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fn광장

[fn광장] K아트, 글로벌브랜드 자리잡으려면

파이낸셜뉴스

해외미술관·비엔날레·아트페어에
장기적인 펀딩·네트워크 지원 필요
전문 번역가와 미술평론가 양성해
해외에 지속적으로 소개 기반 마련
국가 차원의 디지털플랫폼을 구축
모두가 우리 작품 찾아볼수 있어야

이상미 유럽문화예술콘텐츠 연구소장
이상미 유럽문화예술콘텐츠 연구소장

베니스의 여름은 언제나 뜨겁지만 올해는 그 열기가 더욱 특별하다. 세계 현대미술의 중심지인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한국 현대미술이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제61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은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를 주제로 최고은, 노혜리, 이랑, 황예지 작가가 참여해 동시대 한국 사회와 개인의 정체성, 그리고 공간의 의미를 새롭게 탐구했다. 여기에 현지에서 열린 위성 특별전에는 장소영, 이혜경, 강경록, 이태윤 등 다양한 장르의 한국 작가들이 함께하며 한국 현대미술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세계의 컬렉터와 미술계 전문가들에게 선보였다.

이번 베니스에서 펼쳐진 한국 작가들의 활약은 단순한 해외 전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특히 한국 현대미술이 서구 중심의 미술사적 문법을 수용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이를 주체적으로 재해석하며 자신만의 미학과 서사를 구축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이제 K아트(K-ART)는 더 이상 세계 미술의 변방에서 주목받는 존재가 아니라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함께 이끌며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창조적 주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중 최고은 작가는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금속 파이프를 활용해 건축의 안과 밖, 경계와 구조를 새롭게 사유하는 조각과 설치 작업을 선보였다. 노혜리는 퍼포먼스와 설치를 결합해 몸과 공간의 관계를 탐구했고 이랑과 황예지는 퍼포먼스, 사진, 텍스트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며 한국관의 주제를 더욱 입체적으로 확장했다. 각각의 작업은 표현 방식은 달랐지만 동시대 사회에 대한 깊은 질문과 실험정신이라는 공통분모를 공유했다.

베니스 곳곳에서 만난 한국 작가들의 작품은 한국 미술이 지닌 창의성과 사유의 깊이를 충분히 증명했다. 그러나 동시에 한 가지 중요한 질문도 남겼다. K팝과 K드라마가 세계 문화산업의 중심으로 성장한 것처럼 K아트 역시 지속 가능한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하는 점이다.

미술은 대중문화와 다른 생태계를 가진다. 소비 속도가 느리고, 작품의 가치가 축적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며, 미술관·비엔날레·갤러리·비평가·컬렉터로 이어지는 복합적인 네트워크 속에서 시장이 형성된다. 따라서 단발성 해외 전시 지원만으로는 세계 미술계의 중심에 안착하기 어렵다. 이제는 보다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문화정책이 필요하다.

우선 글로벌 플랫폼과의 지속적인 연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해외 유수 미술관과 비엔날레, 국제 아트페어에 한국 작가들이 꾸준히 참여할 수 있도록 장기적인 펀딩과 네트워크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 정부와 문화재단은 단순한 전시 지원기관을 넘어 해외 큐레이터와 평론가, 컬렉터를 연결하는 국제 플랫폼의 허브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둘째, 한국 미술을 세계 언어로 번역할 전문 인프라가 절실하다. 세계 미술계는 작품만이 아니라 이를 설명하는 비평과 담론을 함께 소비한다. 뛰어난 작품이라도 국제 미술계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이론으로 해석되지 못하면 세계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 전문 번역가와 미술 비평가를 체계적으로 양성하고, 해외 주요 미술 전문지에 한국 미술 담론이 지속적으로 소개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K아트 아카이브 구축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전 세계 큐레이터와 컬렉터들이 언제 어디서나 한국 작가의 작품과 연구자료를 검색하고 활용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디지털 플랫폼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자료 축적이 아니라 한국 미술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 인프라가 될 것이다.

가장 필요한 것은 문화정책의 관점을 지원에서 산업 생태계 조성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K팝의 세계화도 오랜 투자와 민관 협력, 체계적인 해외 전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K아트 역시 개별 작가의 역량에만 의존해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예술가와 갤러리, 미술관, 기업, 정부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생태계를 구축할 때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K아트는 이미 세계와 대화할 예술적 역량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문화는 국가 브랜드를 만드는 가장 강력한 자산이며, 미술은 그 국가의 철학과 미래를 보여주는 언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예술가 개인의 열정이 아니라 그 열정이 세계 무대에서 지속적으로 꽃필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국가적 전략이다. 그 토대가 마련될 때 K아트는 하나의 유행이 아닌 세계 문화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이상미 유럽문화예술콘텐츠 연구소장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