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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온 장기화 속 제주 연산호… 서귀포 문섬·범섬서 '주저앉음' 확산

정용복 기자
파이낸셜뉴스

시민과학자 57명 15차례 조사
범섬 꽃동산 조사지 50% 이상
문섬도 조사구역 절반 이상 확인
보호종 3종까지 이상현상 확산
정확한 원인 규명·정밀조사 시급

21일 제주 서귀포시 문섬 해역에서 큰수지맨드라미 여러 개체가 바위에서 떨어져 바닥에 쌓이거나 축 늘어져 있다.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은 문섬과 범섬 일부 조사구역의 절반 이상에서 연산호 ‘주저앉음’ 현상을 확인했다. /사진=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제공
21일 제주 서귀포시 문섬 해역에서 큰수지맨드라미 여러 개체가 바위에서 떨어져 바닥에 쌓이거나 축 늘어져 있다.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은 문섬과 범섬 일부 조사구역의 절반 이상에서 연산호 ‘주저앉음’ 현상을 확인했다. /사진=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제공

【파이낸셜뉴스 제주=정용복 기자】 한 달 전까지 건강했던 제주 서귀포 바닷속 연산호가 몸체를 지탱하지 못하고 처지거나 바닥으로 떨어지는 이상현상이 문섬과 범섬 일대로 빠르게 번지고 있다. 일부 조사 지점에서는 면적의 절반 이상에서 '주저앉음' 현상이 확인돼 국가 차원의 정밀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에 따르면 지난 7월말부터 서귀포 문섬과 범섬 일대에서 7일간 15차례 수중 조사를 벌인 결과 여러 종류의 연산호에서 '주저앉음 현상'이 대규모로 확인됐다. 조사에는 활동가와 산호탐사대원 등 시민과학자 57명이 참여했다.

주저앉음은 단단한 골격이 없는 연산호가 몸의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처지거나 수축한 뒤 붕괴하는 현상을 말한다. 연산호는 몸속 수분 압력을 이용해 형태를 유지하는데 환경 스트레스가 커지면 몸체가 축 늘어지거나 바위에 붙어 있는 밑동인 기부가 약해져 떨어질 수 있다.

변화는 한 달 사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파란이 지난 7월23일 범섬과 28일 문섬을 조사했을 당시에는 문섬 일부에서 자색수지맨드라미의 주저앉음이 확인된 것을 제외하면 뚜렷한 이상현상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18일과 20일 범섬, 21일과 22일 문섬을 다시 조사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20일 제주 서귀포시 범섬 새끼섬 직벽 수심 18m에서 흰수지맨드라미가 바위에 붙은 기부가 약해지며 축 늘어져 있다. 해양보호생물이자 멸종위기야생생물 Ⅱ급인 흰수지맨드라미의 주저앉음 현상이 제주에서 올해 처음 확인됐다. /사진=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제공
20일 제주 서귀포시 범섬 새끼섬 직벽 수심 18m에서 흰수지맨드라미가 바위에 붙은 기부가 약해지며 축 늘어져 있다. 해양보호생물이자 멸종위기야생생물 Ⅱ급인 흰수지맨드라미의 주저앉음 현상이 제주에서 올해 처음 확인됐다. /사진=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제공

범섬 꽃동산에서는 조사 지점 면적의 50% 이상에서 큰수지맨드라미와 밤수지맨드라미, 분홍바다맨드라미의 주저앉음이 확인됐다. 한 달 전 건강했던 밤수지맨드라미는 조사 지점에서 거의 모든 개체가 늘어지거나 바닥에서 떨어진 상태로 관찰됐다. 분홍바다맨드라미도 바닥에 붙어 형태가 무너진 채 확인됐다.

범섬 새끼섬 수심 15~25m의 수중 직벽에서도 여러 연산호류가 이상현상을 보였다. 수심 17m 안팎에서는 국내 미기록 연산호류가 집단으로 주저앉았고 수지맨드라미류에서도 피해가 확인됐다.

파란은 "가시수지맨드라미와 흰수지맨드라미의 주저앉음 현상도 제주에서 처음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문섬의 상황도 비슷했다. 만남의 광장 일대 수심 10~25m 조사구역의 50% 이상에서 큰수지맨드라미와 밤수지맨드라미, 분홍바다맨드라미, 자색수지맨드라미 등이 처지거나 기부가 약해져 바위에서 떨어진 상태로 발견됐다.

이 가운데 밤수지맨드라미와 자색수지맨드라미, 흰수지맨드라미는 해양수산부 지정 해양보호생물이면서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야생생물 Ⅱ급이다. 문섬과 범섬 일대는 천연기념물 제421호 문섬·범섬천연보호구역과 제442호 제주연안연산호군락에 포함된다.

연산호만 이상 신호를 보내는 것도 아니다. 범섬 본섬 앞 수심 7~10m에서는 빛단풍돌산호가 하얗게 변하는 백화현상도 다수 관찰됐다. 산호 백화는 고수온 등 환경 스트레스로 산호와 함께 살아가는 공생조류가 빠져나가면서 색을 잃는 현상이다.

제주 서귀포시 범섬 본섬 앞 해역에서 빛단풍돌산호 일부가 하얗게 변하는 백화현상을 보이고 있다. 산호 백화는 고수온 등 환경 스트레스로 산호와 공생하는 조류가 빠져나가면서 색을 잃는 현상이다. /사진=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제공
제주 서귀포시 범섬 본섬 앞 해역에서 빛단풍돌산호 일부가 하얗게 변하는 백화현상을 보이고 있다. 산호 백화는 고수온 등 환경 스트레스로 산호와 공생하는 조류가 빠져나가면서 색을 잃는 현상이다. /사진=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제공

원인은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연구진은 올해 국제학술지 'Scientific Reports'에 발표한 연구에서 2024년 제주 연산호 주저앉음이 장기간 이어진 높은 수온과 낮은 염분 환경과 동시에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고수온과 저염분이 함께 연산호에 생리적 부담을 줬을 가능성을 제시한 연구다.

올해 제주 연안에서도 고수온 상황이 장기간 이어지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은 지난 7월21일 제주 연안 등을 포함한 8개 해역에 고수온 주의보를 발표했고, 해양수산부는 7월 30일 고수온 위기경보를 '심각Ⅰ' 단계로 격상했다.

다만 이번 문섬·범섬의 이상현상을 고수온만으로 설명할 근거는 아직 부족하다. 저염분수와 미세퇴적물, 감염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어 수온·염분 변화와 산호 조직 상태 등을 함께 살피는 과학적 조사가 필요하다.

파란은 "2024년보다 올해 주저앉음 현상이 더 넓은 범위와 다양한 연산호류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국가유산청과 해양수산부, 제주특별자치도가 제주연안연산호군락 주요 지점까지 조사 범위를 넓히고 원인 규명을 위한 공동 조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번 조사는 문섬과 범섬 일부 지점에 한정돼 제주 연안 전체의 피해 규모를 판단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정확한 확산 범위와 원인을 가리기 위한 관계 기관의 정밀조사가 시급하다.

[email protected] 정용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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