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포럼] 국립지역연구원 설립하자

파이낸셜뉴스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예전에 강대국에 둘러싸인 개발도상국 한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외교가 중요하다는 말이 많았다. 한국이 중견국을 넘어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지금 힘을 앞세운 강대국이 충돌하고 국제질서가 흔들리는 지정학의 시대가 도래했다. 한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다시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다.

지정학적 충돌의 시대에 한 국가의 생존과 이익을 위해 다층적·다면적 외교를 통한 국가 간 협력관계 구축은 필수적이다. 특정 국가·세력에 기대지 않고 외교선을 다변화하며 전략적인 헤징을 통해 우리의 협상력과 자율성을 높여야 한다. 이는 외교 대상 국가와 지역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통찰을 필요로 한다. 외교 상대의 역사, 사회, 문화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바탕 위에 현재의 정치, 경제, 사회적 맥락을 더한 전략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은 특정 국가와 지역에 대한 오랜 시간에 걸친 연구와 관찰, 즉 깊이 있는 지역연구다. 지역연구가 만들어내는 산출물은 우리 외교를 위한, 국가 경영(statecraft)을 위한 중요한 공공재다. 어려운 지정학적 도전을 넘어 선진국으로 외교지평을 확장해야 하는 한국 입장에서 지역연구라는 공공재가 충분히 확보되었는지 돌아볼 때다.

우리의 지역연구 기반은 우리와 비슷한 국가와 비교해 볼 때 처참한 수준이다. 우리가 일본 등 여타 중견국이 가진 것과 유사한 지역연구 기반을 가지고 있다고 답할 수 있는 국내 지역연구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대외정책 자문을 위해 동남아, 중동, 남미, 서남아, 아프리카 등에 천착하는 전문가를 찾을 때 국내에서 각 지역별로 두세명을 찾으면 다행이다.

그간 지역연구라는 공공재를 만들어 내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김영삼 정부는 세계화 구호 아래 주요 대학 국제대학원에 대한 지원을 했다. 그러나 몇몇 설치되었던 지역연구를 위한 전공과정들은 이내 주요국과 개발협력 위주로 재편되었고 국제대학원은 영어로 수업하는 과정이라는 특징만 남았다.

이후 간헐적인 정부 지원과 지역연구자 자체 노력으로 지역연구에 관한 전공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여러 대학에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는 상황이다. 산재된 소규모 인프라(학과) 사이 연계도 쉽지 않다. 더욱이 이런 노력마저 대학을 집어삼킨 시장의 논리, 즉 졸업생의 취업이라는 현실적 도전 앞에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다.

한국의 지역연구 기반 부족은 전형적인 시장 논리, 즉 돈(취업)이 안된다는 현실 앞에 좌절한 결과다. 뜻을 품은 학생들은 취업이라는 현실 앞에 꿈을 접고, 그나마 살아남은 연구자도 생계를 위해 연구 방향을 전환한다. 이런 현실 속에 한국의 지역연구가 명맥을 유지하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시장이 공급하기 어려운 공공재는 국가가 준비해야 한다. 국가가 나서 특히 동남아, 중동, 남미, 서남아, 아프리카 등 비강대국 지역이나 국가에 대한 학술 및 정책적 연구와 차세대 교육을 담당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연구와 교육의 기반은 우리 외교와 국가 경영을 위한 긴요한 공공재가 될 것이다. 이런 이유로 현 정부에 국립지역연구원 설립을 제안하는 바이다.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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