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불볕더위' 속 멈출 권리

파이낸셜뉴스
박성현 사회부 기자
박성현 사회부 기자

'무더위 지속 중 낮 시간 야외활동 자제'라는 재난문자까지 날아든 38도의 여름날. 뜨거운 햇볕 아래 숨이 턱 막히고 잠시 서 있는 것조차 버거웠지만, 동행취재한 20대 택배기사 김모씨의 발걸음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몸집보다 큰 짐을 들고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의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이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이 목덜미를 타고 번졌다.

배송 한 건을 마칠 때마다 김씨는 차로 돌아와 텀블러의 물부터 들이켰다. 그러고는 텀블러를 내려놓기 무섭게 다시 운전대를 잡고 다음 배송지로 향했다. 그날 그가 멈춰 있던 시간은 물 한 모금을 삼키는 찰나뿐이었다. 짐칸에는 아직 배송을 기다리는 수십 개의 택배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폭염 속 휴식이 사치가 되는 현실은 김씨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한낮 공항 활주로의 지면 온도는 60도, 항공기 보조엔진이 내뿜는 열기는 70도에 이른다는 게 공항 노동자들의 증언이다. 그러나 엄격한 운항 일정과 만성적인 인력 부족 탓에 잠깐 숨을 돌리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다.

배달라이더 역시 용광로처럼 달아오른 아스팔트 위에서 헬멧을 쓴 채 쉼 없이 달려야 하는 처지다. 건당 수수료로 생계를 잇는 이들에게 휴식은 곧 소득의 단절을 의미한다. 폭염중대경보에도 할증이 175원에 그치는 경우가 있는 데다 추가 보상을 내건 프로모션과 정해진 시간 내 배달 건수를 채우도록 유도하는 알고리즘까지 이들을 도로 위에 붙잡아둔다.

일터는 달라도 노동자의 휴식을 가로막는 사정은 엇비슷하다. 멈추는 순간 일이 밀리고 수입은 줄어든다. 그 빈자리를 메울 인력도 넉넉지 않다. 폭염 대책이 '몇 분을 더 쉬게 할 것인가'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다. 작업중지권이 현장에서 실제 작동하려면 잠시 쉬어도 생계가 흔들리지 않을 소득 보전과 적정·예비인력 확보, 업무량 조정, 냉방·휴게시설 확충이 뒷받침돼야 한다.

다만 노동자의 휴식을 보장하는 데 따르는 비용과 책임이 하청업체나 중간 단계의 사업자 등 또 다른 '을'에게만 전가되는 것은 곤란하다. 원청과 플랫폼 등 결정 권한이 더 큰 주체가 그 부담을 나눠야 한다.

온열질환 산업재해 승인 건수는 2020년 13건에서 지난해 77건으로 약 6배 급증했고, 이 기간 19명이 숨졌다. 이런 상황에서 14일 '택배 없는 날'은 사회의 몫을 돌아보게 한다. 하루이틀 늦어지는 배송을 감수하는 소비자의 여유도 재난적 폭염에 노출된 노동자의 안전을 지키는 조건 중 하나다.

[email protected] 박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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