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현장 검사들의 항변

파이낸셜뉴스
김동규 사회부
김동규 사회부

"지휘부는 어떨지 몰라도 평검사들은 보완수사권이 사라지길 바란다. 형사사법체계가 더 망가지는 상황에서 아예 검사 탓을 못하게 해야 한다."

서초동에서 근무하는 한 평검사가 서너 달 전부터 기자를 만나면 줄곧 하는 말이다. 크고 똘망한 눈을 가진 그는 대화를 할 때면 특유의 익살스러운 표정을 더하지만, 옷차림에는 늘 '옥의 티'가 있다. 셔츠에 잉크가 묻어 있거나, 아침에 머리를 덜 말리고 온 티가 나거나…. 칠칠맞지 못하다 싶다가도 검사들의 업무량을 떠올리면 납득이 간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 6월 한 달 전국 검찰청의 사건 접수는 11만2756건이다. 비슷한 시기 전국 지검의 실근무 검사는 1404명으로 알려져 있다. 검사 한명이 한 사람의 생사여탈이 걸린 사건을 한 달에 80건씩 새로 떠안는 셈이다. 지난 5월 기준 처분이 3개월을 넘긴 '장기미제'가 3만1036건인 점까지 더하면 업무량은 상상을 초월한다. "야근을 달고 살아도 최저시급도 못 받는다"는 그들의 자조가 이해된다.

여당이 조만간 형사소송법 개정에서 보완수사권을 폐지할 것이란 소식이 여의도로부터 들려온다. 대통령의 말처럼 검찰이 쌓은 업보가 있고, '정치검사'의 폐해도 명백하니 '검찰개혁'의 명분은 충분하다. 다만 개혁의 명분이 제도 본연의 기능까지 도려낼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검사는 19세기 프랑스와 독일에서 수사기관의 권한 오남용을 견제하는 '법률의 인권 감시자'로 구상된 제도다. 기소권과 직접수사권을 함께 쥐고 벌여온 표적수사와 먼지떨이식 수사는 도려내야 할 환부가 맞다. 그러나 경찰이 넘긴 기록을 다시 읽고 영장 신청을 걸러내는 일은 환부가 아니라 형사사법이라는 분업체계의 뼈대다. 제도의 이름은 검사이지만, 그 설계의 수혜자는 수사를 받는 시민이었다.

숫자도 같은 말을 한다. 수사지휘권이 사라진 2021년을 기점으로 경찰이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피의자의 불기소율은 4%대에서 지난해 9.6%로, 구속영장 기각률은 17%대에서 26.8%로 뛰었다. 통제가 헐거워진 만큼 설익은 수사와 무리한 영장이 늘었다는 뜻이다. 지금도 경찰이 보완수사 요구에 잘 응하지 않는다는 게 일선의 토로다. 강제력이 약한 요구권만 남는다면, 그 청구서는 검사가 아니라 시민 앞으로 날아든다.

지지층에 '검찰개혁을 완수했다'고 선언하기 위해 잘라내도 되는 권한이 있고, 끝내 잘라내선 안 되는 기능이 있다. 셔츠에 잉크를 묻히고 다니는 그 평검사의 말이 자조가 아닌 농담으로 남길 바란다.

[email protected] 김동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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