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각

[강남視角] 원정 응원단이 일으킨 긍정 릴레이

파이낸셜뉴스
윤재준 국제부 부장
윤재준 국제부 부장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이 스페인의 우승으로 끝났다. 축구 경기에서 늘 발생하는 심판 판정에 대한 논란도 있었고, 정치로 인해 관중들끼리의 가벼운 충돌도 있었다. 이란 현 정부에 반대하는 미국 거주 이란인들은 사자가 그려진 옛 국기를 들고 시위를 벌였고, 1982년 남대서양의 포클랜드 제도(아르헨티나명 말비나스)에서 전쟁까지 치른 아르헨티나와 영국을 구성하는 3개국 중 하나인 잉글랜드가 준결승전에서 만나자 축구 경기로만 봐달라는 아르헨티나 노병들의 당부에도 아르헨티나 선수들과 팬들은 승리 후 "말비나스는 우리 땅" 구호를 외쳤다.

이번 월드컵은 한국 축구대표팀의 졸전과 잡음으로 우리에게는 생각도 하기 싫은 대회였다. 대표팀의 32강 탈락이 확정된 날 유튜브를 보는데 스코틀랜드 팬들을 포함해 여러 외국 관중들의 동영상이 뜨기 시작했다. '타탄 아미(Tartan Army)'로 불리는 스코틀랜드 관중들은 전통의상인 킬트를 입고 전통악기인 백파이프를 거리에서 연주하면서 미국 보스턴과 마이애미에서 큰 환영을 받았다. 스코틀랜드에서 원정 온 약 4만명으로 인해 보스턴 시내 술집들은 맥주 재고가 바닥이 날 정도로 매상이 올라갔다. 스코틀랜드인들은 처음 가보는 야구장에서 노래를 부르고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지역 어린이병원에 기부까지 하면서 호감을 받았다. 32강 진출을 기대했던 스코틀랜드 대표팀의 탈락이 확정되자 이들은 귀국 짐을 싸야 했다.

보스턴 인근에는 하버드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가 있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모이는 곳이다.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행복으로 연결되지 않는가 보다. 시민들은 우울한 보스턴에 스코틀랜드 팬들이 짧은 시간이나마 긍정과 즐거움을 가져왔다며 작별을 아쉬워했다. 보스턴의 유력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는 스코틀랜드 팬들에게 감사하다는 전면 광고를 실었고, 스코틀랜드 일간지 더헤럴드는 보스턴 시민들의 환대에 감사를 나타내는 광고를 냈다. 이러한 월드컵 경기장 밖의 소식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음주가 엄격하게 제한됐던 4년 전 카타르 대회와 달리 이번 북중미 대회에서 관중들은 자유를 즐겼다. 공동개최국 중 하나인 미국을 처음 여행하는 관중들은 경기 개최도시의 유명한 맛집들을 체험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유럽인들은 식당에서 물컵에 얼음을 넣어주고, 커피나 탄산음료를 마시면 무료로 채워주는 리필은 유럽에서는 볼 수 없다며 좋아했다. 다만 미국 식당의 팁 문화는 이해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유럽 관중들과 콧대 높기로 유명한 유럽의 축구 기자들은 축구가 다른 구기종목에 비해 인기가 떨어지는 미국에서 대회가 제대로 진행될지 의문을 제기했다. 특히 자기네 축구장의 우수성을 내세우며 미국의 경기장들은 별것 아닐 것이라는 선입감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막상 경기장에 들어선 유럽 축구 팬들과 기자들은 입이 떡 벌어졌다. 35도가 넘는 밖의 더위와 달리 냉방이 나오는 개폐식 돔구장의 규모, 천장에 매달려 있는 360도 전광판을 보고 감탄에 빠지는 동영상들이 뉴스와 유튜브를 통해 빨리 퍼졌다. 한 잉글랜드 팬은 그동안 자기네 나라 축구 경기장들을 최고로 알고 있었으나 댈러스와 애틀랜타, 보스턴 같은 경기장들을 가본 후 그동안 착각 속에 살았다며 미국인들에게 사과한다는 트윗까지 올렸다.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번 월드컵 대회 기간 외국 관중이 많이 구입한 제품은 전혀 예상치 않았던 샐러드 드레싱인 랜치 소스였다. 국내에서도 모 식품사가 제조해 판매하는 랜치 소스를 이들은 미국에 와서 처음 맛본 후 반해버린 것이다.

특정 한류 스타 공연을 보려고 외국에서 팬들이 몰려오는 게 이제는 우리에게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한국을 체험하고 좋은 기억을 남기도록 음식 등 관광자원을 계속해서 발굴했으면 한다.

[email protected]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