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특파원칼럼] 미국에서 만난 90대 참전용사들

파이낸셜뉴스
이병철 뉴욕특파원
이병철 뉴욕특파원

행사 시작 전부터 흰색 셔틀버스가 차례로 도착했다. 버스 뒤편 리프트가 천천히 내려오자 휠체어를 탄 참전용사들이 한 명씩 모습을 드러냈다. 봉사자들이 휠체어를 밀고, 의료진이 부축하며 행사장으로 안내했다. 한때 20대 청년이었던 이들은 이제 대부분 90대를 훌쩍 넘겼다. 스스로 걷기 어려운 참전용사도 적지 않았다.

기념식이 시작되자 노병들은 다시 가슴에 손을 올렸다. 미국 국가가 울려 퍼지자 휠체어에 앉은 참전용사도 따라 불렀고, 지팡이를 짚은 노병은 힘겹게 일어나 경례를 했다. 행사가 끝난 뒤 뉴욕총영사는 참전용사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을 잡으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미국 뉴저지 포트리에서 열린 한국전 기념행사는 분명 엄숙했고 의미 있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기념식 자체가 아니라 세월이었다. 참석한 참전용사들의 머리는 대부분 희끗했고, 휠체어와 보행기는 이제 행사의 익숙한 풍경이 됐다.

며칠 전 만난 95세 한국전 참전용사의 말도 그 풍경과 겹쳐졌다. 그는 살아 있는 전우들의 안부를 먼저 물었다. 요양원에 있는 전우, 병원에서 투병 중인 전우, 연락이 끊긴 전우들. "이제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그 말은 자신의 삶보다 한국전 참전용사 공동체 전체를 향한 걱정처럼 들렸다. 그리고 그 걱정은 근거 없는 불안이 아니었다.

실제로 미국 한국전참전용사회(KWVA)가 처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미국 전역에 흩어진 참전용사들을 연결하고 회원들의 안부를 확인하며 분기마다 잡지를 발간하는 것이 이 단체의 역할이다. 그러나 회원 수는 빠르게 줄고 있고 재정도 넉넉하지 않다. 과거 매달 발간하던 잡지는 제작비 부담으로 분기 발간으로 바뀌었다. 그 잡지는 참전용사들을 한국과 유일하게 연결하는 통로다. 그런데 이 통로를 지탱하는 실무는 체계적인 조직이 아니라 사실상 한국인 봉사자 한 사람의 손에 맡겨져 있다. 정부와 기업을 찾아다니며 후원을 요청하는 일도, 잡지를 만드는 일도, 참전용사와 한국을 이어주는 일도 결국 개인의 헌신에 기대고 있다는 뜻이다. 한 사람의 선의가 사라지는 순간 그 연결고리도 함께 끊길 수 있다.

한국에서는 해마다 6월이면 6·25전쟁과 관련한 기념식이 곳곳에서 열리고 "참전용사의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그 말 자체는 틀리지 않다. 하지만 기억은 행사 하루로 유지되지 않는다. 한 사람의 헌신으로도 유지되어서는 안 된다.

참전용사들이 서로 연락할 수 있도록 돕는 단체가 있어야 하고, 생존자의 증언을 기록하는 사업이 계속돼야 하며, 마지막 세대가 살아 있는 동안 역사를 보존하는 작업도 이어져야 한다. 기억은 행사장이 아니라 일상에서, 그리고 몇몇 개인의 선의가 아니라 제도 위에서 유지되는 것이다.

한국은 이제 세계가 인정하는 경제강국이 됐다. 미국 거리에서는 삼성전자와 현대차를 쉽게 볼 수 있고, 젊은 세대는 K팝과 K드라마를 즐긴다. 하지만 정작 그 성장의 출발점을 지킨 이들 곁에는, 여전히 한 사람의 손이 전부다.

1950년 이름조차 생소했던 나라를 위해 미군 178만여명이 한국전쟁에 참전했고, 3만6000여명이 전사했다. 그들의 희생 위에서 대한민국은 산업화를 이루고 민주화를 완성했으며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이제 한국이 고민해야 할 질문은 하나다. "우리는 참전용사들에게 충분히 감사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그들이 모두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 기억을 이어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다.

현장에서 만난 한 한국인은 "한국에서는 참전용사를 소재로 행사와 콘텐츠는 많이 만들어지지만, 정작 이들을 직접 돕거나 이들이 활동하는 단체를 꾸준히 지원하는 일은 드물다"고 말했다. 기억은 말이 아니라 예산으로 남고 제도로 이어질 때 비로소 다음 세대의 역사가 된다.

pride@fnnews.com 이병철 뉴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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