 않는 실무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간 연차 검찰 관계자는 "검사 조직과 경찰 조직이 분리된 만큼, 검사의 요구에 따르지 않는 사법경찰관에 대한 인사상 불이익이 없다면 경찰이 검사의 말을 따를 리 만무하다"고 말했다.
scottchoi15@fnnews.com 최은솔 김동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