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視角] 공짜보다 일자리를 원하는 세대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말이 있다. 40대 이상의 중장년에게는 익숙한 말이지만 요즘 세대에는 낯설 수 있다. 최근의 문해력 논란을 대입하면 양잿물을 '서울 양재동에 흐르는 하천' 이름쯤으로 오해할지도 모르겠다.
잘못 먹으면 목숨까지 위험한 물질도 공짜라면 먹는다는 얘기다. 과장된 표현이고 먹고살기 힘든 시절에 나왔다. 그만큼 모든 것이 귀했다. 주는 것은 일단 받고 보는 게 남는 장사였다.
81%. 지난해 한국리서치 조사에서 지하철 무임승차 연령을 높이는 데 찬성한 65세 이상 응답자의 비율이다.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다.
공짜로 타던 지하철을 돈을 내고 타겠다는 것이다. 이전 노인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자신감이고 여유다. '65세가 됐으니 이제 노인 대접을 받아야겠다'는 생각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어르신들이 모이는 곳도 달라지고 있다. 갈 곳이 없어 모이던 경로당 이용률은 보건복지부 노인실태조사 기준 2008년 46.9%에서 2023년 26.5%로 거의 반 토막 났다. 지금은 더 줄었을 것이다.
반면 며칠 전 찾은 서울의 한 시립도서관에서는 5060이 많이 눈에 띄었다. 귀에는 이어폰을 끼고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정리하는 사람, 자격증 책을 들여다보는 사람 중 5060으로 보이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과장되게 말하면 2030세대 절반, 5060세대 절반처럼 보일 정도였다.
한 도서관의 풍경을 세대 전체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 다만 적어도 그날 그 열람실의 5060에게는 갈 곳과 할 일, 목적이 분명했다.
숫자는 더 분명했다. 국가데이터처가 지난해 내놓은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55~79세의 69.4%는 앞으로도 일하기를 원했다. 이들이 스스로 정한 은퇴 시점은 평균 73.4세. 10명 중 7명이 계속 일하기를 원하고, 그들이 원하는 은퇴는 평균 일흔셋을 넘긴다는 얘기다.
일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 이들을 활용하는 기업도 있다. 맥도날드에는 지난해 9월 기준 870명의 시니어 크루가 근무했다. 최고령 직원은 82세다. 복지 차원에서만 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민간은 이미 이들을 '지불한 만큼 제 몫을 하는 노동력'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 정책은 여전히 고령자를 '일자리를 만들어 줘야 하는 사람'으로 보는 데 익숙하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재정을 투입해 노인 일자리를 만들고 참여자를 모집하는 방식이다. 물론 필요한 사업이다. 생계가 어려운 노인에게는 절실하다.
하지만 지금 60대로 진입하는 세대는 다르다. 1964~1974년생 2차 베이비부머는 954만명, 한국은행 분석으로 전체 인구의 18.6%에 달한다. 이들은 교육 수준과 직업 경험도 이전 세대와 다르다.
지금 정치권의 논의는 '정년을 몇 살로 늘릴 것인가'라는 획일적인 싸움에만 갇혀 있다. 정년을 늘리느냐 마느냐, 임금을 깎느냐 마느냐를 두고 노사 갈등만 키우는 사이 시간은 흘러간다.
이들을 놀리는 것은 고령층 본인에게도,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기업에도, 결국 우리 경제에도 거대한 손해다.
한국은행은 2차 베이비부머의 은퇴만으로 2034년까지 연간 경제성장률이 최대 0.38%p 깎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대로 이들의 고용을 끌어올리면 하락 폭을 3분의 1 이상 줄일 수 있다는 게 같은 보고서의 결론이다.
'81%'가 스스로 공짜를 마다하며 보낸 신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정부는 최근 잠재성장률 3% 달성, 수출 세계 4강 진입, 1인당 국민소득 5만달러라는 야심 찬 '3·4·5 비전'을 내놨다. 그 비전의 빈칸을 채울 수 있는 이들이 바로 일하겠다고 손을 든 5060이다. 이제 정부가 실질적인 제도개혁으로 응답할 차례다.
kkskim@fn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