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에도 창문 못 여는 제주 금악… 수십년 되풀이되는 양돈악취 해법은
제주도, 양돈장 바닥 '묵은 분뇨' 제거 착수
금악리 양돈농가 55곳 관리 수준별 개선
연간 130건 넘는 민원에 주민 생활권 침해
2개 농가서 슬러지 제거·신속수거 실증
시설 설치 위주에서 악취 발생원 관리로 전환
반복된 저감대책 실효성·주민 체감도 시험대
【파이낸셜뉴스 제주=정용복 기자】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는 제주 양돈산업의 중심지인 동시에 축산악취 갈등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마을이다. 양돈장 55곳에서 마을 인구의 100배가 넘는 돼지를 키우는 동안 주민들은 계절과 바람 방향에 따라 번지는 냄새를 견뎌왔다. 한여름에도 창문을 열기 어렵다는 호소와 악취 저감 요구가 이어졌지만 문제는 수십년째 풀리지 않았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이번에는 양돈장 바닥에 굳은 '묵은 분뇨'를 직접 걷어내는 방식으로 해법 찾기에 나섰다. 악취저감시설을 추가하는 데 집중했던 기존 대책에서 방향을 틀어, 농장에 분뇨가 오래 머물며 부패하는 구조부터 바꾸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시범사업 대상은 양돈농가 2곳이다. 금악리 55개 농장과 한림·애월을 비롯한 제주 서부 중산간의 고질적인 악취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업 전후 측정에서 실제 효과를 입증하고, 농가별 시설과 관리 수준에 맞는 수거체계를 확산해야 한다.
■ 주민 1040명 사는 마을에 돼지 10만9400마리
27일 제주도에 따르면 금악리에는 529가구, 주민 1040명이 거주한다. 마을에 들어선 양돈장은 55곳이며 사육 규모는 약 10만9400마리다. 주민 한 명당 돼지 약 105마리가 있는 셈이다. 제주도는 금악리에서 한 해 130건이 넘는 축산악취 민원이 발생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금악의 악취 갈등은 최근 시작된 사안이 아니다. 주민들은 2017년 제주시청 앞에서 집회를 열어 양돈단지의 악취 관리를 강화해 달라고 요구했다. 당시 제주지역 축산악취 민원은 2014년 306건에서 2016년 668건으로 2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었다.
제주도는 금악·저지와 애월읍 고성·광령 등 양돈 밀집지역을 악취관리지역으로 지정하고 농가 점검과 시설 개선, 악취 측정, 기술 컨설팅을 이어왔다. 2013년에는 금악리와 고성리 등에 악취 감시시스템도 설치했다. 밀폐형 돈사와 탈취시설, 안개분무시설, 바이오커튼 등 각종 저감 장비가 도입됐지만 주민 민원은 끊이지 않았다.
악취 문제는 금악마을 경계에서 멈추지 않는다. 양돈시설이 몰린 한림읍 상명·상대와 애월읍 고성·광령, 대정읍 동일·일과 등 제주 서부와 중산간 마을에서도 비슷한 갈등이 반복돼 왔다. 바람을 타고 이동하는 냄새의 특성상 농장 주변 마을만의 문제로 한정하기도 어렵다.
주민에게 악취는 측정기 수치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탁물을 밖에 널거나 창문을 열어 환기하는 일, 마을길을 걷는 평범한 생활까지 영향을 받으면 농가 시설 관리 차원을 벗어나 주거환경과 생활권의 문제로 이어진다.
■ 돈사 바닥에 굳은 '고착슬러지' 직접 제거
양돈장 악취의 주요 발생원은 돼지 분뇨다. 돈사 바닥 아래 분뇨를 모으는 공간인 '피트'에 분뇨가 장기간 머물면 바닥에 단단한 층으로 굳는다. 제주도가 '고착슬러지'라고 부르는 묵은 분뇨다.
고착슬러지는 산소가 부족한 상태에서 부패와 혐기성 발효를 거치며 암모니아와 황화수소 등 냄새 물질을 계속 만들어낼 수 있다. 돈사 외부에 탈취시설을 설치해도 바닥에 굳은 분뇨가 남아 있으면 악취 발생원은 사라지지 않는다.
제주도가 추진하는 '가축분뇨 고착슬러지 제거 시범사업'은 이미 발생한 냄새를 줄이는 방식보다 발생원 자체를 걷어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도내 양돈농가 2곳의 돈사 피트에 있는 분뇨를 전량 반출한 뒤 바닥에 굳은 슬러지를 제거한다. 이후 물청소를 주기적으로 하고 새로 발생한 분뇨는 농장 내부에 오래 저장하지 않고 신속하게 수거·처리한다. 물청소 과정에서 늘어나는 분뇨의 수거·처리 비용도 지원한다.
