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방음에 보증금 보호까지 '사각지대'…비아파트가 외면받는 이유 [주거사다리의 '밑단'·③]
소규모 필지에 개별 공급…기반시설·전문 관리·하자보증 취약
HUG 반환보증 있지만 주택가격·선순위채권 등 가입 문턱 존재
전문가들 "품질 개선과 함께 보증·금융·관리체계 새로 짜야"
[파이낸셜뉴스] "요즘 신축 빌라는 아파트 못지않게 잘 나와요. 옵션도 잘돼있고, 방 보러 온 신혼부부들도 '너무 좋다'면서 감탄하긴 하는데 막상 계약은 잘 안 하려고 하죠. 28평 신축 빌라보다 18평 소형 평수 아파트에 대한 선호도가 더 높아요."
서울 노원구 공릉동의 한 공인중개사가 한 말이다. 깔끔한 주방과 욕실, 최신 창호와 가전제품을 갖춘 신축 빌라는 오래된 시설에 가격까지 비싼 구축 아파트보다 매력적인 데도 선호도는 낮다는 얘기였다. 지난해 대출을 받아 성북구 구축 아파트를 매매한 윤다영씨(가명·38)는 그 이유에 대해 "주거 환경 때문"이라고 답했다.
신혼 초 빌라에서 2년간 전세로 거주하는 동안 주차공간과 관리 문제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는 윤씨는 "구축 아파트도 주차공간이 부족하긴 하지만 빌라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윤씨는 "이전 빌라는 10가구가 사는데 필로티 주차공간은 5대만 가능하고, 그마저도 일명 '주차 테트리스'를 해야 해서 출근 때마다 힘들었다"라며 "쓰레기나 재활용품 배출, 주변 환경 문제로도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고도 했다.
이처럼 빌라 뿐 아니라 대부분의 비아파트가 갖고 있는 문제들은 개별 주택 내부의 신축 여부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작은 필지에 건물 한 동씩 짓는 공급 방식으로 충분한 주차공간을 확보하기 어렵고, 녹지나 커뮤니티 시설도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23일 대국민 부동산 정책 토론회를 위해 지난 14일부터 운영한 국민 정책 제안 홈페이지에도 "빌라 주택 환경이 너무 열악하다"는 의견이 올라왔다.
한 작성자는 "빌라도 꼭 4층이 아닌 5~6층이 가능하게 하고, 1동이 아닌 2동을 허물어 좀 더 높고 넓게 만들어서 정원을 두는 등 괜찮게 만든다면 청년이나 신혼부부 등도 아파트로 가지 않을 것"이라며 주거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비아파트의 열악한 주거 환경의 원인으로 면적을 짚었다. 실제 도심에 위치한 다세대·다가구주택 등 비아파트는 작은 개별 필지에 들어서는 경우가 많다. 제한된 땅에 법정 주차대수와 계단, 복도, 승강기 등을 넣고 수익성을 확보하려면 세대별 전용면적을 줄이거나 1층 대부분을 필로티 주차장으로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주차 공간을 늘리면 임대·분양 면적이 줄고, 주택 면적을 넓히면 공급 세대수와 사업성이 떨어진다. 어린이 놀이공간이나 녹지가 들어갈 공간은 사라지게 된다. 신축 빌라도 내부 환경은 개선될 수 있지만 주차장, 공용공간은 기존 저층주거지의 한계를 그대로 안고 있다.
국토연구원은 비아파트가 소규모 필지에 개별적·비계획적으로 들어서면서 주차와 위생, 안전, 녹지, 시설관리 측면에서 아파트보다 열악한 환경에 놓였다고 분석했다.
2023년 주거실태조사 분석을 보면 아파트의 주거환경 만족도는 모든 항목에서 비아파트보다 높았다. 특히 청소와 쓰레기 처리, 방범, 보행 안전, 공원·녹지 접근성에서 격차가 두드러졌다. 서울의 주택유형별 녹지율도 아파트 단지는 27.4%였지만 저층주거지는 14.4%로 차이가 크게 나타났다.
전문가들도 주거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개의 작은 필지를 합치는 '합필'과 공동개발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인접한 토지를 합쳐 일정 규모로 공동 개발하고, 5∼6층 안팎의 중층 공동주택을 공급해야 한다는 얘기다.
