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걸고 반지하 사냐고? 이 월세로 서울에 붙어살려면"…비 오면 잠 못 드는 사람들 [낮은 곳의 기록자]
[폭우·장마 두려운 반지하 골목]
차수판 등 침수 대책 늘었지만... 긴장감 여전
"시설 있어도 마음 놓기 어렵다" 주민들 불안
[파이낸셜뉴스] "비 많이 온다는 알림 뜨면 창문 앞부터 확인해요. 물막이판이 있어도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죠."
17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가에서 만난 50대 직장인 A씨는 이렇게 말했다. 낮은 창문 아래로는 배수구와 맨홀이 보였고, 일부 반지하 창문 앞에는 수해 예방용 물막이판이 설치돼 있었다. 배수구 주변에는 비가 지나간 뒤 남은 잔흙과 작은 쓰레기 조각이 고여 있었다.
신림동 일대는 2022년 8월 중부지방 폭우 당시 반지하 주택에 거주하던 일가족 3명이 숨진 아픔이 남은 곳이다. 당시 서울 남부권에는 시간당 100㎜가 넘는 비가 쏟아졌고, 동작구 신대방동에는 시간당 141.5㎜의 폭우가 관측됐다. 참사 이후 서울시는 반지하 주택 침수방지시설 설치와 지상층 이주 지원, 침수경보 체계 확대를 추진해 왔다.
골목에서는 반지하 창문 앞에 물막이판을 단 집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일부 주택은 창문과 골목 바닥의 높이 차가 크지 않았다. 창문을 열면 바로 보도와 도로가 보이는 구조였다. 물막이판은 창문 아래쪽을 막아 빗물이 실내로 들어오는 시간을 늦추는 장치다.
40대 직장인 B씨는 "예전보다 (물막이) 시설은 많이 생긴 것 같다"면서도 "비가 짧은 시간에 많이 오면 배수구가 버티는지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퇴근길에 비가 세게 오면 집에 사람이 있는지 먼저 확인한다"며 "반지하에 사는 가족이 있으면 비 예보가 그냥 날씨 얘기로 끝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골목을 따라 걷자 배수구와 반지하 창문이 가까운 집들이 이어졌다. 일부 창문 앞에는 물막이판 사용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평소에는 주차 차량과 생활 쓰레기, 화분이 놓이는 골목이지만 집중호우 때는 빗물이 흘러가는 통로가 된다.
서울시에 따르면 반지하주택 물막이판 설치 필요 대상 2만3094가구 가운데 1만7837가구에 설치가 끝났다. 아직 설치되지 않은 가구에는 이동식·휴대용 물막이판과 모래주머니 등 수방자재를 동주민센터 등에 배치해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물막이판은 창문 아래쪽을 막아 빗물이 실내로 들어오는 시간을 늦추는 장치다. 집중호우 때 반지하 거주자가 상황을 확인하고 대피할 시간을 확보하는 데 쓰인다.
맨홀 추락방지시설도 늘었다. 시는 지난해 침수우려지역 맨홀 5만9737개소에 추락방지시설 설치를 완료했고, 올해는 대상지를 추가해 총 6만9819개소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골목 수위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장비도 확대된다. 시는 소형 레이더 수위계를 활용한 반지하 수위 관측시설을 지난해 동작·관악·영등포 15개소에서 운영했다. 올해는 은평·강북·서대문·강서 등에 30개소를 추가 설치해 모두 45개소로 늘릴 방침이다.
이런 가운데 일부 주민들은 시설 설치만큼 주거 이전 문제도 털어놨다. 시는 반지하 거주자의 지상층 이주를 지원하고 있지만, 실제 이사를 결정하려면 보증금과 월세, 출퇴근 거리, 자녀 학교 문제를 함께 따져야 한다.
50대 주민 C씨는 "반지하가 위험하다는 걸 몰라서 사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며 "지상층으로 옮기면 월세가 바로 올라간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집세가 오르면 버티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40대 직장인 D씨도 "이사 지원이 있다는 건 알지만 새 집을 구하는 게 쉽지 않다"며 "동네를 옮기면 출퇴근도 달라지고, 보증금도 다시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비가 무서워서 나가고 싶어도 돈 얘기가 먼저 나온다"고 덧붙였다.
50대 주민 A씨는 "비가 많이 온다고 하면 창문 앞이랑 배수구부터 본다"며 "물이 차기 시작하면 안에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고 말했다. 40대 주민 B씨는 "평소에는 조용한 골목인데, 비가 세게 오면 물이 어느 쪽으로 몰릴지 신경 쓰인다"고 했다.
물막이판이 설치된 집도 장마철에는 점검이 필요하다. 주민들은 비 예보가 나오면 고정 장치가 제대로 잠겼는지 확인하고, 배수구 주변에 흙이나 쓰레기가 끼어 있지 않은지도 살핀다. 집에 혼자 있는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창문을 닫았는지 묻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참사 이후 침수방지시설은 늘었지만, 비가 오는 날 주민들이 확인해야 하는 일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A씨는 골목 안쪽 반지하 창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물막이판이 생긴 건 다행이죠. 그래도 비가 세게 온다고 하면 마음이 놓이진 않아요. 물이 들어오는 건 한순간이니까요."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