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기고

안전보건공시, 규제를 넘어 기업 경쟁력이 되려면

파이낸셜뉴스

2027년 첫 법정 공시 앞두고 데이터·거버넌스·신뢰체계 갖춰야
법무법인 지평 유충현 고문·안전경영컨설팅센터장

법무법인(유) 지평 유충현 고문·안전경영컨설팅센터장
법무법인(유) 지평 유충현 고문·안전경영컨설팅센터장

[파이낸셜뉴스]그동안 우리 기업은 GRI(지속가능경영 관련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는 국제기구), ESG·CSR 평가지표와 ISO 45001 등 국제 기준에 따라 안전보건 정보를 자율적으로 공개해 왔다. 그러나 개정 산업안전보건법 제10조의2에 따른 '안전보건현황공시'는 자율적 공개나 선언을 넘어 국가가 요구하는 법정 의무이자, 기업의 안전보건관리 체계를 내·외부 이해관계자가 상시 감시하고 평가할 수 있는 공식 자료가 됐다.

2027년 4월 첫 공시를 앞둔 지금, 단순히 제출 서류를 준비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이번 제도 도입을 2028년 지속가능성 공시 시대에 대비해 안전보건 데이터와 내부통제, 리스크 관리체계를 재정비하는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

■'선제적 예방활동'이 주된 목적...'예방 중심 관리체계'

기존 산업재해 정보 공개는 사고 발생 이후 명단을 공표하는 등 사후적 조치에 머물러 기업의 선제적 예방활동을 유도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에 정부는 2025년 발표한 '노동안전 종합대책'의 후속 입법으로 안전보건현황공시제를 도입했고, 2026년 8월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이 제도의 목적은 단순히 사고 발생 여부를 공개하는 데 있지 않다. 기업이 어떤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운영하고, 인력과 예산을 얼마나 투입하며, 사고 예방과 재발방지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시장과 이해관계자의 객관적인 평가를 유도하고, 기업 스스로 예방 중심의 안전관리 체계를 강화하도록 하는 데 의미가 있다.

현재는 상시근로자 500명 이상 기업을 우선 대상으로 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으며 향후 300명 이상 기업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공시 대상 기업은 안전보건관리체계, 산업재해 발생 현황, 안전보건 활동 실적과 계획, 투자 현황, 재발방지대책 등 법령이 정한 사항을 매년 공시해야 하며, 대표이사가 내용을 확인·서명한 뒤 고용노동부에 제출하고 지정된 홈페이지에 공개해야 한다.

■공시 대상 범위부터 정해야...기준 세우는 것도 핵심

이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먼저 법령상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기 위한 기본 토대가 마련돼야 한다.

우선 우리 회사가 공시 대상에 해당하는지 확인하고, 법인 전체와 사업장, 자회사, 협력사 가운데 어디까지 공시 범위에 포함할 것인지 명확히 정해야 한다. 공시 경계가 불분명하면 데이터 산정 오류가 발생하고 감독기관의 보완 요구나 이해관계자의 질의에 대응하는 과정에서도 혼선이 생길 수 있다.

또한 재해율 산정 기준, 협력사 사고 포함 범위 등 각 공시항목의 정의와 산정 기준을 문서화하고 전사적으로 공유해야 한다. 사고 건수 같은 후행지표뿐 아니라 안전교육, 위험성평가, 개선조치 이행률 등 선행지표도 정량화해 공시 데이터의 객관성과 비교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공시정보는 실제 작동하는 안전보건경영시스템의 결과물이어야 한다. 경영책임자와 관리감독자, 안전부서와 현장조직의 역할과 책임이 명확해야 하며 문서상 체계와 현장의 운영 실태가 일치해야 한다. 특히 위험성평가 과정에서 근로자의 참여와 의견수렴이 형식적으로 이뤄진다면 공시의 신뢰성이 저하될 뿐 아니라 부실공시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아울러 산업재해 현황은 사고보고서와 산재 처리기록으로, 교육 실적은 교육일지와 이수기록으로, 투자금액은 예산서와 지출 증빙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원천자료와 공시정보가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한다. 공시 수치에서 원천자료까지 역추적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것은 향후 근로감독이나 사고조사 과정에서도 핵심 근거가 된다.

■법적 의무 충족만으로 역부족...'고도화 관리체계' 구축해야

그러나 법적 의무를 충족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안전보건공시가 기업의 신뢰와 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적 수단이 되려면 보다 고도화된 관리체계가 필요하다.

우선 안전보건공시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와 사업보고서, 이사회 보고자료 등 다른 공시와 내용이 일관돼야 한다. 자료마다 수치나 설명이 다르면 시장의 신뢰를 잃을 수 있다. 또한 유해·위험요인의 변화와 사고 발생, 개선조치 이행 현황 등을 상시 관리해 공시 시점의 수준뿐 아니라 개선 과정과 변화 추세까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안전보건공시는 안전부서만의 업무도 아니다. 안전, 법무, 재무, ESG, IR 등 관련 부서가 함께 데이터의 정확성과 법적 타당성, 기존 공시와의 정합성을 검증하는 전사적 협업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통한 점검과 근로자 의견수렴 절차 역시 함께 운영돼야 한다.

공시 이후를 대비한 소통 전략도 중요하다. 예상 질문과 주요 쟁점을 반영한 FAQ와 설명자료를 마련하고, 언론과 투자자, 노사 등의 반응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 사실관계 오류나 논란에 신속하고 일관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안전보건공시는 단발성 규제 대응이 아니라 기업의 안전 수준을 보여주는 시계열 데이터로 축적돼야 한다. 연도별 정보를 비교하면 사업장별 개선 추이와 안전투자의 효과, 반복되는 취약요인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이는 중장기 안전보건 전략과 투자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경영자료가 된다. 축적된 공시정보는 ESG 평가와 공급망 관리, 공공입찰, 금융·보험 심사, 투자자 커뮤니케이션에서도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리스크 관리 역량을 보여주는 신뢰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AI 기반 안전 분석도 '임박'...공시 범위 확장도 대비해야

앞으로는 공시 이후의 환경도 크게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AI 기반 분석시스템이 기업의 공시정보를 실시간으로 비교·분석하면서 재해 현황과 안전투자, 개선조치의 효과까지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시대가 열릴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개별 데이터의 정확성뿐 아니라 연도별 변화 추이와 투자 대비 성과, 공시자료 간 일관성, 실제 이행 수준과의 정합성이 더욱 중요한 평가 요소가 될 것이다.

2028년부터 지속가능성 공시가 단계적으로 확대되면 안전보건 정보는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리스크 관리 역량을 판단하는 핵심 정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시장의 활용도가 높아질수록 데이터의 정확성과 추적 가능성에 대한 요구도 커질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독립적인 제3자 검증을 요구하는 흐름도 나타날 수 있다.

또한 이해관계자의 관심은 개별 사업장을 넘어 자회사와 관계사, 협력사 등 공급망 전반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기업은 법정 공시범위에만 머물지 말고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하거나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업장과 협력사의 안전보건 정보를 어디까지 관리할 것인지 명확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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