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내가 죽였어, 상해치사로 바꿔야 해"…'두물머리 시신 유기' 30대의 실체 [사건실화]

서지윤 기자
파이낸셜뉴스

"밥상 안 치워" 상습 폭행 끝 살해… 시신 유기
사망 친구 폰으로 모친 속이고 해외 도피 시도
알리바이 조작 위해 범행일시 감췄으나 덜미
법원 "살인의 미필적 고의 인정… 반성 없어"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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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피고인은 살인 직후 범행을 숨기기 위해 피해자 명의로 렌터카를 빌린 뒤, 시신을 차에 싣고 용담대교로 향했다. 이어 10m 높이의 다리 난간 너머 한겨울 차가운 강물 속으로 시신을 내던져 유기했다. 피해자의 유족들은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약 6개월 동안 피해자의 시신이 발견되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으며, 이 과정에서 유족들이 겪은 슬픔과 고통은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다."

서울북부지법 형사합의14부(오병희 부장판사)가 지난 23일 살인·시체유기·상해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성모씨(35)에게 1심에서 징역 27년을 선고한 사건 판결문에 나오는 내용 일부다. 법원은 성씨에게 15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부착할 것도 명령했다. 성씨는 함께 지내던 지인을 무차별 폭행해 살해한 뒤 경기 양평군 두물머리에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두 사람은 약 2년 전 배달 대행 일을 함께하며 친분을 쌓아온 사이였다. 사건 발생 몇 주 전부터는 서울 강북구에 있는 피고인의 집에서 함께 살기 시작했으나, 동거 이후 상습적인 폭행이 이어졌고 결국 피해자는 숨을 거두었다.

재판 과정에서는 피고인이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정확한 범행 일시를 왜곡하려 한 정황과 살인의 고의성 여부를 두고 치열한 법적 공방이 벌어졌다. 그러나 법원은 각종 증거를 토대로 피고인의 주장을 배척했다.

피고인 성씨는 어떤 논리로 혐의를 부인했던 걸까. 그리고 법원은 어떻게 그의 주장이 모순적이라는 걸 밝혀냈을까. 판결문에 담긴 단서들을 짚어봤다.

쟁점 1. 사망 시점 공방… "14일 오후" 주장 속 숨겨진 진술 조작 의도
첫 번째 핵심 쟁점은 피해자 A씨가 사망한 정확한 시점이었다. 피고인 성씨는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2026년 1월 14일 오후 3시34분께 집으로 복귀해 A씨와 싸우다 목을 졸랐고 이후 30분간 심폐소생술을 했다"며 사망 시점이 1월 14일 오후라고 줄곧 주장했다.

성씨가 살해 시점을 이 당시로 집요하게 주장한 배경에는, 여자친구와 모친의 처벌을 막고 자신의 알리바이를 조작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실제 살해가 일어난 1월 13일 오후에는 성씨의 모친과 여자친구가 현장에서 폭행 장면을 목격하거나 말렸던 반면, 14일 오후에는 집 안에 성씨 혼자만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씨가 A씨를 때리는 소리에 잠에서 깬 성씨의 모친은 "그만해라. 이러다가 애 죽는다"며 제지했으나, 폭행은 계속됐다. 성씨는 헤드록을 푼 뒤 곧바로 폭행을 이어갔고, A씨는 바닥에 쓰러진 채 "잘못했으니 제발 멈춰 달라"고 애원했다. 끝내 아들을 말리지 못한 성씨의 모친은 속상한 마음에 집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증언했다.

범행 이후 성씨는 모친에게도 "공범이 될 수 있으니, 이 사건을 모른다고 하라"고 지시했다. 모친이 자수를 권했으나 이를 거절하고 해외로 도피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여자친구에게는 구치소 접견 과정에서 "경찰이 여자친구랑 같이 있던 거 아니냐를 계속 얘기했는데 끝까지 없었다고 하면서 어쨌든 잘 컨트롤했다"며 범행 일시에 관한 진술을 조정하고 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법원은 증거를 통해 성씨의 알리바이를 무너뜨렸다. 성씨는 법정에서 지난 1월 14일께 피해자를 목 졸라 죽인 뒤 약 30분 정도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폐쇄회로(CC)TV와 출입 기록을 분석한 결과, 성씨가 당일 오후 주거지에 머문 시간은 단 12분에 불과했다. 그 후 두 차례 주거지에 들렀으나 이때 머문 시간도 총 6분에 지나지 않았다. 피해자와 다투고 다시 들어와 헤드록을 걸어 사망하게 하고, 30분 동안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는 주장은 물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었다.

