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건강

"호르몬 안 건드리고 탈모 잡는다"… 성영관 교수가 연 비호르몬성 신약의 길 [탈모 전문가 100인 인터뷰]

김현선 기자
파이낸셜뉴스

[성영관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를 만나다]
탈모 유발하는 DHT 호르몬 구체적 작용 밝혀, 호르몬 관여 않고 탈모 인자 표적 차단
비호르몬성 신약 통해 성별 상관 없이 탈모 치료 가능, 상용화까지 10년 예상
핵심 기술 세상 밖으로 꺼낼 때... 한국, 세계 탈모 치료 표준 'K-BIO' 강국으로 거듭날 것

정상적으로 있어야 할 것들이 부재할 때 그것은 상실을 불러옵니다. 우리에게 깊고 무거운 상실을 일으키는 존재, 시대의 화두로 떠오른 탈모. 탈모를 바로 마주하고 극복하기 위해 탈모 치료 1세대 개척자인 의학박사를 시작으로 100인의 탈모 전문가를 만납니다. '탈모'라는 두 글자 뒤 펼쳐질 새로운 이야기들을 기대해 주세요. [편집자 주]

지난 20년간 기초의학 분야에서 탈모 치료를 연구해 온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성영관 교수. 남성 탈모의 기전과 모낭 복제 기술 개발에 힘써왔다./사진=성영관 교수 제공
지난 20년간 기초의학 분야에서 탈모 치료를 연구해 온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성영관 교수. 남성 탈모의 기전과 모낭 복제 기술 개발에 힘써왔다./사진=성영관 교수 제공

[파이낸셜뉴스] 모발이식 수술을 통해 대머리도 풍성한 머리숱으로 거듭나는 시대다. 하루 한 알 치료제를 복용하면 지독한 탈모 유전자를 제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초의학을 연구하는 연구진과 임상에서 환자를 대하는 의료진은 한결같이 현시점 탈모 치료의 한계를 논한다. 비탈모 부위에 의존하는 모발이식, 지극히 제한적인 종류의 치료제, 치료제의 부작용과 치료제에 효과를 보지 못하는 사례까지.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성영관 교수 역시 향후 탈모 치료의 방향이 단순히 모낭을 옮겨 심거나 보존하는 것이 아닌 '근본적 재생 및 정밀 치료'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성 교수는 그 목표를 위해 지난 20년 간 연구실에서 남성형 탈모의 기전을 밝히고 모낭 복제 기술을 발전시켜 왔으며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호르몬에 관여하지 않는 비호르몬성 탈모 치료 신약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27일 성 교수를 만나 탈모 치료 연구의 현주소를 들었다.

"호르몬 안 건드리고 탈모 잡는다"… 성영관 교수가 연 비호르몬성 신약의 길 [탈모 전문가 100인 인터뷰]

탈모 유발하는 DHT호르몬 구체적 작용 밝혀내... 피부과학 최고 권위지 '피부연구학회지' 수록

― 20년째 기초의학 분야에서 탈모 연구를 해왔다. 연구를 요약한다면.
▲지난 20년의 연구는 크게 두 단계로 나눌 수 있겠다. 초기 10년은 남성형 탈모의 기전을 밝히는 데 주력했고 이후 10년은 '모낭 클로닝(Cloning)', 그러니까 체외에서 새로운 모낭을 만들어 내는 연구에 집중했다.

― 남성형 탈모의 기전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DHT)으로 변하면서 모낭의 노화를 일으키는 것 아닌가.
▲맞다. 해당 기전에서 더 나아가 DHT가 모낭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밝혀낸 것이다. DHT가 모발을 만들어 내는 모유두세포 안으로 침투해 안드로겐 수용체와 결합하면 특정 신호가 활성화되는데, 이 자극을 받은 모유두세포가 모발을 공격하는 인자인 DKK-1, 인터루킨-6(IL-6), 프로스타글란딘 D2(PGD2)를 분비한다.

DKK-1은 모발의 성장 신호를 강제로 차단하고, IL-6은 세포에 염증 반응과 퇴행을 유도해 모발을 일찍 탈락시킨다. PGD2는 모낭의 크기를 줄여 모발이 가늘어지게 만든다. 이 세 가지 인자의 작용 때문에 모발의 성장기가 짧아지고 모발이 가늘어지는 등 탈모 증상이 나타난다.

