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이 은행 된다"…셀러 파이낸싱의 역설, 편법 거래·사적금융 키우나
李대통령 근저당 거래 후 '집주인 대출' 매물 확대…서울 넘어 수도권·부산까지
전문가 "매도인이 은행처럼 소득·세금·권리관계 직접 검증…증여 논란도 주의"
"불법 아닌 규제 우회"…부모·자녀 거래 등 응용 사례 늘며 회색지대 커질 수도
[파이낸셜뉴스] 이재명 대통령의 분당 아파트 매각 과정에서 활용된 '매도인 근저당' 방식이 공개된 이후 부동산 시장에서는 '집주인 대출 가능'을 내건 매물이 잇따르고 있다. 강남권을 넘어 수도권과 부산 일부 고가주택 시장까지 셀러 파이낸싱(Seller Financing)이 다시 등장하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소위 '있는 사람들의' 거래 방식이던 셀러 파이낸싱이 양성화되면서 앞으로 나타날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은행이 하던 역할을 개인이 대신하게 될 경우 신용심사부터 담보관리, 세금 검증까지 모두 매도인의 몫이 될 거라 봤다. 여기에 부모·자녀 간 거래나 우회 증여 등 새로운 편법 거래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도 봤다.
신보연 세종대 부동산AI융합학과 교수는 27일 "셀러 파이낸싱은 원래 가능한 사인 간 금전대차 계약으로 거래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면서도 "은행이 사라진 자리를 개인이 대신하는 만큼 위험관리도 개인이 직접 해야 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부동산 리서치 경력 25년 차인 '빠숑' 김학렬 스마트튜브연구소장은 "송파구에선 관련 매물이 급증했다"며 "부동산 관련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실제 최근 서울 송파와 강남권에서는 '집주인 대출 가능'이라는 문구를 내건 매물이 등장했고, 부산 해운대 등 지방 고가주택 시장에서도 유사한 거래가 나오고 있다. 강화된 대출 규제로 잔금 마련이 어려워진 매수자를 겨냥한 것이다.
강남구 자곡동 전용 59㎡ 매물에는 '집주인 대출 6억원'이라는 조건이 제시됐다. 서초구 반포동 반포자이 전용 84㎡ 매물에는 "매도인 대출 찬스 갑니다"라는 문구가 붙었고, 강남구 개포동 디에이치아너힐스 전용 74㎡ 매물에도 '집주인 대출 가능'이라는 안내가 포함됐다.
경기 지역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나타났다. 수원시 영통구 광교신도시에서는 호가 27억2500만원인 대형 평형 매물에 '매도인 대출 가능' 조건이 제시됐다. 남양주시 다산동 전용 84㎡, 호가 13억8000만원 매물도 집주인이 매수자에게 자금을 빌려줄 수 있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지방에서는 부산 해운대구 우동의 해운대 아이파크 전용 112㎡ 매물에 '집주인 대출 가능'이라는 문구가 등장했다. 셀러 파이낸싱이 서울 강남의 초고가주택에 국한되지 않고 수도권 외곽과 지방 고가주택으로 번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전문가들은 셀러 파이낸싱에서 가장 큰 위험은 매도인이 부담한다고 입을 모은다.
신보연 교수는 "매수자가 상환하지 못하면 소유권은 이미 이전된 상태에서 매도인이 근저당을 실행해 직접 경매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은행처럼 신용평가 시스템이 없는 만큼 금융기관보다 훨씬 위험한 거래"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금융기관 수준의 검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소득금액증명원과 국세·지방세 완납증명서를 확인하고 매수인의 재산 상태와 세금 체납 여부를 반드시 살펴봐야 한다"며 "선순위 임차인이나 전세권 등 권리관계까지 확인하지 않으면 담보를 잡고도 돈을 회수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셀러 파이낸싱 대상 주택에 기존 전세가 있다면 매도인이 근저당권을 설정했다는 이유만으로 대여금을 안전하게 회수할 수 없다.
신 교수는 "기존 임차인이 먼저 대항력과 확정일자를 갖췄다면 경매 과정에서 임차보증금이 매도인의 근저당채권보다 먼저 변제될 수 있다"며 "매도인은 전입일과 확정일자, 보증금 규모 등 선순위 임차인의 권리관계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매수인은 매도인에게 갚아야 할 대출금뿐 아니라 향후 임차인에게 반환해야 할 전세보증금도 부담한다"며 "매수인의 재무상태가 악화되면 매도인이 근저당권을 갖고도 대여금 전액을 회수하지 못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세금 문제도 새로운 변수다. 적정 이자를 받지 않거나 실제 이자 지급이 이뤄지지 않으면 증여세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부모와 자녀 등 특수관계인 거래는 자금출처 조사 대상이 될 가능성도 커진다.
신 교수는 "국세청이 인정하는 적정 수준의 이자를 실제 지급했다는 점이 입증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서도 "거래가 늘어날수록 세무상 쟁점도 함께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매수인도 주의해야 한다. 금융권 대출과 달리 금리와 만기, 중도상환 조건, 연체이자 등이 표준화돼 있지 않아 계약서에 어떤 내용이 포함됐는지 꼼꼼하게 확인해야 한다. 무이자나 지나치게 낮은 금리로 거래하면 증여세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김학렬 소장은 셀러 파이낸싱이 새로운 거래 방식은 아니지만 이번 대통령 사례를 계기로 사실상 양성화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15억원 초과 주택담보대출이 금지됐던 문재인 정부 때도 강남에서는 셀러 파이낸싱이 적지 않게 활용됐다"며 "다만 당시에는 일부 자산가들만 알고 쓰던 방식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례는 그동안 음지에 있던 거래 방식을 시장에 공개한 '판도라의 상자'와 같다"며 "불법은 아니지만 규제를 우회하는 편법적 성격이 있는 만큼 앞으로 다양한 응용 사례가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특히 부모와 자녀 간 거래처럼 정상적인 금전대차인지, 우회 증여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김 소장은 "거래가 많아질수록 사적 금융시장 규모도 커질 수 있다"며 "금융당국과 과세당국도 어디까지를 정상적인 금전대차로 보고 어디부터 편법으로 볼지 판단하기 어려운 회색지대가 확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mail protected] 서윤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