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범죄는 없다"...일본 밀항한 '1395억 사기범' 끝까지 쫓은 유명근 경사 [넘버112]
유명근 수서서 지능범죄수사1팀 경사 인터뷰
골프장 회원권·토큰 사기 등 굵직한 사건 수사
"완전범죄 없어...작은 단서 끝까지 파고들어야"
"중요 사건 해결은 동료 수사관들과의 협업 결과"
범죄자엔 필벌·피해자엔 친절한 '호시우보' 지향
[파이낸셜뉴스] "세상에 완전범죄는 없습니다. 범행의 단서는 반드시 발견된다는 생각으로 수사합니다."
유명근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2과 지능범죄수사1팀 경사는 26일 "수많은 계좌와 진술, 자료 속 작은 단서라도 끝까지 파고들면 결국 범죄와 연결되는 패턴이 드러난다"며 이같이 말했다.
2015년 경찰에 입직한 유 경사는 지구대와 기동대를 거쳐 2017년 수서경찰서로 전입했다. 이후 추적수사팀과 경제범죄수사팀, 집중수사팀을 거쳐 지난해 상반기부터 지능범죄수사1팀에서 근무하고 있다. 골프장 회원권·가상자산 판매·국가자금 증식 명목 사기부터 대기업 총수 횡령 사건까지 굵직한 사건을 맡아온 그는 지명수배자를 추적해 검거하거나 난도 높은 사건의 실체를 밝혀낼 때마다 '수사가 적성에 맞는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회상했다.
유 경사의 집요한 추적이 빛을 발한 대표적인 사례는 피해금 1395억원 규모의 유사수신 사건이다. 경찰은 2013년부터 피의자를 추적했지만 행방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유 경사는 피해 규모와 피해자가 다수인 점 등을 고려해 2018년 피의자를 경찰청 중요피의자 공개수배 전단에 올렸고, 같은 해 전단을 본 제보자로부터 피의자의 일본 체류 정보를 확보하면서 수사는 전환점을 맞았다.
경찰은 카카오톡 계정을 추적해 피의자의 일본 밀항 단서를 확보한 뒤 인터폴 적색수배와 여권 무효화 조치를 취하고 경찰청 국제공조 부서·일본 인터폴 등과 공조해 피의자를 검거했다. 밀항 사실이 확인되면서 공소시효 정지 조치도 가능해졌다. 자칫 공소시효 도과로 종결될 수 있었던 사건이 장기간의 추적과 기관 간 공조 끝에 피의자 검거로 이어진 셈이다.
다른 사건에서도 유 경사는 단서를 따라 범행의 배후까지 파고들었다. 골프장 회원권 사기 사건에서는 여러 팀에 배당된 사건을 병합해 바지사장과 중간책, 실제 행위자에 이어 배후에서 범행을 지시한 피의자까지 특정해 구속 송치했다. 토큰 매매 사기 사건에서도 판매업체 주범을 특정해 구속하고 범죄수익 전환책과 대포통장 배포자, 중간책·상선까지 추적했다.
유 경사는 중요 사건을 해결하는 데 동료 수사관들과의 협업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중요 사건도 담당 수사관 혼자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며 "외부에 드러나지 않는 여러 수사관의 노력이 모여 결과가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실제 차명계좌 유통책 검거 당시에는 동료 수사관 약 15명이 휴무일에도 자발적으로 수사에 참여했다. 유 경사는 이들과 함께 대포통장 인출책과 중간관리자를 긴급체포하고 사건의 전모를 파악한 뒤 상선까지 추적해 송치했다. 동료들과의 협업은 자신의 수사 경험을 나누는 방식으로도 이어졌다. 유 경사는 다액의 인터넷 사기 사건 피의자를 추적하던 다른 수사관에게 추적 기법을 공유하고 직접 검거 과정에도 참여했다. 당시 현장에서 피의자의 마약 제조·유통 정황과 추가 공범까지 확인되면서 수사는 마약수사팀과의 공조로 확대됐다.
협업이 중요해지는 데는 갈수록 교묘해지는 지능범죄 수법도 한몫한다. 주식과 가상자산, 부동산 공매 등 새로운 투자 수단이 주목받을 때마다 이를 악용한 범죄가 뒤따르고, 일부 피의자는 향후 적용될 법률까지 미리 파악해 대비책을 마련하기도 한다는 게 유 경사의 설명이다. 다만 투자 대상이 달라져도 사기 수법에는 공통점이 있다. 처음 소액의 이익을 제공해 신뢰를 얻은 뒤 점차 투자 규모를 키우도록 유도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유 경사는 "투자하면 큰 이익을 제공하겠다는 이야기는 99% 사기라고 생각하고 의심해야 한다"며 "정말 큰 이익이 난다면 왜 아무 인연도 없는 사람에게 투자를 권하겠느냐고 생각해 보면 된다"고 당부했다.
지능범죄 수사에서는 신속성과 적법절차 사이의 균형도 중요하다. 주요 증거가 빠르게 사라지는 만큼 신속한 확보가 필요하지만, 절차를 소홀히 하면 이후 공판 과정에서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 경사는 "수사와 인권 보호는 항상 맞물려 있다"며 "신속하면서도 내실 있게 수사하되 적법절차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유 경사가 지향하는 수사관의 모습은 '호시우보(虎視牛步)'다. 호랑이처럼 예리하게 상황을 바라보되 소처럼 서두르지 않고 꾸준히 나아간다는 뜻이다. 그는 "범죄자에게는 반드시 책임을 묻고, 피해자와 동료에게는 친절한 경찰관이고 싶다"며 "상황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갖추면서도 서두르지 않고 꾸준히 최선을 다하는 수사관으로 기억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email protected] 김예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