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세대 정비사업 자치구 이양'에 대한 도시학자의 경고[각도기]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 페이스북서 비판
[파이낸셜뉴스] 정책을 평가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 있다. 그 정책의 핵심 숫자가 어디서 나왔는지 묻는 것이다. 당정이 지난 23일 내놓은 '500가구 이하 재개발·재건축 인허가 권한 자치구 이양'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특히 500이라는 숫자의 합리적인 근거와 자치구가 그런 업무를 소화할 역량을 현재 갖추고 있느냐는 질문이 이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현 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일인입니다"라고 밝히면서 이 정책에 대한 의견을 내놨다. 마 교수는 "책상에서 만드는 정책의 끝판왕"이라고 단정했다. 다소 거친 비판처럼 보이지만 마 교수가 든 근거는 상당 부분 실제 법령으로 확인된다.
마 교수는 아파트 400가구를 지으려면 도시계획, 건축, 교통, 경관, 환경, 교육, 재해 분야가 맞물려야 한다면서 이 체계를 25개 구청에 만드는 게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는 사업시행계획 통합심의 대상을 8가지로 열거한다. 건축물의 건축과 특별건축구역 지정, 경관법에 따른 경관 심의, 교육환경평가, 도시·군관리계획, 교통영향평가, 소방 성능위주설계 평가, 재해영향평가, 환경영향평가다. 마 교수가 꼽은 7개보다 오히려 실제 법이 요구하는 쪽이 더 많다.
마 교수는 또 이런 작업을 수행할 전문가들을 구하는 게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에는 통합심의위원회를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포함해 24명 이상 150명 이하로 구성하도록 하고, 참여 위원회별 최소 인원까지 못 박았다. 25개 자치구가 전부 따로 위원회를 꾸린다면 산술적으로 600명 규모의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위원들은 중복 위촉이 가능해 실제 필요 인원은 이보다 적을 수 있지만 마 교수는 이런 부분을 지적한 것이다.
특히 그가 우려한 것은 그 자리를 25개 만들 수 있느냐다. 마 교수는 "서울시도 전문가 모으는 데 허덕허덕하고, 해당 전문가들도 생업을 포기하고 각종 위원회에 일주일에 2-3번씩 불려가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 어려움을 뚫고 실제로 시행하게 된다면 25개 구 정비사업 기준이 서로 달라지고, 서울 내 정비사업은 정말 엉망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마 교수는 서울특별시 도시계획위원회 외부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실제로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도시건축공동위원회, 건축위원회는 모두 월 2회가 원칙이다. 구조안전·굴토·경관 등 별도 전문위원회는 필요할 때 개최되고 정비사업 통합심의위원회 역시 월 2회 열린다.
더 강하게 경고한 것은 쪼개기다. 그는 "400세대 다섯 군데 더 생기면, 2000세대 훌쩍 넘어갑니다"라며 "그런데 이 쪼개기 때문에 도로도, 공원도, 학교도 제대로 확보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뉴타운 사업과 관련해 서울연구원이 2008년 발간한 '서울시 뉴타운사업의 추진실태와 개선과제' 보고서를 보면 기존 주거지 정비가 민간 위주의 소규모 개별 사업으로 진행되면서 인접 지역과 연계한 개발과 기반시설 확보 등에 한계가 있다는 문제의식이 뉴타운 사업 도입의 배경으로 제시됐다.
18년 전 제기됐던 문제의식은 마 교수의 현재 주장과 맞닿아 있다. 당정이 이번에 내놓은 정책이 당위성을 가지려면 과거 소규모 개별 정비에서 제기됐던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에 대한 설명도 필요하다. 마 교수는 "한 번 해봤다가 잘 안 돌아간다고 되돌리기도 힘듭니다"라고 덧붙였다.
권한 이양을 위해 검토해야 할 법령도 도시정비법 하나에 그치지 않는다. 통합심의 대상인 교통영향평가와 환경영향평가 등은 각각 개별법과 서울시 조례 등에 따라 운영된다. 실제 자치구가 어느 범위까지 심의를 맡게 될지는 향후 법 개정 내용과 관련 법령·조례의 정비 범위를 함께 따져봐야 한다.
추진하는 쪽의 논리는 속도다. 여권은 소규모 사업 심의가 서울시로 몰려 병목이 생긴다고 본다. 반면 서울시 계산으로는 정비사업 관련 인허가 권한 9개 가운데 7개는 이미 자치구가 갖고 있고 서울시가 맡은 것은 구역 지정을 위한 심의와 사업시행을 위한 통합심의 등 2개다.
서울시는 두 심의에 걸리는 기간이 약 4개월로 전체 정비사업 기간 약 12년의 2.7% 수준이라고 주장한다. 500가구 이하 정비사업 193곳 가운데 구역 지정 단계에 있는 곳도 31곳, 16%라는 게 서울시 설명이다. 서울시 자체 산출이라는 한계는 있다. 그러나 이에 맞서는 정부·여당의 구체적인 산출 근거는 공개적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병목이 어디에서 얼마나 발생하는지, 권한 이양으로 기간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수치가 나와야 정책이 설득력을 가질수 있다.
물론 마 교수의 주장이 전부 검증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구청엔 애초에 그런 통합 행정을 할 시스템 자체가 없습니다"라고 주장했지만 자치구에도 도시계획위원회 등 관련 위원회가 있고 외부 전문가를 위촉해 회의를 개최한다. 전문가 풀이 전혀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현재 서울시가 운영하는 정비사업 통합심의와 같은 체계를 자치구가 독자적으로 운영할 역량을 갖췄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email protected] 안승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