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과학

공기 속 이산화탄소를 직접 잡아내는 마법의 알갱이 [언박싱 연구실]

김만기 기자
파이낸셜뉴스

<58> 고려대 기계공학부 강용태 교수팀
실리카·탄소나노튜브 결합해 내구성·생산성 동시 확보
자가조립 나노 신소재로 접착제 없이 대량생산 길 터
하루 1kg당 최대 317g 포집… 실제 설비 적용 가속화
40회 이상 재사용 거쳐도 성능 회복… 직접공기포집 상용화 '성큼'

택배 상자를 열 때의 설렘, 기억하시나요? 대학 연구실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삶을 바꿀 놀라운 발견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다만 '논문'이라는 두꺼운 포장지에 쌓여있을 뿐이죠. '언박싱 연구실'에서는 복잡한 수식과 이론 대신, 여러분이 알고 싶은 알맹이만 쏙 골라 담겠습니다. 자, 그럼 상자를 열어볼까요? 오늘 언박싱할 주인공은 바로 이 연구입니다.

고려대 연구팀이 개발한 펠렛형 흡착제가 영하의 추운 환경에서도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선택적으로 포집하고 열을 통해 분리·재생하는 원리를 형상화한 개념도. 탄소나노튜브와 실리카가 자가조립된 다공성 알갱이 내부로 탄소 분자가 스며들어 포집된 뒤 직접공기포집(DAC) 설비로 회수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래픽=제미나이 생성)
고려대 연구팀이 개발한 펠렛형 흡착제가 영하의 추운 환경에서도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선택적으로 포집하고 열을 통해 분리·재생하는 원리를 형상화한 개념도. 탄소나노튜브와 실리카가 자가조립된 다공성 알갱이 내부로 탄소 분자가 스며들어 포집된 뒤 직접공기포집(DAC) 설비로 회수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래픽=제미나이 생성)

[파이낸셜뉴스] 고려대 기계공학부 강용태 교수팀(제1저자 서영환 박사과정)이 영하 10도에서 영상 20도에 이르는 폭넓은 기온 환경에서도 공기 중 극미량의 이산화탄소를 효과적으로 잡아내는 고체 알갱이(펠렛) 흡착제를 개발했다. 별도의 접착제 없이 스스로 얽히는 나노 신소재로 대량생산이 쉬울 뿐만 아니라, 수십 회 이상의 흡착과 재생을 거쳐도 소재 손상 없이 성능을 다시 되살릴 수 있어 실제 대기 정화 장비 적용에 한 걸음 다가섰다.

■가루 날림 없앤 '단단한 알갱이', 공기 중 미량 탄소 콕 집어낸다

지구온난화를 늦추기 위해서는 공장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농도 배출가스를 막는 것뿐만 아니라, 이미 대기 중에 널리 퍼진 이산화탄소까지 직접 걷어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숨 쉬는 일반 공기 속 이산화탄소 농도는 약 0.04%(400ppm) 수준으로 매우 희박해 이를 콕 집어 골라내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기존에 쓰이던 가루 형태의 흡착 소재는 장치 안에서 바람에 날아가 없어지거나 공기 흐름을 막아 설비 효율을 떨어뜨리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번에 개발된 펠렛형 흡착제는 단단한 알갱이 모양을 갖춰 장비에 안정적으로 채워 넣을 수 있어, 사계절 기후 변화가 뚜렷하거나 추운 지역에서도 공기 중 탄소를 직접 빨아들이는 '직접공기포집(DAC)' 설비의 핵심 소재로 쓰일 수 있다.

■접착제 없이 스스로 엉겨 붙는 '자가조립'… 2.2mm 최적 크기 찾아

연구팀은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실리카 나노입자와 탄소나노튜브(CNT), 그리고 아민 화합물을 결합하는 방식을 고안했다. 탄소를 끌어당기는 자석 역할을 하는 아민을 실리카 입자에 고정하고, 여기에 탄소나노튜브를 섞어 구조적 뼈대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탄소나노튜브와 실리카가 스스로 얽혀 단단한 구조를 이루는 '자가조립' 현상이 일어났다. 덕분에 화학 접착제를 따로 넣지 않고도 반죽을 틀에 부어 굳히는 것만으로 알갱이 형태를 만들 수 있어 대량생산 공정을 크게 단순화했다. 연구팀은 탄소가 알갱이 중심부까지 원활하게 스며들 수 있도록 분석을 거쳐, 흡착 성능이 가장 뛰어난 쌀알 크기 수준인 약 2.2mm의 최적 크기를 찾아냈다.

■영하 10도 추위 견디고, 고온 처리로 성능 99% 회복

연구팀은 개발한 펠렛을 실제 포집 장치와 유사한 시험 설비에 넣고 영하 10도부터 영상 20도, 다양한 습도 조건에서 성능을 검증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아민 성분이 끈적끈적해져 탄소 흡수 속도가 느려지지만, 공기 중 습도가 30~60% 수준인 환경에서는 수분이 탄소의 이동을 도와 저온에서의 성능 저하 현상이 많이 줄어드는 것을 확인했다.

장기 내구성 시험에서도 유의미한 성과가 나타났다. 40회 이상 반복 사이클에서 흡착량이 다소 줄었지만, 연구팀이 별도로 고온(100도) 재생 처리를 해본 결과 성능이 초기 대비 99% 수준(1.28 mmol/g)까지 되살아났다. 이는 성능 저하가 소재 자체의 손상이 아니라 평소 재생 조건(80도)이 불완전했기 때문임을 보여준다.

또한 시스템 운전 과정을 정밀 분석한 결과, 흡착제 1kg당 하루 최대 약 317g(7.21몰)의 이산화탄소를 포집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체 운전에 들어가는 에너지의 90%가 흡착제를 데워 탄소를 떼어내는 '열에너지'에 집중되어 있어, 향후 열 소비만 줄이면 효율을 극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중요한 단서도 찾아냈다.

강용태 교수는 "이번 연구는 성능이 좋은 가루 소재를 만드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실제 장치에 적용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고 저온·습도 환경에서 운전한 뒤 에너지 사용까지 연결해 평가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 재생에 필요한 열을 줄이고 장기 실증을 확대해 다양한 기후에서 활용 가능한 직접공기포집 기술로 발전시키겠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 성과는 응용화학 분야 국제 학술지 '에너지 화학 저널(Journal of Energy Chemistry)'에 수록됐다.

[email protected] 김만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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