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기행' 이정은 "엄마가 보기 편한 작품 골랐지만…개봉은 딸들 덕분"[인터뷰]
공효진, 박소담, 이연과 모녀 호흡
[파이낸셜뉴스] "그동안엔 '우리 엄마가 보기에 편한 작품인가'를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이제는 제가 도덕적으로 닫아놓았던 이야기에도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배우 이정은이 영화 '경주기행'을 계기로 안정적이고 보수적이었던 작품 선택의 기준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이정은은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나이가 들수록 관객에게도 작품을 선별해 받아들이는 힘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변화를 설명했다. 이어 "나 역시 나만의 도덕적 틀을 벗어나 다른 역할을 해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고 부연했다.
그 변화의 출발점에 '경주기행'의 옥실이 있다. 영화는 8년 전 수학여행에서 막내딸 경주를 잃은 옥실과 세 딸 장주(공효진), 영주(박소담), 동주(이연)가 범인 백상현(변요한)에게 직접 복수하기 위해 경주로 떠나는 이야기를 그린다.
벌레 한 마리 죽여본 적 없을 것 같은 평범한 엄마가 딸을 죽인 범인을 처벌하기 위해 납치와 살인을 계획한다. 지금까지 이정은이 주로 맡아온 친근하고 순박한 얼굴과 다르다.
김 감독은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이정은을 옥실로 염두에 뒀다. 이정은은 캐스팅 이유를 묻자 "감독이 계속 자기 엄마와 닮았다고 했다"며 "우리 엄마 같은 얼굴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어머니 같은 몸매 덕분이 아니겠느냐"고 웃었다.
이정은은 이날 김 감독이 옥실의 내면을 설명하던 당시를 떠올렸다. 김 감독은 이정은에게 "옥실이 마음속에 불이 있잖아요. 불이 있잖아요, 선배님"이라고 거듭 강조했다고 한다.
이정은은 "그 말을 하는 감독 자신이 옥실 같았다"며 "감독의 끓는 마음이 옥실의 뜨거움만큼 절박하고 열정적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감독과 함께라면 어떤 길을 가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 열정과 집념 때문에 영화가 마침내 개봉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목표를 정하면 좀처럼 지치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사람이었다. 이정은은 "영화를 찍지 않을 때도 소설을 쓰는 사람이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얼마나 많겠느냐"며 "앞으로가 굉장히 기대되는 감독"이라고 강조했다.
'경주기행'은 이정은과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모녀 사이를 연기한 공효진과 영화 '기생충'에서 호흡한 박소담, 그리고 이연이 차례로 합류하면서 영화의 규모가 커졌다.
이정은은 "영화가 개봉하게 된 것은 우리 딸들 덕분인 것 같다"며 "예상보다 좋은 배우들이 붙으면서 프로젝트가 커졌다"고 말했다.
공효진과 박소담은 출연 제안을 받은 뒤 이정은에게 먼저 연락했다. 그는 "절대로 나 때문에 결정하지 말고 시나리오를 기준으로 판단하라고 했다"고 돌이켰다.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 함께 출연한 변요한의 합류는 뜻밖의 경로로 성사됐다. 제작사 대표가 변요한에게 생일 축하 문자를 보내다 이정은이 출연하는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고 알렸고, 변요한이 먼저 관심을 보였다. 그는 당시 변요한이 노개런티로 참여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이정은은 "네 여자와 한 남자의 대결 구도에서 힘의 균형을 만들려면 절대적인 밀도를 지닌 배우가 필요했다"며 "변요한이니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변요한에 대해 "계속 다른 얼굴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역할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놀려는 욕구가 크고, 작품마다 결국 그것을 해내는 게 신기하다"고 칭찬했다.
옥실의 복수는 통쾌한 응징보다 한 평범한 사람이 도덕적 경계를 넘어서는 과정에 가깝다.
이정은은 "실행에 집중하려 했지만, 촬영하는 동안에도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계속 들었다"고 말했다.
영화 후반부, 세 딸과 함께하던 왁자지껄한 소동이 가라앉고 옥실 홀로 복수의 무게를 감당하는 시간이 펼쳐진다.
그는 "막상 딸들의 장면이 끝나고 홀로 산에 오르는데 '우리가 여기에 오기 위해 달려왔나' 하는 묘한 고요함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촬영지 경주는 옥실의 복수에 기묘한 비장미를 더했다. 이정은은 "경주는 수학여행지이자 관광지인데, 무덤이 세상에 이렇게 많을 수 있나 싶을 만큼 신기한 도시였다"며 "무덤이 가득한 도시에서 '이 사람은 무덤조차 가질 수 없는 사람이 아니냐'고 말하는 듯한 아이러니가 있었다"고 해석했다.
이정은은 '경주기행'을 시작으로 배우로서 더 과감한 선택을 이어가고자 한다.
그는 "이제는 돈이 되지 않더라도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영화를 하고 싶다"며 "영화가 계속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가 주는 밀도감과 작업 환경을 좋아한다"며 "안정적인 인물을 성실하게 연기해왔으니 앞으로는 조금 더 특별하고 도전적인 역할에도 힘을 보태고 싶다"며 기존과 다른 행보를 꿈꿨다.
[email protected] 신진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