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이후 10년, 다시 만나는 인공지능과 인간 [세계바둑산책⑧]
수학교육이 여는 새로운 미래를 기대하며
[파이낸셜뉴스]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 세기의 대국을 벌인 지 어느덧 10년이 되었다. 그동안 인공지능은 눈부신 속도로 발전하며 산업과 과학은 물론 교육과 문화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전반을 바꾸어 놓았다.
그렇다면 10년이 지난 오늘, 인간과 바둑 인공지능이 다시 만난다면 어떤 결과가 펼쳐질까.
국민 수학 참고서 '쎈수학'의 출판사 좋은책신사고와 한국경제신문은 '기신전'이라는 특별 이벤트를 통해 인간과 인공지능을 다시 바둑판 위에 마주 세웠다.
인간 대표는 세계랭킹 1위 신진서 9단, 인공지능 대표는 현존 최강으로 평가받는 바둑 인공지능 카타고(KataGo)였다. 대국은 인공지능의 우위를 인정해 인간이 두 점을 먼저 놓는 접바둑으로 진행됐다.
한국경제신문 특별스튜디오에서 열린 두 번째 대국에서 신진서는 한 달 넘게 준비한 전략으로 카타고를 상대로 귀중한 승리를 거두었다. 두 점 접바둑이라는 조건이 있었지만, 이 승부는 단순한 승패 이상의 의미를 남겼다. 인공지능 시대에도 인간의 창의성과 연구, 그리고 도전정신은 여전히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알파고 이후 인공지능은 더 이상 바둑에 머물지 않았다. 구글 딥마인드는 알파폴드를 개발해 단백질 구조 예측이라는 난제를 해결했고, 그 기술은 생명과학과 신약 개발에 혁신을 가져왔다. 바둑에서 출발한 인공지능 연구가 인류의 과학 발전으로 이어진 것이다.
바둑 인공지능 역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중국과 한국의 기업뿐 아니라 바둑의 변방이라 여겨졌던 서구에서도 카타고와 릴라제로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이제 인공지능은 국경을 넘어 바둑 연구의 새로운 표준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세계 바둑계의 높은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유럽에서 바둑 보급에 힘쓰고 있는 루마니아 출신 일본기원 프로기사 커털린 차라누(Cătălin Țăranu)도 자신의 SNS를 통해 이번 기신전 대국을 해설하는 영상을 공개하며 세계 바둑팬들과 함께 대국의 의미를 공유하고 있다.
인간 바둑의 세계 최강자의 계보도 달라졌다. 알파고와 맞섰던 이세돌 9단 이후 박정환 9단과 중국의 커제 9단이 세계 정상권을 이끌었고, 최근에는 신진서 9단이 수년째 세계랭킹 1위를 지키며 AI 시대를 대표하는 기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10년의 가장 큰 변화는 세계 1인자의 이름이 바뀐 것이 아니다. 최강자가 성장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졌다는 데 있다. 이제 최고의 기사들은 경험과 직관만으로 공부하지 않는다. 인공지능과 함께 연구하고, 데이터를 분석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끊임없이 탐구한다.
기신전은 이러한 시대 변화를 상징하는 무대다. 수학교육을 대표하는 좋은책신사고와 한국경제신문이 함께 만든 이번 대회는 바둑과 수학이 만나는 새로운 교육의 장이기도 하다.
바둑판은 오래전부터 가장 작은 수학교실이었다.
수읽기는 수많은 경우의 수를 예측하는 논리적 추론이며, 형세판단은 최선의 선택을 찾는 최적화의 과정이다. 돌의 모양은 기하학, 연결과 절단은 그래프 이론, 끝내기는 계산 능력, 전체 균형은 시스템 사고, 전략은 게임이론과 맞닿아 있다. 여기에 인공지능 복기는 확률과 통계, 데이터 분석이라는 현대 수학의 영역을 더한다.
결국 바둑은 논리와 계산, 기하와 최적화, 그래프 이론과 게임이론, 확률과 통계를 하나의 바둑판 위에서 종합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가장 아름다운 사고의 훈련장이다. 바둑은 승패를 겨루는 게임인 동시에 미래 인재가 갖추어야 할 사고력을 키우는 교육 플랫폼이기도 하다.
필자는 좋은책신사고의 쎈수학이 우리나라 수학교육의 수준을 높이며 국민 참고서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쎈수학의 성공은 단순히 많은 문제를 담았기 때문이 아니라 학생 스스로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는 사고력을 길러 주었기 때문이다.
바둑 역시 정답을 암기하는 활동이 아니다. 변화하는 상황을 분석하고 수많은 선택지를 비교하며 가장 합리적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결국 바둑과 수학은 서로 다른 분야가 아니라 같은 사고의 언어를 사용하는 교육이다.
이번 기신전이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기반 가운데 하나는 대한민국이 세계랭킹 1위 신진서 9단이라는 최고의 기사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 최고의 기사와 세계 최고의 인공지능이 맞붙었기에 이번 대국은 국내를 넘어 세계 바둑계의 큰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번 기신전을 일회성 이벤트로 끝내지 않는 일이다. 바둑과 수학, 그리고 인공지능이 함께하는 새로운 교육 모델을 통해 제2, 제3의 신진서를 길러낼 수 있는 교육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미래의 세계 정상급 기사를 키우는 일인 동시에 창의적 사고를 갖춘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길이기도 하다.
알파고 이후 10년, 인간과 인공지능은 다시 바둑판에서 만났다. 기신전이 수학과 바둑이 함께 미래교육을 만들어 가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바둑판 위에서 배우는 논리와 창의, 그리고 도전정신이 대한민국 교육의 새로운 혁신으로 이어지고, 더 나아가 세계 바둑과 미래 인재 양성의 새로운 모델로 발전하기를 희망한다.
알파고는 인간에게 인공지능을 보여주었다. 이제 기신전은 인공지능 시대에도 인간이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제 우리의 과제는 제2·제3의 신진서를 길러내어 대한민국이 앞으로도 세계 바둑을 선도해 나갈 기반을 마련하는 일일 것이다.
/최채우 한국기원 이사
pompom@fnnews.com 정명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