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법원 논의, 도입 여부 넘어 '설계'로... 법학계 머리 맞대
조의연 부장판사 "치료보호사건 신설해 흩어진 처우수단 통합해야"
"지향점엔 적극 공감"... 관건은 법원이 치료를 어디까지 맡느냐
[파이낸셜뉴스] 마약류 사범에 대한 치료·재활을 법원이 어디까지 맡아야 하는지가 학계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형사재판에 치료 절차를 접목하는 '약물법원(Drug Court)'의 도입 필요성에는 연구자들 사이에 대체로 공감이 모였지만, 법원의 역할 범위와 입법 시기를 두고는 견해가 갈렸다.
■ 흩어진 처우수단, '치료보호사건'으로 통합하자
한국법학교수회는 20일 오후 경기 수원 아주대에서 '사법제도개혁을 위한 공동학술대회'를 열었다. 학술대회 '법원제도개혁' 세션에서 약물법원제도 발제를 맡은 조의연 청주지법 부장판사(사법연수원 24기·법학박사(인하대))는 현행 마약류 사범에 대한 형사재판을 '형벌의 실패'로 규정했다. 중독증이 해소되지 않은 채 엄벌만 반복하다 보니 마약류 사범이 교정시설과 법원을 오가는 '회전문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조 부장판사는 약물법원의 도입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즉 치료명령과 치료감호, 치료보호 등 형사소송 절차 곳곳에 흩어진 치료지향적 처우수단을 '치료보호사건'이라는 새로운 보호처분절차로 통합하자는 것이다. 또 법원 조직 차원에서는 독자적인 관청을 신설할 필요 없이 제1심 형사재판부 중 치료보호사건 전담재판부를 지정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봤다. 사법작용 차원에서는 근거 법률 제정과 함께 치료명령·치료보호 관련 법령의 통폐합, 형법상 집행유예 제도와 형사소송법 공판절차의 변경이 뒤따라야 한다고 밝혔다.
조 부장판사는 현행 제도의 공백을 근거로 들었다. 치료명령은 재판 과정이 아닌 재판의 결과로써 내리는 종국처분이어서 '선(先)치료, 후(後)종국처분'이라는 치료적 사법의 구조를 구현하지 못하고, 선고한 재판부가 개별 사건의 집행을 보고받거나 감독할 장치도 없다는 것이다. 검사가 부과하는 치료조건부 기소유예에 대해서는 "신체의 자유 등 침익적 요소가 강한 처우임에도 절차 전반에 걸쳐 사법적 통제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대상자 선별과 처분 결정, 집행 과정에서 사법절차를 거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 부장판사가 제시한 국회입법조사처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3년까지 4년 동안 검찰이 의뢰한 마약류 중독 입원치료는 3명, 외래는 53명에 그쳤다. 암수범죄를 약 30배로 잡으면 전체 마약류 중독자의 1% 정도만이 치료를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 "지향점엔 공감, 다만 법원 역할은 한정해야"
토론자로 나선 이대희 서울중앙지검 강력범죄수사부 검사(변호사시험 7회)는 현행 조건부 기소유예 제도에 대한 평가를 달리했다. 검찰이 2024년 4월 3가지 조건부 기소유예를 '사법-치료-재활 연계모델'로 단일화한 뒤 이 모델에 따른 기소유예는 2024년 148명, 2025년 190명, 2026년 5월까지 102명으로 늘었다는 것이다. 전체 조건부 기소유예 중 비율도 11.3%에서 29.9%로 높아졌고, 치료보호기관으로는 전국 31개 의료기관·339병상이 지정돼 있다고 밝혔다.
이 검사는 조건부 기소유예의 법적 기반이 취약하다는 지적에 "제도 개선의 필요성에 관한 지적으로는 타당하지만 현행 제도의 성격을 다소 단순화하는 측면이 있다"고 반박했다. 기소편의주의에 기초한 검사의 기소재량에 근거해 확정력이 없고, 대검예규는 그 행사 기준을 구체화한 실무 규범이라는 것이다. 법원 중심 모델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법원에서 보호처분이나 보호관찰 처분을 받은 자들의 재범률이 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이나 형사처벌을 받은 자들의 재범률보다 낮다는 유의미한 통계는 확인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이 검사는 "발제자가 제안한 한국형 약물법원 모델은 형사사법의 담장을 낮추어 보건의료·사회복지와 서로 넘나들 수 있게 하는 것으로서, 그 지향점에 적극 공감한다"며 "제도 도입의 속도보다 설계의 정밀함이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또 다른 토론자인 안정빈 경남대 법학과 부교수(법학박사(서울대))는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과 판사가 치료과정을 계속 감독해야 한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라며 법원의 역할 범위에 의문을 제기했다. 법원은 진입 여부와 전체 기간, 중대한 자유제한, 이의제기를 맡고 진단과 치료는 의료진, 준수사항 감독은 보호관찰기관이 나누어 맡는 '제한적 사법심사형' 설계를 대안으로 내놨다. 벌금이나 짧은 보호관찰로 끝날 사건이 수년간의 출석·검사·생활제한으로 이어지고 중간에 실패하면 원래 예상되던 형까지 받게 되는 '이중부담'도 경계했다. 다만 그 역시 "찬성과 반대로 단순히 나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법원이 어느 정도까지 맡을 것인지에서 생각이 갈린다"고 했다.
조 부장판사는 제도 설계 원칙으로 △대상자는 치료의 객체가 아닌 회복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점 △치료 기회 제공은 당사자의 동의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 △어느 경우에도 국가형벌권의 약화를 초래해서는 안 된다는 점 등 8가지를 제시했다. 그는 "처음부터 입법론을 논하기보다 현행법 아래에서 가능한 치료지향적인 실무운영을 확대하면서 그 효과성을 추적해나가는 것이 마땅한 순서"라며 "치료만능주의, 사법편의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학술대회에서 축사를 한 노경필 대법원 법원행정처장·대법관(사법연수원 23기)은 "사회법원·후견법원·약물법원과 같이 사회적 약자를 포용하고 국민의 삶과 밀접한 법률분쟁들을 신속하게 해결하기 위한 전문법원제도 논의는,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더욱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신뢰받는 사법부를 만들어 가는 데 있어 중요한 시사점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법행정을 총괄하는 법원행정처장이 공개 석상에서 약물법원을 전문법원 논의 대상으로 거론한 것이다.
이날 학술대회는 대법관과 중대범죄수사청장 등의 후보 추천권을 지닌 한국법학교수회가 '사법개혁'의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열었다. 재판제도개혁·법원제도개혁·법교육개혁 등 3개 세션으로 나뉘어 진행됐고, 약물법원제도는 법원제도개혁 세션에서 사회법원·해사법원·후견법원과 함께 다뤄졌다.
[email protected] 김동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