각각의 필지에 주택 한 동씩 별도로 지으면 건물마다 진입로와 계단, 주차 공간이 필요하지만, 인접 필지를 하나의 사업부지로 묶을 경우에는 공용공간을 통합해 토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물마다 설치하던 필로티 주차장을 지하 또는 통합 주차장으로 만들고, 지상 공간을 보행로와 녹지로 돌릴 수 있다. 계단과 승강기, 복도 등 공용면적을 효율적으로 배치하면 세대 내부의 전용면적도 넓힐 수 있다. 일정 규모 이상을 확보할 경우, 작은 도서관이나 공동육아 공간, 주민휴게실, 무인택배함 등 아파트 단지에 있는 생활 편의시설도 설치 가능하다.
신보연 세종대 부동산AI융합학과 교수는 "작은 필지에 세대수와 주차장을 억지로 맞추는 방식으로는 아파트 수준의 주거 품질을 확보하기 어렵다"며 "인접 토지를 모아 주택과 주차장, 공용공간을 함께 계획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도심 주택 공급이라고 해서 반드시 20층이 넘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며 "인접 필지를 합쳐 5∼6층 규모로 개발하면 승강기와 주차장, 커뮤니티 공간과 관리시설을 갖춘 주택을 공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러 필지를 합쳐 개발하는 사업에 한해 6층 안팎의 중층화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자는 의견도 있다. 추가 용적률이나 층수에서 확보한 사업성을 지하주차장과 승강기, 관리실, 커뮤니티 공간에 사용하도록 하자는 취지다.
현행 건축법상 연립주택과 다세대주택은 주택으로 사용하는 층수가 4개 층 이하인 공동주택이다. 연립주택은 한 동의 주택용 바닥면적 합계가 660㎡를 초과하고, 다세대주택은 660㎡ 이하라는 차이가 있다. 단,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단지형 연립·다세대주택의 경우 5층까지 허용한다.
그러나 주차 기준과 공용공간을 그대로 둔 채 세대수만 늘리면 기존 빌라의 주차난과 생활 불편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합필과 중층화를 허용하는 조건으로 충분한 주차 공간과 승강기, 방음·단열·화재안전 기준, 공용시설과 전문 관리체계가 함께 요구된다.
비아파트의 관리 체계도 정비할 필요가 있다. 공동주택관리법상 의무관리대상은 원칙적으로 300세대 이상 공동주택이나 승강기 또는 중앙집중식 난방시설을 갖춘 150세대 이상 공동주택 등이다. 이들 주택에는 관리주체와 입주자대표회의, 시설관리와 회계 등에 관한 의무가 부과된다.
하지만 10∼20세대 안팎의 다세대·연립주택은 대부분 의무관리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세대수가 적기 때문에 전문 관리인력을 고용하거나 외벽 또는 옥상, 배관과 승강기 등 공용시설에 문제가 생겨도 관리하기 어렵다. 장기수선계획이나 충당금 마련도 마찬가지다.
김 연구위원은 "세대수가 적은 건물마다 관리인력을 두기 어렵다면 인접한 비아파트를 권역으로 묶어 공동으로 관리해야 한다"며 인접한 여러 건물을 하나의 권역으로 묶는 공동관리체계를 제안했다.
전문 관리업체가 일정 지역의 다세대·연립주택을 묶어 청소와 쓰레기 처리, 소방·승강기 점검, 주차관리와 공용시설 수선을 담당하는 방식이다. 여러 동을 묶어 가구당 관리비 부담을 낮추고 전문 인력을 둘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빌라관리사무소'를 설치해 시설점검과 수선계획 수립, 입주자 간 분쟁 조정을 지원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임대차계약도 비아파트의 관리에 포함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전문 임대관리와 하자 접수 창구, 임대보증금 반환보증 가입 여부 확인 등 생활·계약 관리 서비스를 함께 갖춘 관리형 비아파트를 새로 공급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김 연구위원은 "합필을 통한 신축뿐 아니라 이미 지어진 빌라도 관리 사각지대에서 꺼낼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mail protected] 김희선 서윤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