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완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원장 "제주를 '이론 생산지'로 만들겠다" [인터뷰]
제주대 첫 HK3.0 7년·48억원 연구 총괄
난민서 이주·언어·기후위기로 확장
쿰다리빙랩으로 지역현안 정책 연결
아시아·태평양 군도 연구허브 구축
"7년 뒤 세계 연구거점 초석 놓겠다"
【파이낸셜뉴스 제주=정용복 기자】 "제주를 연구해서 논문을 쓰는 데 그치지 않고, 제주에서 만든 이론과 실천 모델이 다른 지역에서도 쓰이게 하고 싶습니다."
김치완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장은 27일 파이낸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교육부·한국연구재단 '인문한국3.0(HK3.0) 지원사업' 선정 이후 7년간의 목표를 이렇게 압축했다.
그가 그리고 있는 탐라문화연구원의 미래는 제주를 설명하는 지역연구소에 머물지 않는다. 제주에서 발생하는 이주와 언어, 공동체, 생태와 사회갈등을 연구해 새로운 인문학 이론을 만들고 이를 정책과 지역사회에 적용한 뒤 아시아·태평양으로 확산하는 연구거점이다.
김치완 원장은 "제주가 과거 여러 분야에서 테스트필드로 불렸는데 인문학에서도 전국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모델 하나를 만들어냈으면 한다"며 "책상에서 논문을 생산하는 연구보다 제주에서 실제 작동하는 결과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원은 최근 제주대 개교 이래 처음으로 HK3.0 사업에 선정됐다. '지구적 아노미 시대 쿰다인문학: 군도의 삶과 잡종의 앎으로'를 아젠다로 앞으로 7년간 48억원의 국가 지원을 받는다.
김 원장의 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쿰다(Qumda)'다. 품다는 뜻의 제주방언에서 가져왔다.
출발점은 2018년 제주 예멘 난민 사태였다. 탐라문화연구원은 2019년부터 '쿰다로 푸는 제주 섬의 역사와 난민'을 연구하며 제주 사회에서 나타난 환대와 배제, 이주와 정착, 공존의 문제를 추적했다.
이번 HK3.0에서는 난민에 집중했던 연구축을 크게 넓힌다.
이주노동자와 정주민의 공존, 제주방언과 표준어·이주민 언어의 관계, 기후위기와 개발, 공동체 변화, 인간과 자연의 관계까지 연구 대상에 포함한다. 사회적 결속과 규범이 흔들리는 현대사회의 복합적 불안정을 '지구적 아노미'라는 틀로 분석하고 제주에서 대안을 찾겠다는 구상이다.
김 원장은 "처음에는 난민이라는 구체적인 문제에서 시작했지만 지금 제주에서는 외국인 이주노동자를 비롯해 훨씬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며 "쿰다인문학도 이런 현실에 맞춰 연구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설명했다.
제주를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진다.
기존 지역학이 중앙에서 만들어진 이론으로 지역을 분석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이번 연구에서는 제주에서 발견한 경험과 지식을 새로운 이론으로 만드는 데 무게를 둔다.
급격한 관광개발과 자본 유입, 이주민 증가, 제주방언 약화, 공동체 재편이 동시에 진행되는 제주는 현대사회의 변화와 갈등이 압축적으로 드러나는 공간이다. 탐라문화연구원은 제주를 지역의 특수한 사례를 분석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여기서 축적된 경험과 지식을 새로운 인문학 이론으로 발전시키는 '대안적 이론 생산의 거점'으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김 원장이 논문보다 거듭 강조한 것도 '현장'이었다. 그 중심에 쿰다리빙랩이 있다. 연구자가 지역문제를 분석해 결과를 내놓는 방식이 아니라 주민과 이주민, 연구자, 행정기관과 현장 실무자가 함께 문제를 찾고 해법을 실험하는 구조다.
김 원장은 "쿰다리빙랩은 이주 문제 하나만 다루려는 게 아니다"며 "우리가 연구하는 내용을 토대로 제주가 직면한 여러 현안의 해결 방법을 지역사회와 함께 만들어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탐라문화연구원은 HK3.0 사업단 산하 쿰다문화센터를 중심으로 리빙랩을 운영할 계획이다. 제주도 등 지방정부와 지역 기관을 연결해 연구성과가 실제 정책으로 이어지는 구조도 구축한다.
