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각

[강남視角] 초고가 반도체와 세수의 함정

파이낸셜뉴스
정상균 경제부 부장
정상균 경제부 부장

주식시장은 실물경제에 통상 6~9개월 앞서 움직인다. 지난 28일, 29일 연이틀 주가 폭락은 자본시장이 미래의 위험을 먼저 감지하고 발작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반도체는 특히 경기사이클의 선행 속도가 2~3배 빨랐다.

반도체는 과거 두 차례(2018년, 2021년) 다운사이클을 경험했다. 2018년은 구글, 아마존 등 글로벌 빅테크들이 데이터센터를 짓기 위해 서버용 D램을 미친 듯이 사들이며 단가가 치솟았던 시기다. 그해 3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고점을 찍고 하락했다. 주가 폭락 6개월 뒤 한국의 반도체 수출액(2018년 10월 116억달러)은 월간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9개월 후인 그해 12월, 반도체 수출액은 전년 대비 -8.3% 추락하며 실물경제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 호황을 이끌었던 반도체 역시 2021년 하반기 다운사이클에 진입하며 수출이 꺾였다. 실물경기도 급격히 얼어붙었다.

여기서 역설은 인공지능(AI) 반도체 가격이다. 독점적 시장에서 천문학적 마진을 누리고 있는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이 "지금 반도체 가격은 비정상이며 떨어져야 한다"고 지적한 것은 최근 대두되는 AI 투자 피크아웃, 반도체 초고가 위험론과 정확히 맥락이 닿아 있다. "공장을 더 지어 공급을 늘려 가격이 안정되어야 한다"는 발언은 '미래공급 예고'로 초고가 거품을 제어하려는 최 회장의 영리하고도 계획된 '구두개입'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국내와 미국에 빠르게 새 공장을 짓고 몇 년 후 실제 공급이 늘면 AI 반도체 가격은 조정을 받을 것이다. 이처럼 최 회장의 예고대로 공급과잉과 가격 하락이 현실화되면 정부 재정과 연동된 '반도체 초고가 세수' 역시 끝이 난다.

반도체 사이클 추락 때도 빅테크의 재고조정(수요둔화)이 결정타였다. 세수는 가장 세게 롤러코스터를 탔다. 반도체 호황의 기저효과가 이어진 2022년에는 52조원의 초과세수로 재정이 넘쳐났다. 그러나 딱 1년 만인 다음 해(2023년) 반도체 불황과 기업실적 악화로 법인세수가 급감했다. 결국 그해 56조원의 역대급 세수결손이 났다. 현금성 지출을 급격히 늘린 방만재정 탓에 국가부채비율(2023년)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50%를 처음 넘어섰다. 정부는 83조원의 적자국채를 찍고 금융성 기금으로 돌려 막았다.

AI 반도체는 장기 선계약, 기술장벽의 특성상 과거의 사이클과 차원이 다르다는 게 낙관론자들의 주장이다. 정부 역시 같은 인식이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다. 반도체 메가프로젝트는 초장기 인프라 투자사업이다. 애초에 기반이 갖춰진 산업단지가 아닌 이상, 발전소를 늘려 전력망을 깔고 댐을 짓거나 높여 용수를 끌어와 반도체 공장을 돌리는 데 최소 5년은 걸릴 것이다.

내년 중반 미국 공장에서 AI 반도체 양산(첫 웨이퍼 생산)을 시작하고, 중국(화웨이, SMIC, CXMT 등) 반도체가 무섭게 따라붙고 있다. 이때와 맞물려 반도체 수출은 마이너스로 반전하고, 실물경제는 침체가 시작될 것이다. AI 슈퍼사이클이 하락 반전한다면 기저효과가 끝나는 내년 이후의 충격은 과거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더 클 것이다.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돈이 넘쳐나자, 정부와 경제당국이 착각과 자만에 빠져 있는 것 같은 우려가 든다. 냉정해져야 한다. 역대급 세수와 AI 반도체 초고가 마진은 단기적이다. 이를 믿고 짜는 확장재정, 즉 넘쳐나는 재정을 뿌리는 것은 전략 중 하수(下手)다. 재정을 투입한다고 국가의 잠재성장률과 기초체력이 저절로 커질 것이라는 인식을 국민에게 심어주어서는 안 된다. 초고령화로 노인부양비가 급증하는, 예견된 미래를 더 솔직히 인정하고 산업 체질을 바꾸며 까다로운 고용 시장과 연금·복지 재정, 교육 등의 구조를 혁신해야 한다. 씀씀이를 키운 나라의 재정이 수축되면 후폭풍을 감당하는 데 훨씬 더 큰 고통이 따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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