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성진 칼럼] 가벼운 입, 어설픈 정책
황희 '버스 주택' 발언으로 뭇매
정책 입안자의 입은 무거워야
심사숙고 거쳐서 결론 말하길
김용범 레버리지 발언 책임 커
국립대 등록금 면제도 즉흥적
지역 살리기가 먼저, 본말전도
"버스에서 사는 게 어떠냐." 황희 의원의 가벼운 혀가 신경이 곤두서 있는 청년들을 건드렸다.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속된 표현이 있다. 일본어인 가오(얼굴)는 자존심으로 의역할 수 있다. 아이디어 차원이라는 말은 통할 수 없다. 황희는 정책을 입안하는 국회의원이기 때문이다. 3포, 5포라는 말이 나온 지 10년이 넘었지만, 청년들의 암울한 사정은 바뀌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자존심마저 포기하지는 않은 그들이다.
기성세대는 고도성장기의 특혜를 누린 세대다. 추천 서류만으로 대기업에 취업할 수 있었고, 단칸방으로 시작해도 10년 안에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었다. 지금 청년들은 꿈도 꾸지 못하는 일이다. 절망적 현실에 대한 책임은 정치에 있다. 정치인 황희도 당연히 책임이 있다. 그 이전에 누릴 만큼 누린 기성세대로서 위로하지는 못할망정 마음에 상처를 준 잘못은 크다.
무엇을 했는지 돌아보라. 한 번이라도 직장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는 청년들의 처지를 안타까워한 적이라도 있는가. 허구한 날 싸움질만 하다 그러니 '너부터 살아보라'는 몰매를 맞는 것이다. 13평 규모 임대주택을 보고 4인 가족도 살 만하다고 한 전임 대통령 발언의 속편이다.
'마음은 황하강처럼 깊게 하고 입은 곤륜산처럼 무겁게 하라'라는 한시 구절이 있다. 정치인들이 새겨들을 가르침이다. 입은 가볍기 그지없고 속도 얕으니, 현실은 반대다. 정치가의 말은 곧 정책이고, 정책은 민생과 연관돼 있다. 권한을 가졌기에 그들이 하는 말은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심사숙고하여 가장 좋은 방안이 매듭지어졌을 때 입밖으로 나와야 한다.
옛 정치가들은 그렇게 입이 가볍지 않았다. 정제되고 절제되었고, 촌철살인의 맛이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막말이 일상사처럼 난무하고 덩달아 인간의 품격도 사라졌다. SNS가 소통의 도구가 되면서 입과도 같은 글을 통해 마구 저지르고 본다. 허공으로 사라지는 말보다 지워지지 않는 글은 더욱 신중해야 하나 그렇지 않다. 어설픈 정책들이 시시각각 인터넷을 통해 전달된다. 대통령이든 정치인이든 거리낌이 없다. 대중의 반응을 떠보고 종래는 정책으로 등장한다. 어떤 의견수렴의 과정도 없다.
대표적인 인물이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다. 레버리지의 뜻도 잘 모르는 투자자들 앞에 느닷없이 꺼내놓더니 정책화해버렸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위험하다고 했지만 듣지 않았다. 귀가 솔깃해진 청년들이 믿고 따라 했고, 결과는 대손실이다. 결혼자금 5500만원을 날리고 파혼을 고민하고 있다는 사연까지 들린다.
반도체 초과세수를 국민에게 환원해야 한다는 '국민배당금' 발언도 김용범의 입에서 나왔다. 고환율·고물가·고금리의 3고(高)는 성공의 비용이라든가, "국내 증시의 변동성이 큰 것은 개인투자자들의 역동성 때문"이라는 발언으로도 물의를 일으킨 장본인이 청와대 정책담당 참모다. 지위와 역할로 볼 때 결코 개인 의견으로 치부할 수 없는 문제다. 꿈을 잃은 청년들의 마지막 남은 희망의 불씨마저 꺼뜨린 책임이 막중하다.
정책의 신중성은 백년대계라는 교육에서는 더 고려돼야 한다. 김영삼 정권의 교육개혁 작업은 몇년 넘게 수백번의 회의를 거쳤지만 결과물이 신통치 않았다. 국가 대사 중에서도 교육 문제는 그만큼 어렵다. 수많은 입시제도 실험을 통해 우리는 몸소 겪었지 않나.
그런데도 실험의 주사위가 또 던져졌다. 거점국립대학 육성을 위해 등록금을 면제하겠다는 정책이 나왔다. '서울대 10개 만들기'와 궤를 같이하는 정책이다. 국립대학들은 좋아하고, 사립대학들은 "문을 닫으라는 소리"라며 반발한다. 지방 살리기는 당연한 방향이나, 등록금 면제로 대학을 살릴 수 있을까. 주사위는 1이 나올까, 6이 나올까.
등록금이 없거나 싸다고 좋은 학생들이 찾아오지 않는다. 모든 것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으니 '인서울'을 하려고 경쟁하는 것이다. 교육이 죽어서 지방이 같이 죽은 것이 아니다. 지방이 죽으니 교육이 죽은 것이다. 교육을 먼저 살린다고 지방이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본말이 전도됐다. 설령 우수한 학생들의 인서울을 막고 키워낸다고 해도 직장을 찾아 수도권으로 가버린다면 만사가 허사다.
정책 앞에는 늘 '국민'이 붙는다.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는 것이다. 민주국가에서 다수의 보편적 국민이라면 국민을 구실로 삼는 정책은 문제가 없다. 중차대한 사법·검찰개혁을 속전속결로 추진하는 것은 그렇다 쳐도 국민 60%가 반대하는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를 밀어붙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email protected] 손성진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