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視角] 도시설계 새 기준 ‘폭염’
올여름 경남 양산의 기온이 40도를 넘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도 최고기온이 40도를 육박, 폭염경보가 확대됐다. 한때 남부에 집중됐던 극한 폭염이 이제 전국적인 현상이 됐다. 40도라는 숫자에 익숙해져야 하는 상황이 됐다.
문제는 이런 여름이 올해에 한정된 게 아니라는 데 있다. 기후변화로 폭염은 더 자주, 더 길게, 더 강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여기에 서울 같은 대도시는 아스팔트와 콘크리트가 열을 머금는 도시 열섬현상까지 겹친다.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는 도시화로 인한 열섬효과가 지역적으로 기온을 추가로 2도가량 높일 수 있다고 분석한다. 결국 앞으로의 여름은 '폭염이 오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얼마나 강하게 버텨야 하느냐'의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폭염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재난이 아니다. 에어컨이 켜진 사무실에서 폭염경보 문자를 확인하는 사람과 한낮 아스팔트 위에서 물건을 배달하거나 공사장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에게 38도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냉방비 걱정 없이 에어컨을 켤 수 있는 가정과 전기요금 때문에 선풍기에 의존하는 가정의 여름도 다르다.
도시의 어느 동네에 사느냐에 따라서도 체감하는 온도가 달라진다. 나무와 공원이 많은 지역, 하천과 바람길이 가까운 지역은 상대적으로 시원하다. 반면 좁은 골목에 노후주택과 아스팔트가 밀집된 지역은 폭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는 낮 동안 열을 흡수했다 밤에도 쉽게 내놓지 않는다. 건물이 빽빽한 지역에서는 바람길마저 막힌다. 여기에 자동차와 냉방기기에서 배출되는 인공열까지 더해진다. 같은 기온이라도 도심 한복판과 녹지가 많은 지역의 체감온도가 다른 이유다. 폭염은 자연현상이지만 피해의 크기는 도시가 어떻게 만들어졌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가로수와 도시숲을 늘리고 하천과 수변공간을 복원해 도시 자체의 온도를 낮춰야 한다. 보행로와 버스정류장은 여름철에도 걸을 수 있도록 그늘을 연결하고, 건물에는 단열과 차열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옥상과 도로에서 흡수하는 열을 줄이는 방안을 더욱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폭염 취약지역과 취약계층을 데이터로 찾아내 냉방비와 주거 개선, 이동형 쉼터 등을 집중 지원해야 한다.
외국인 관광객 역시 폭염 속에서 몇 시간을 걸어야 하는 도시보다 녹지와 수변공간, 실내외 휴식공간이 잘 연결된 도시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기후 적응 능력은 시민 삶의 질뿐 아니라 관광과 투자, 인재 유치와도 연결된다. 폭염 대응이 복지정책이면서 동시에 도시 경쟁력인 이유다. 한때 도시 경쟁력을 말할 때 기준은 비교적 명확했다. 얼마나 많은 기업과 인재가 모이는지, 교통망은 얼마나 촘촘한지, 높은 빌딩과 대규모 개발사업을 얼마나 보유했는지가 경쟁력을 상징했다. 그러나 기후위기가 일상이 된 지금은 여기에 새로운 질문을 하나 더해야 한다. 이 도시는 한여름에도 사람이 살 만한가.
폭염을 태풍이나 집중호우처럼 잠깐 지나가는 계절성 재난으로 볼 것이 아니라 도시계획의 기본 조건으로 받아들인 정책이 필요하다. 도시 자체의 온도를 낮추는 구조적 투자가 필요하다. 한여름 낮에도 시민이 걸을 수 있는지, 밤이면 도시가 식는지, 냉방비가 없는 사람도 안전하게 여름을 날 수 있는지가 새로운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앞으로 글로벌 도시 간 경쟁에서도 이런 차이는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기업과 인재가 도시를 선택할 때 높은 임금과 편리한 교통만큼이나 안전하고 쾌적한 생활환경을 따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40도는 경고다. 기후를 단기간에 되돌릴 수 없다면 적어도 도시는 달라져야 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폭염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도시가 아니다. 폭염이 매년 찾아온다는 것을 전제로 설계된 도시다. 기후위기와 40도 시대는 이미 시작됐다. 우리는 과연 준비가 돼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