구체적으로 주민과 현안을 논의하고 정책 대안을 만드는 쿰다인문스튜디오, 시민 대상 쿰다아카데미, 이민자 교육과정, 연구자료를 공개하는 쿰다지식허브 등이 추진된다. 외국인 주민과 이민 정책 등 연구 결과가 지방정부의 정책과 예산으로 이어질 수 있는 환류구조도 포함한다.
김 원장은 "대학이 연구하면서 지역사회 사람들을 실제로 만나고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공간과 협력기관이 필요하다"며 지방정부와 공공기관, 지역사회 조직과의 협력을 확대하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HK3.0 선정까지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탐라문화연구원은 앞선 사업 도전에서 참여인력과 관련한 신청 요건 문제로 요건심사 단계에서 탈락했다.
김 원장은 "당시 준비한 아젠다를 버리지 않고 다시 키웠다"고 돌아봤다.
그 사이 기존 난민 연구에서 연구축을 확대하고 호주 퀸즈랜드대학교와 협력관계를 구축했다. 비판적섬연구컨소시엄과의 연결도 강화하면서 연구 범위를 제주와 난민에서 아시아·태평양 섬과 공존의 문제로 넓혔다.
올해는 지난 4월 연구계획서를 제출한 뒤 7월 14일 대면평가를 거쳤다. 약 한 달 뒤 예비선정 결과가 나온 데 이어 이의신청 기간을 거쳐 최종 선정까지 이어졌다.
김 원장은 이전 도전에서의 실패가 결과적으로 연구계획을 더 정교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국제화의 목표도 '외국 학술대회 몇 차례 개최'에 있지 않다. 탐라문화연구원은 일본 오사카공립대와 류큐대, 대만 중앙연구원과 국립중산대, 호주 퀸즈랜드대 등으로 이미 구축한 연구망을 연결해 제주를 아시아·태평양 '군도 연구'의 허브로 키울 계획이다.
제주4·3과 대만2·28, 재일제주인의 이동과 정착, 오키나와를 비롯한 섬의 식민 경험과 이주, 언어와 공동체 문제 등을 비교하며 제주학 자체의 연구범위를 국제적으로 넓힌다는 전략이다.
김 원장은 미국 하와이대 동서센터를 장기적인 참고 모델로 들었다.
그는 "아시아에서도, 미주에서도 연구자들이 찾아오는 곳처럼 탐라문화연구원도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제주에서 마음껏 연구하고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곳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7년 사업 하나로 세계적인 연구기관을 완성할 수는 없다"며 "적어도 그 방향으로 갈 수 있는 초석은 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사람을 남기는 일도 중요하다. 사업 초기 HK연구교수 6명이 연구를 수행하고 이 가운데 사회와 역사 분야 연구인력을 추가 공개채용해 장기 연구인력을 확보한다.
학부생부터 석·박사과정, 박사후연구자와 신진 연구자로 이어지는 후속세대 양성체계도 구축한다. '제주 쿰다 콘텐츠 리터러시' 과정과 '제주학의 재조명', 연구방법론 세미나, 연구 소모임, 국내외 학술대회 참여, 소형 연구과제와 출판 지원 등을 연결한다.
김 원장은 인력 확대에 맞는 연구 공간 확보를 당장의 과제로 꼽았다.
그는 "연구교수와 연구원이 안정적으로 연구하려면 연구실과 강의실, 회의공간 같은 기본적인 물질적 토대가 있어야 한다"며 "연구 인력이 늘어난 만큼 공간과 연구환경도 함께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7년 뒤에는 연구소의 조직 자체를 한 단계 키우는 구상도 세웠다. HK3.0 종료 이후 탐라문화연구원을 '탐라학술원'으로 확대 개편하고 부설 쿰다인문학회를 설립하는 방안이 담겼다. 국가 연구비 지원이 끝난 뒤에도 연구인력과 재원을 자체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다.
논문과 책도 남긴다. 사업 기간 국내 전문학술지 논문 104편과 국제저명학술지 논문 6편, 쿰다인문학총서 12권을 목표로 잡았다. 국내외 학술대회 18회와 콜로키움 44회도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김 원장이 생각하는 7년 뒤의 성과는 숫자만은 아니다.
"세계적인 연구기관이 제주에 하나 있다면 제주대학교에도, 제주에도 큰 자산이 됩니다. Qumda라는 제주에서 출발한 생각을 세계적으로 확장하고, 여기서 만들어진 모델이 다른 지역에서도 활용되는 기반을 만드는 것, 그게 이번 7년 동안 꼭 시작하고 싶은 일입니다."
[email protected] 정용복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