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만대 '히트펌프' 시장 열린다…삼성전자, 제주서 승부수 [르포]
냉방·난방·급탕 하나로…에너지 효율 높여
제주서 실증·보급 첫발…아파트 적용도 속도
【제주=임수빈 기자】지난 10일 찾은 제주시 도남동의 한 단독주택. 거실과 안방에 설치된 에어컨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동시에 주방 싱크대에서는 따뜻한 물이 흘렀다. 냉방과 온수를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건 삼성전자가 국내에서 테스트 중인 고효율 히트펌프 냉난방시스템 'EHS 올인원' 덕분이다. 기존에는 에어컨과 보일러가 각각 냉방과 난방·온수를 나눠 맡았다면, EHS 올인원은 이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했다.
1992년 준공된 이 집에서 34년째 살고 있는 양창희씨(74)는 지난달부터 EHS 올인원을 사용하고 있다. 기존에는 에어컨으로 냉방하고 난방과 온수는 등유 보일러에 의존했다. 양씨는 "예전에는 보일러 기름이 언제 떨어지는지 걱정해야 했고 온수를 쓸 때마다 직접 보일러를 켰다 다시 꺼야 했다"며 "지금은 온도만 설정하면 알아서 작동하고 냉방 성능도 좋아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에너지 효율 최적화 히트펌프 실증
삼성전자는 지난 6월 양씨의 집에 실거주형 '히트펌프 필드 테스트 랩'을 구축하고 EHS 올인원의 냉난방 성능과 에너지 효율을 검증하고 있다. 실제 사람이 생활하는 주택에서 사계절 동안 제품을 가동하며 에너지 사용량과 비용, 사용 편의성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본사에서 제품 운전 상태를 원격 모니터링하며 데이터를 축적 중이다.
히트펌프는 공기 중의 열을 활용해 높은 에너지 효율을 구현하는 기술로, 화석연료 중심의 난방을 전기 기반으로 전환하는 '난방 전기화'의 핵심 기술로 꼽힌다. 삼성전자 EHS 올인원은 올해 4월 유럽에 출시된 데 이어 국내 출시를 앞두고 있다. 제품은 하나의 실외기로 직접적인 공기 냉방(A2A)뿐만 아니라 물을 데워 사용하는 바닥 난방·급탕(A2W)을 동시에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여름철 냉방 과정에서 외부로 버려지는 열을 온수 생산에 다시 활용하는 '열 회수' 기술을 적용하는 등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데도 최적화됐다.
올해 7월 기준 해당 주택의 전기요금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약 1만5000원 줄었다. 폭염으로 올해 에어컨 사용 시간이 늘고, 기존 등유보일러가 담당했던 온수까지 전기로 공급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미 있는 초기 결과라는 설명이다. 양씨는 "설치비가 비싸다는 점이 단점이지만 정부 지원이 이뤄진다면 충분히 사용할 만하다"고 말했다.
■아파트 등 주거 환경 적용에 박차
유럽에서는 이미 탈탄소와 에너지 안보 강화에 따라 화석연료 보일러를 히트펌프로 대체하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국내도 히트펌프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는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2035년까지 히트펌프 350만대를 보급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518만t(톤) 감축한다는 중장기 계획을 추진 중이다.
삼성전자는 국내 주거환경에 맞춘 히트펌프 보급 확대에 나서고 있다. 같은 날 찾은 제주시 애월읍의 한 단독주택은 지난 6월 25일 제주 히트펌프 보급사업을 통해 삼성전자의 'EHS 히트펌프 보일러'가 설치된 첫 사례다. 집주인 김은애씨(54)가 보급 사업 공고가 나오자마자 신청한 배경에는 겨울철 난방비 부담이 있었다. 도시가스 공급이 제한적인 제주에서는 단독주택을 중심으로 액화석유가스(LPG)나 기름보일러를 사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김씨 역시 LPG 보일러를 사용해왔다. 그는 "겨울철 난방비가 부담스러워 사업 공고가 뜨자마자 신청했다"며 "히트펌프 설치를 결정한 뒤 여러 업체를 알아봤는데 삼성전자가 기술력이 가장 좋다는 평가가 많아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EHS 히트펌프 보일러는 35도 출수 조건에서 계절성능계수(SCOP) 4.9를 기록해 정부 히트펌프 보급사업 에너지 효율 가이드라인인 4.5를 웃돈다. 외기 온도 영하 25도에서도 정격 난방 성능을 100% 제공하고 최대 70도의 온수를 공급한다. 소음도 적다.
최대 단점으로 꼽히는 초기 설치비 부담을 낮추기 위한 지원도 이뤄지고 있다. 제주 보급사업 기준 총 사업비 약 1400만원 가운데 70%가 지원돼 소비자 자부담은 약 400만 수준이다. 신문선 삼성전자 생활가전(DA)사업부 상무는 "현재 산업 기반에서는 보조금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며 "향후 시장이 커지면 보조금은 줄어들고 제조사들이 가격 경쟁력을 높여 이를 극복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제주에서 확보한 데이터를 토대로 국내 주거 환경에 최적화된 히트펌프 기술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제주 지역 단독주택 실증과 함께 삼성물산 주거성능연구소에도 'EHS 올인원'을 설치하고 실제 아파트와 동일하게 조성된 환경에서 성능 검증을 진행하고 있다.
신 상무는 "제주는 국내 난방 전기화 정책이 가장 먼저 추진되는 지역인 만큼 기술과 제품 경쟁력을 실제 주거 환경에서 검증할 수 있는 중요한 테스트베드"라며 "냉방·난방·급탕을 아우르는 다양한 주거용 HVAC 솔루션을 선보이며 국내 난방 전기화와 탄소중립 실현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임수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