― 각기 다른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 다발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이 놀랍다. 세계적으로 처음 밝혀낸 사실인가.
▲지금까지 의학계에서는 DHT가 탈모를 일으킨다는 큰 틀 안에서 탈모를 연구했다. 어떤 신호 물질이 어떤 과정으로 모낭을 파괴하는지 구체적으로 밝힌 연구는 처음이다. 해당 연구는 피부 과학 분야 최고 권위지인 '피부연구학회지(JID, Journal of Investigative Dermatology)'를 통해 소개됐고, 이 외에도 권위 있는 국제 학술지에 후속 연구들을 게재하며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가임기 여성, 노년층까지 사용할 수 있는 '비호르몬성 탈모 치료 신약' 연구 박차... 정부 지원으로 속도

― 새로운 기전을 밝혀 냈다면, 새로운 치료법도 연구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남성형 탈모의 치료제는 남성호르몬에 관여하는 피나스테리드와 두타스테리드가 쓰인다. 이제 비호르몬성 탈모 치료를 기대해도 되겠나.
▲실제로 정부와 경북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창업 및 기술사업화 프로젝트 과제의 일환으로 '비호르몬성 탈모 치료 신약'을 연구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남성형 탈모 환자에서는 세포 밖으로 분비돼 특정 명령을 전달하는 물질인 'PGD2'의 농도가 매우 높게 나타난다. 이 PGD2가 특정 수용체와 결합하면 모낭의 크기가 줄어들고 모발이 가늘어진다. 우리는 PGD2가 수용체와 결합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기전을 개발했다. 쉽게 말하자면 불꽃(PGD2)이 모낭이라는 집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그 입구(수용체)를 닫아버리는 것이다.

나아가 PGD2는 모낭 주변의 미세 염증 신호를 일으키기도 하는데, 신약을 통해 미세 염증 신호까지 막아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기존의 피나스테리드나 두타스테리드와 같이 남성호르몬 생성 자체를 억제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기존 치료제가 가진 성기능 저하 등의 부작용을 근본적으로 피할 수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 반가운 소식이다. 지금까지 여성이나 노인은 호르몬에 관여하는 탈모 치료제를 사용할 수 없어 애를 먹지 않았나. 새로운 치료제는 다양한 탈모 치료에 사용할 수 있나.
▲개발 중인 비호르몬성 신약은 성별이나 연령 때문에 약물의 효과를 볼 수 없었던 탈모 환자에게 새로운 선택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호르몬에 관여하는 대신 모낭을 보호하는 근본적인 치료 방법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호르몬 교란으로 기형아 출산 우려가 있는 가임기 여성, 호르몬 불균형이 생긴 폐경기 여성, 기립성 저혈압이나 근감소증과 같은 부작용을 우려하는 노인까지 전방위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모발이식 최고 수준 자랑하는 한국, 'K-BIO 혁신 신약'으로 글로벌 탈모 치료 표준 선도할 것

탈모 시장의 판을 바꿀 수도 있겠다.
▲탈모 치료제 개발은 피나스테리드와 두타스테리드, 미녹시딜이 승인된 이후 30년 넘게 정체됐다. 치료제가 다양하지 않으니 약물의 부작용이나 효과의 한계 때문에 치료를 주저하거나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이 시장의 규모는 연간 수조원에 달한다. 심지어 매년 10% 가까이 성장하고 있다.

종합해 보자면 탈모는 세대를 막론하고 전범위적으로 퍼져있으며 절박한 사람도 많다는 뜻이다. 우리는 신약을 통해 심리적 위축과 스트레스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고, 사회 전반의 활력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나아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탈모 치료나 셀프케어에 들어가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새로운 치료제는 언제 만나볼 수 있나. 병원이나 약국에서 비호르몬성 탈모 치료제를 권할 날이 기대된다.
▲ 경구형 치료제의 경우 일반적인 신약 개발 트랙을 따를 경우 출시까지 8년, 길게는 10년 정도를 예상한다. 다만 도포형(바르는) 치료제는 경구형보다 전신 흡수율이 낮아 안전성 확보가 용이하다는 점에서 그 기간을 1~2년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도포형 치료제로 시작해 경구형 치료제까지 단계별로 출시할 계획이다.

―연구자로서 탈모 의학의 현주소와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흔히 탈모 치료의 종착역은 모발이식이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모발이식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1990년대 경북대병원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최식모기(Choi Implanter)' 역시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지 않나. 대한민국 탈모 의학의 임상 역량이 투영된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외과적 모발이식은 환자 본인의 비탈모 부위 모낭 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 약물치료 역시 전신적 부작용이나 장기 복용 시 효과 감퇴 등의 문제가 따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탈모의 메커니즘 자체를 표적을 억제하거나 근본적인 재생 치료 및 정밀 세포 치료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지난 20년을 연구에 힘썼다면 앞으로 10년은 그간 연구한 핵심 기술을 세상 밖으로 꺼내 상용할 예정이다. 많은 연구자들이 함께 해준다면 우리나라가 곧 표적 신약, 줄기세포, 유전자 조절 등 첨단 바이오 기술을 융합한 'K-BIO 혁신 신약'으로 글로벌 탈모 치료의 표준을 제시할 날이 올 것이라 확신한다.

[email protected] 김현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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