사업은 농가별 분뇨 관리 상태 진단과 사전 악취 측정으로 시작한다. 분뇨 반출과 슬러지 제거, 물청소, 신속수거를 진행한 뒤 다시 악취를 측정한다. 제주도는 사업 전후 측정값과 분뇨 수거량, 돈사 내부 관리 상태를 함께 분석해 저감 효과를 판단할 계획이다.
고착슬러지 제거에는 분뇨 전량 반출과 전문 장비, 작업 인력, 추가 처리비가 필요하다. 돼지를 사육하는 상태에서 작업 공간을 확보해야 하고 청소 뒤에도 신속수거를 지속해야 효과를 유지할 수 있다. 농가가 자체 비용으로 정기적으로 시행하기 어려운 이유다.
■ 농가 55곳 시설·관리 수준별로 개선
금악지역에서는 양돈농가 55곳을 시설과 관리 수준에 따라 나눠 개선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시설 현대화가 가능한 농가는 돈사 구조와 악취저감시설을 보완하고, 운영 방식의 개선이 필요한 농가는 피트 관리와 환기, 분뇨 수거 기준을 정비한다. 구조적으로 개선이 어려운 농가에는 폐업 지원이나 농장 통폐합 방안도 검토할 계획이다.
기존 대책이 저감시설 설치에 무게를 뒀다면 앞으로는 장비의 상시 가동 여부와 분뇨 체류기간, 수거 주기까지 관리 대상으로 삼는 방식이다. 시설을 갖추고도 가동하지 않거나 분뇨를 오랫동안 쌓아두면 주민이 체감하는 변화로 이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고착슬러지 제거와 액비순환, 분뇨 신속수거를 농림축산식품부의 '저탄소 축산혁신지구 시범사업'과 연계한다. 농장에 분뇨가 오래 머무는 시간을 줄여 축산악취와 함께 부패 과정에서 발생하는 메탄 등 온실가스 배출도 낮추겠다는 계획이다.
금악지역 사업은 2026년부터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추진된다. 양돈장과 처리시설 정밀진단, 고착슬러지 제거, 농가별 컨설팅, 신속수거 체계 구축을 거쳐 효과가 확인된 관리모델을 다른 축산악취 취약지역으로 확산하는 구조다.
양돈산업은 사료와 도축, 가공, 유통, 외식업까지 연결된 제주지역 핵심 산업이다. 제주지역 축산업의 2025년 조수입은 1조4208억원이며, 양돈 조수입은 4943억원으로 전체의 35%를 차지했다. 전년 4593억원보다 7.6% 늘어난 규모다. 경제적 비중이 큰 산업일수록 악취관리는 부수적인 규제가 아니라 주민과 공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경영조건이 돼야 한다.
■ 반복된 대책, 주민의 일상 변화로 입증해야
관건은 시범사업의 규모와 지속성이다. 2개 농가에서 단기간 악취 수치가 낮아지더라도 분뇨 수거가 늦어지거나 물청소와 시설 관리가 중단되면 효과가 오래가기 어렵다.
주민이 체감하는 개선 여부를 판단하려면 계절과 풍향을 반영한 장기 측정이 필요하다. 사업 전후 악취 수치뿐 아니라 민원 발생 횟수와 시간대, 농가별 수거 실적, 주민 체감도도 함께 살펴야 한다.
주민·농가·행정 간 신뢰 회복도 남은 과제다. 제주도는 지난 4월 금악리새마을회와 금악양돈발전협의회가 참여하는 민·관 거버넌스를 출범시켰다. 농가는 악취저감시설 상시 운영과 분뇨 적정 처리, 민원 발생 시 신속한 개선을 약속했고 주민은 현장 모니터링과 의견 제시에 참여하기로 했다.
협의체가 선언에 그치지 않으려면 악취 측정값과 민원 추이, 농가별 개선 상황을 주민에게 꾸준히 공개해야 한다. 행정과 농가가 제시한 수치가 '창문을 열 수 있는 날이 늘었는가'라는 주민의 일상 변화로 연결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금악에서 검증할 발생원 관리 방식이 효과를 내면 제주 서부 중산간 악취정책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시범사업만 진행한 뒤 수거와 관리가 중단되면 과거 대책과 같은 한계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크다.
김영준 제주도 농축산식품국장은 "축산악취를 실질적으로 줄이려면 농장 내부에 오랫동안 쌓인 분뇨부터 제거하고 신속하게 수거하는 관리체계 전환이 필요하다"며 "시범사업의 효과를 객관적으로 검증해 현장에서 실효성 있는 축산악취 저감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정용복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