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각

[강남視角] 전쟁에 익숙해지는 세계

파이낸셜뉴스
박신영 국제부장
박신영 국제부장

처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의 충격을 기억한다. 2022년 2월이었다. 21세기 유럽에서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침공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전쟁은 역사책 속에서나 존재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그날의 뉴스는 현실이라기보다 시대착오적인 한 장면처럼 다가왔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더 이상 전쟁을 '낯설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크라이나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특별한 뉴스가 되진 않는다. 어느 도시가 공격받았는지, 미사일이 몇 발 발사됐는지, 사상자가 얼마나 발생했는지와 같은 사실이 미국의 금리인상 여부, 비트코인 가격 상승과 같은 뉴스와 나란히 놓인다.

중동에서도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처음에는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지만 지금은 매일 접하는 국제뉴스의 일부가 됐다.

중국은 대만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계속하고 있다. 만약 어느 날 중국이 실제로 대만을 침공한다면 세계는 분명 충격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 충격은 과거보다 훨씬 빨리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미 우리는 전쟁에 익숙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변화는 전쟁 자체보다 전쟁에 무뎌지는 것인지 모른다.

요즘 국제뉴스에는 '전례가 없다' '이례적이다' '초유의 사태'라는 말이 유난히 자주 등장한다. 문제는 이례적인 일이 너무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의 예외가 내일의 선례가 되고 선례가 새로운 관행이 된다. 그렇게 어제까지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오늘의 현실이 된다.

트럼프, 푸틴, 시진핑과 같은 권위주의적인 지도자들이 국제정치의 중심에 서면서 기존의 규칙과 관례가 흔들리고 있다. 규칙보다 힘이, 제도보다 거래가, 오랜 관계보다 지도자의 판단이 더 중요해지는 순간이 늘어나고 있다.

전쟁은 반드시 전쟁을 원하는 지도자 한 사람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서로가 상대방의 의도를 오판하고, 동맹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기존의 억제장치가 작동할 것이라는 확신을 잃어버릴 때에 전쟁의 문은 열린다.

그리고 그 변화는 한반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과의 대화를 위해 한미 연합훈련 규모를 줄이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올해 '을지 자유의 방패(UFS)'는 당초 11일에서 5일로 단축됐고, 일부 야외 기동훈련도 축소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좋은 관계를 강조하며 다시 만날 의향도 밝혔다.

대화와 긴장 완화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으려면 대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한미 연합훈련은 단순한 군사력 행사가 아니라 북한의 공격을 억제하고 동맹의 결속을 확인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훈련 축소가 곧 전쟁 가능성을 높인다고 단정할 순 없지만,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겨졌던 억제의 방식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는 신호일 수는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것인가'가 아니다.

만약 어느 날 전쟁이 정말 시작된다면 우리는 그것을 얼마나 오랫동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까.

처음에는 충격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며칠, 몇 주, 몇 달이 지나면 우크라이나처럼 미사일 발사 횟수를 확인하고, 전선의 변화를 살펴보고, 사상자 숫자를 세면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전쟁은 사람을 죽인다. 전쟁이 반복되면 또 하나의 것을 죽인다. 바로 전쟁이라는 야만에 대한 우리의 감각이다.

처음에는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던 것이 어느 순간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이 되고, 결국엔 '오늘의 국제뉴스' 가운데 하나가 된다.

그렇게 전쟁은 일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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