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 달러 넘던 美 '유동성 저수지' 사라졌다…40조달러 부채의 다음 경고등 [쓸만한 이슈]
김은유 변호사 "역레포 사실상 고갈, 美증시 예비 물탱크가 비었다"
"지급준비금·SOFR 주목"…실제 美 연준도 역레포 '거의 제로' 확인
은행 지급준비금 2.92조 달러…SOFR·회사채 시장은 아직 안정적
'위기'보다 '완충재 약화'…40조달러 국가부채·국채 공급 확대 주목
[파이낸셜뉴스] "물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예비 물탱크 하나가 비어 버렸다."
'부동산·금융 전문 변호사'로 알려진 김은유 법무법인 강산 변호사가 최근 미국 금융시장의 유동성을 분석하며 내린 진단이다.
미국의 총 국가부채가 지난달 처음으로 40조 달러를 넘어서고 장기 국채금리까지 급등하면서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김 변호사는 미국 증시의 급락 위험을 유동성 측면에서 조기에 감지하기 위해 눈여겨 봐야 할 위험 경고를 제시했다.
김 변호사는 3일 파이낸셜뉴스에 "현재 미국 금융시장의 유동성은 위기는 아니다. 다만 완충재가 얇아진 상태"라며 "앞으로는 지급준비금 감소, 신용스프레드 확대가 동시에 나타나는지를 주의 깊게 봐야 한다"고 짚었다.
김 변호사가 이 같은 내용으로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개한 건 7개의 '유동성 경고판'이다.
미국의 은행들이 연방준비제도(연준)에 보유한 여윳돈인 지급준비금과 연준 총자산, 금융회사들이 미 국채를 담보로 하루짜리 돈을 빌릴 때 내는 금리인 무위험지표금리(SOFR), 미 국채 간 금리 차이인 하이일드 신용스프레드가 핵심이다.
여기에 미국 시카고 연방준비은행(연은)이 제공하는 국가금융상황지수(NFCI)와 미국 정부의 통장인 재무부 일반계정(TGA), 금융기관들이 남는 돈을 연준에 맡겨두는 역환매조건부채(역레포·RRP) 등을 더했다.
논리는 간단하다. 미국 정부가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채를 대량 발행하면 투자자들의 돈이 정부 계좌로 이동하면서 민간 금융시장의 현금이 줄어들 수 있다는 얘기다.
과거에는 현금이 줄어도 이를 받아주는 거대한 '저수지'가 있었다. 코로나19 이후 시중에 돈이 넘치면서 연준 역레포에는 한때 2조 달러 이상 쌓였다. 이후 연준이 시중 돈을 회수하는 양적긴축(QT)을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쌓여있던 자금이 시장으로 흘러나오며 충격을 완화했다.
문제는 현재 그 저수지가 사실상 고갈됐다는 점이다. 그는 "2021~22년에는 2조 달러 이상이 쌓여 있었기 때문에 거대한 유동성 저수지 역할을 했다"며 이제는 이 같은 완충 효과가 거의 사라졌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지급준비금 감소 △SOFR 상승 △하이일드 신용스프레드 확대의 순서로 위험이 번지는지를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과정이 증시 변동성 확대와 주가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주가는 마지막에 볼 지표"라며 주가보다 먼저 돈의 흐름과 신용시장의 균열을 확인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김 변호사의 경고는 실제 데이터와 얼마나 일치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예비 물탱크 또는 유동성 저수지가 비었다'는 진단은 사실에 가깝지만, 지금 당장 미국 금융시장에 물이 부족하다고 볼 단계는 아니다.
우선 '유동성 저수지'로 지목한 역레포가 사실상 소진됐다는 것은 연준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연준은 지난 7월 통화정책보고서에서 역레포 이용액이 대부분의 날에 '거의 제로(near zero)' 수준이라고 밝혔다.
은행 지급준비금도 감소했다. 세인트루이스 연은 경제통계시스템(FRED)에 따르면 지급준비금은 7월 29일 2조9846억 달러에서 지난달 26일 2조9249억 달러로 한 달 사이 약 600억 달러 줄었다.
다만 3조 달러 아래로 내려갔다고 곧바로 '돈이 부족하다'고 해석할 수는 없다. 연준은 현재 지급준비금이 금융시스템을 운영하기에 '충분한(ample)' 수준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예비 물탱크는 비었지만 본 물탱크의 물까지 부족한 것은 아니다'라는 얘기다.
미국 정부가 국채를 대규모 발행해 조달한 돈을 정부 계좌인 TGA에 쌓으면 은행 지급준비금이 감소할 수 있다는 점도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이다. 연준도 비슷한 설명을 내놓은 바 있다.
필립 제퍼슨 연준 부의장은 지난 1월 "세금 납부일이나 대규모 국채 결제일에 돈이 재무부 계좌로 이동하면 은행 지급준비금이 감소하고 단기자금시장 금리에 상승 압력이 나타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국채 발행·정부 계좌로 자금 이동→은행 지급준비금 감소→단기자금시장 압박'이라는 연결고리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더욱이 미국 국가부채가 40조 달러를 넘어선 만큼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한 국채 발행은 앞으로도 금융시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 과거에는 역레포의 막대한 자금이 충격을 흡수했지만 이제 그 완충재가 거의 사라졌다는 점이 차이다.
현재까지 금융위기를 알리는 경보기는 울리지 않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근거는 SOFR이다. 금융회사들이 미 국채를 담보로 하루 동안 돈을 빌릴 때 내는 금리로, 현금이 부족해지면 SOFR은 급등할 수 있다.
하지만 뉴욕 연은에 따르면 SOFR는 8월 들어 대체로 3.6%대에서 안정적으로 움직였다. 지난달 20일에는 3.63%로 당시 연준 기준금리 목표범위인 3.50~3.75%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기업 신용시장도 잠잠하다. 위험기업의 회사채와 미 국채 간 금리 차이인 하이일드 스프레드는 8월 말 2.6%p 안팎으로 오히려 좁아졌다. 기업 부도 위험을 우려해 투자자들이 높은 금리를 요구하는 상황과는 거리가 있다.
따라서 지급준비금 감소는 나타나고 있지만 'SOFR 급등→기업 신용위험 확대' 등 다음 단계로 번지고 있다는 증거는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한때 2조달러를 넘었던 역레포는 거의 사라졌고 지급준비금도 3조달러 아래로 내려왔다. 국채 결제와 정부 계좌로의 자금 이동이 지급준비금을 감소시키고 단기금리를 압박할 수 있다는 메커니즘 역시 연준이 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금융시장이 이미 유동성 위기에 들어갔다고 볼 근거는 부족하다.
전문가들은 "현재 상황은 '물이 부족한 위기'라기보다 '예비 물탱크가 사라져 충격에 민감해진 상태'에 가깝다"고 진단했다.
[email protected] 서윤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