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만의 재통합…발전 5사, 왜 다시 하나로 묶이나[이유범의 에코&에너지]
"AI·반도체發 전력수요 폭증에 5사 체제 한계…7월 최종안 확정
경쟁시키려 쪼갰지만 25년 만에 원점…'제2의 LH' 우려도
본사는 어디로…경영평가 등급차 큰 5사, 통합 시너지 낼까
[파이낸셜뉴스]2001년 한국전력에서 분사된 5개 발전공기업이 25년 만에 다시 하나로 합쳐지는 수순을 밟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달 18일 '에너지전환기 전력공기업들의 새로운 역할 연구' 중간보고회를 열고, 남동·남부·동서·서부·중부발전 5개사를 단일 법인으로 통합하는 방안을 최적 대안으로 제시했다. 정부는 이달 중 최종 구조개편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25년 전 경쟁체제 도입을 명분으로 갈라놓았던 발전공기업들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발전공기업 통합 논의에 불을 지핀 것은 지난해 말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기후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왜 이렇게 나눠놨나"라며 발전공기업을 대표적인 통폐합 대상으로 거론했다. 이후 정부는 지난 2월부터 6개월간 연구용역을 진행하며 개편 방향을 검토해왔다. 연구용역을 맡은 삼일회계법인은 에너지전환 실행력 확보, 리스크 저감, 운영 효율성 제고, 정의로운 전환 실현 등 4대 원칙을 기준으로 △1사 통합 △권역별 2~3사 통합 △지주회사와 권역별 자회사 체제 등 3개 대안을 검토했다. 결론은 1사 통합이었다. 현재 5개 발전공기업 체제로는 탈탄소 목표를 지키면서 동시에 인공지능(AI)발 전력수요 급증에 대응하는 국가 차원의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기 어렵다는 게 용역진의 판단이다. 반도체 클러스터와 AI 데이터센터가 동시다발적으로 전력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5개로 쪼개진 발전공기업이 각자 사업을 벌이는 구조로는 신속한 투자 결정과 자원 배분이 어렵다는 문제의식이다. 통합 법인의 자본력을 바탕으로 사업 추진력을 높이고 인력도 내부에서 유연하게 재배치할 수 있다는 게 정부·용역진이 내세우는 핵심 논리다.
발전 5사의 뿌리는 한전이다. 정부는 국내 최대 공기업이던 한전을 단계적으로 민영화하기 위해 2001년 발전 부문을 5개사로 분사했다. 경쟁 체제를 구축하면 전기요금 인하와 효율성 제고가 가능하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노동조합의 반대로 후속 단계인 민영화는 무산됐고, 전력 구매·판매는 한전이 독점하는 구조가 그대로 유지되면서 5사 간 경쟁 체제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애초 취지였던 '경쟁을 통한 효율화'를 달성하지 못한 채 25년이 흐른 셈이다.
정부와 용역진은 통합의 장점으로 자본력 확충과 의사결정 속도를 꼽는다. 단일 법인이 되면 재생에너지 대규모 투자나 신규 설비 건설에 필요한 자금을 5사가 각자 조달할 때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마련할 수 있고, 인력도 발전소 간 유연하게 재배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검토됐던 권역별 통합이나 지주회사 체제는 정책 추진의 일관성이 떨어지거나 자회사 통제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실익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통합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삼일회계법인 스스로도 보고서에서 "단일·거대 기업으로 발전시장 공정경쟁이 저해될 수 있으며, 경쟁자 없는 공기업이 방만 경영을 하게 될 수 있다"고 우려를 명시했다. 최근 부실 관리 논란이 됐던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례가 소환되며 '제2의 LH'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영 실적 격차도 걸림돌이다. 지난달 19일 발표된 2025년도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남동·남부발전은 나란히 우수(A) 등급을 지켜낸 반면, 지난해 A등급이던 동서발전은 보통(C) 등급으로 두 단계나 떨어졌고 서부발전도 양호(B)에서 보통(C)으로 하락했다. 두 회사 모두 지난해 발생한 중대재해(동서발전 울산화력발전소 해체공사 붕괴 사망사고, 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근로자 사망사고)가 등급 하락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안전관리 역량 차이가 큰 5개 조직을 하나로 합칠 경우, 우수한 조직의 노하우가 확산되기보다 오히려 하향평준화와 비효율이 초래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배경이다.
통합 논의가 구체화되면서 정작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통합본사를 어디에 둘지다. 현재 발전 5사는 부산(남부발전)·울산(동서발전)·경남 진주(남동발전)·충남 보령(중부발전)·충남 태안(서부발전) 등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다. 통합 시 5개 지역 중 상당수는 본사를 잃게 될 처지라, 지역 세수 감소와 청년 일자리 축소, 지역경제 침체에 대한 우려가 크다. 이 때문에 각 지자체는 통합본사 유치전에 사활을 걸고 있다. 남동발전 본사가 있는 경남 진주에서는 지역 유치위원회가 결성돼 10만 명 서명운동에 돌입했고, "국가균형발전 정책에도 부합한다"는 논리로 대응하고 있다. 여기에 발전 5사 소재지가 아닌 세종과 전남도 유치전에 가세했다. 세종시는 이미 중부발전 세종발전본부와 남부발전 신세종빛드림본부가 있다는 점, 정부부처·국책연구기관이 밀집해 있다는 점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나주 역시 한전 본사가 위치한 에너지 클러스터라는 입지를 앞세운다. 현재로선 통합본사 위치가 나주나 세종으로 유력하다는 관측이 나오지만,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 정부는 통합본사 입지를 공공기관 지방이전 계획과 맞물려 별도로 검토한다는 방침이어서, 최종 결정은 7월 최종안 발표 이후에도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서는 입지 선정이 9월까지 밀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통합이 실제로 이뤄지려면 넘어야 할 절차가 여전히 많다. 우선 통합을 뒷받침할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고, 국회 논의와 노사 협의, 지역사회 의견 수렴까지 거쳐야 한다. 특히 통합 과정에서 발전공기업 5곳 경영진의 거취도 변수다. 지주사 체제가 아닌 단일 법인 체제로 재편될 경우 조직 구조가 대폭 바뀌는 만큼, 현재 사장단의 임기가 그대로 보장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책 일정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이달 중 최종 구조개편안이 확정되면 다음 달 대통령 업무보고에 통합 관련 내용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고, 올해 하반기로 예정된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도 통합 방향이 반영될 전망이다. 지난해 9월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산업통상자원부의 전력·재생에너지 업무가 환경부로 이관되며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출범했을 때처럼, 법안만 통과되면 통합 절차도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통합과 별개로 석탄발전 감축 일정은 이미 한 차례 밀렸다. 당초 올해 6월로 예정됐던 보령·하동 일부 석탄발전 설비 폐쇄가 중동발 에너지 위기와 전력수급 불확실성을 이유로 내년으로 연기됐다. 발전공기업 통합이 탈탄소·에너지전환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추진되는 상황에서, 정작 탈석탄 로드맵 자체는 지연되고 있는 셈이다. 25년 만의 재통합이 실제로 에너지 전환의 속도를 높이는 결과로 이어질지, 아니면 지역 갈등과 조직 관리 문제로 표류할지는 이제 시작 단계인 후속 절차들이 가늠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