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계산기' 두드리는 동맹

파이낸셜뉴스
홍채완 국제부 기자
홍채완 국제부 기자

미국의 패권은 사라지지 않았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과 달러 패권을 보유한 미국은 여전히 강국이다. 달라진 건 국가 정상이 그 힘을 사용하는 방식뿐이다. 힘을 쓸 수 있는가보다 쓸 만한가를 먼저 따지는 것이다. 패권이 쇠퇴한 것이 아니라 패권국 정상조차 손익계산에 깐깐해진 시대가 왔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이라크전 당시와 달리 이번 이란전에선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았다. 한미 훈련도 축소했고, 북핵 역시 폐기보다는 관리의 관점으로 선회했다. 미국의 코가 석자라기보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코가 석자이기 때문이다.

파산 위기에 몰린 큰아버지가 남의 제삿날부터 챙길 리 없다. 집안에서 가장 힘센 사람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당장 자기 살림부터 건사해야 한다. 지금 트럼프의 처지가 이와 같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지지율이 30%대까지 추락한 그의 입장에서, 지상군 투입으로 늘어날 미군 사상자와 기타 전쟁비용은 11월 투표장에서의 자기 자신과 공화당에 돌아올 청구서임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사실 트럼프 한 사람만 사리고 있는 것도 아니다. 세계가 그렇게 움직인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국가들도 이란전 참전에 선을 그었고, 한국도 마찬가지다. 1970년대 한국과 이란은 서울에 테헤란로, 테헤란에 서울로를 만들 만큼 가까웠으나 한국은 이란을 돕지 않았다. 물론 당시 이란은 친미 노선이었기에 지금과 단순 비교하긴 어렵지만, 한국은 이번 전쟁에서 혈맹인 미국의 편에도 서지 않았다. 미국이 6·25전쟁에서 한국을 위해 싸웠고 한국도 이라크전에 파병했지만, 과거의 역사가 오늘의 국익을 대신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는 오랜 우호가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다. 과거의 혈맹이라는 이유만으로 남의 전쟁에 자국의 군인과 경제적 이익을 희생시키는 시대가 끝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 등 소수 주변국들의 중재는 확전으로 자국이 입을 피해를 막으려는 선택일 뿐이다.

결국 국제정치는 가장 오래된 원칙으로 돌아왔다. 영원한 우방도, 적도 없으며, 영원한 것은 국익뿐이다. 패권국마저 힘을 국익에 따라 혹은 때에 따라 골라 쓰고, 세계 경찰이 퇴장하는 자리엔 새로운 경찰이 반드시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느슨한' 동맹을 옆에 두고 각국이 자신의 계산기를 두드리는 각자도생의 시대인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역시 '누구의 편인가'보다 '무엇이 한국의 이익인가'를 물어야 한다. 명분에 외교를 맡길 수는 없다. 미국조차 '미국에 무엇이 남는가'를 묻는 시대라면 한국도 가장 먼저 '한국엔 무엇이 남는가'를 물어야 한다.

[email protected] 홍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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