피해자 A씨의 동선을 분석해 보면 그는 지난 1월 13일 오전 집으로 들어간 뒤 사체가 유기될 때까지 단 한 번도 밖으로 나온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의 휴대전화 GPS와 기지국 신호는 당일 밤 성씨 일행이 방문한 노원구 치킨집 인근으로 파악됐다. 성씨가 지난 1월 13일 오후 피해자를 살해한 직후 휴대전화를 챙겨 들고 나갔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이러한 내용을 토대로 재판부는 "피고인이 1월 13일 피해자가 사망하기 직전에 여자친구와 모친이 같은 자리에 있었던 것을 우려해 범행 일시를 다르게 진술하면서 지인들에게도 같은 취지로 진술하도록 조정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피해자의 사망 시점을 1월 13일 오후로 확정했다.

쟁점 2. 살인의 고의성… "제지용 헤드록" vs "미필적 살인 고의"
두 번째 핵심 쟁점은 '살인의 고의' 유무였다. 성씨는 "A씨가 도박 사이트를 이용하는 것을 훈계하던 중 먼저 달려들어 이를 제지하기 위해 등 뒤에서 팔로 목을 수 초간 감쌌을 뿐, 살인의 고의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상대적으로 처벌 수위가 높은 살인 혐의 대신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취지다. 상해치사의 법정형은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지만, 살인은 5년 이상의 유기징역부터 무기징역이나 사형까지도 선고될 수 있다.

재판부는 성씨가 살인의 고의를 부인하며 내세운 변명 역시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성씨는 법정에서 "피해자가 허벅지에 탭(항복 의사)을 두 번 치길래 즉시 헤드록을 풀어줬는데 바로 몸이 늘어졌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체가 떠오르지 않길 바란 것 아니냐'는 검사의 질문에 성씨는 "피해자의 팔을 못 움직이게 허벅지로 감은 적이 있는데, 내가 허벅지로 조이고 있어서 갈비뼈가 폐를 찔러 죽은 건지 초크로 죽은 건지 몰라 모친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고 답변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이러한 정황을 고려할 때 성씨가 헤드록을 걸 당시 피해자의 팔도 움직이지 못하도록 자기 허벅지로 감고 결박했을 가능성이 큰 만큼, '피해자가 탭을 쳤을 때 팔을 풀어줬다'는 주장은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봤다. 범행 직후 성씨가 119 신고 등 기본적인 구호 조치조차 하지 않은 점도 살인의 미필적 고의를 뒷받침했다.

치밀한 은폐와 피해자 조롱… "진정한 반성 없어 엄벌"
양형 판단에서는 성씨의 태도가 중형 선고의 주요 이유가 됐다. 그는 재판부에 자기 뜻만을 담은 반성문을 수차례 제출했으나, 유족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성씨는 A씨의 휴대전화로 그의 모친에게 "친구와 해외에 일하러 간다"는 문자를 지속적으로 보내며 유족들에게 범행을 은폐하려 시도했다. 나아가 접견 과정에서는 사망한 A씨를 향해 "그 죽은 새끼가 앞에 띵가띵가해서"라고 조롱하거나, "살인에서 상해치사로 바꾸면 한 5년? 짧으면 더 적게 받을 수도 있고, 잘 될 수도 있다"며 감형에만 몰두하는 모습을 보였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이미 상해를 입은 피해자에게 단순히 '반찬 정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을 빌미로 분노를 표출해 비산흔(흩뿌려진 형태의 혈액)이 발생할 정도로 얼굴 등을 무차별적으로 구타했다"며 "범행에 이르게 된 동기와 경위가 매우 불량하고 피해자는 극심한 고통 속에 삶을 마감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은 피해자가 사망해 더 이상 말할 수 없게 된 점을 이용해 도박 습관 등 거짓 변명으로 범행을 정당화하기에 급급했다"며 "유족에게 치유할 수 없는 고통을 주고도 진정한 반성을 하지 않는 점, 청소년기 이후 폭력 관련 전과 등 총 20건의 범죄 전력이 있는 점 등을 종합할 때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email protected] 서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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