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제주 '에너지·우주·바이오' 키운다는데… 전기료 할인선 제외
같은 날 엇갈린 두 지역산업 정책
성장엔진에 재정·금융 등 7대 지원
비수도권 산업용 최대 10% 인하
제주는 전력시장 실증 이유로 빠져
기업유치 인센티브 보완책이 관건
【파이낸셜뉴스 제주=정용복 기자】 정부가 제주를 에너지·우주·바이오 미래산업의 실증 거점으로 키우겠다며 재정과 금융, 세제 등 7대 지원 패키지를 예고했지만 기업 입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산업용 전기요금 인하 대상에서는 제주를 제외했다. 앞으로 기업 유치를 확대하려면 다른 비수도권이 받게 될 최대 10%의 전기료 인하에 상응하는 경쟁력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과제가 남았다.
공교롭게 두 정책은 지난 26일 동시에 공개됐다. 정부는 이날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 제주권 성장엔진산업으로 재생에너지 융복합시스템과 소형위성시스템, 청정바이오 웰니스 등 3개 분야를 확정했다.
제주권의 미래산업 방향을 압축한 슬로건도 '미래산업 프런티어 실증지'로 정했다. 성장엔진산업은 정부가 지역의 산업 여건과 기업 투자계획, 미래 성장잠재력, 국가 산업전략을 종합해 권역별로 선정한 핵심 산업이다. 정부는 여기에 재정·금융·세제·제도·인재·기술·인프라 등 범부처 7대 지원 패키지를 연결해 기업 투자와 산업생태계 조성을 뒷받침할 계획이다.
제주도 역시 산업통상부와 26차례 고위급·실무협의를 거쳐 3대 성장엔진을 구체화했다.
특히 에너지 분야에서는 제주가 가진 높은 재생에너지 비중과 독립 전력계통을 활용해 에너지 변환·저장과 인공지능(AI) 기반 분산전력, 탄소크레딧 등 새로운 에너지산업을 실증하고 사업화하는 구상을 세웠다.
우주 분야에서는 소형위성 제작부터 해상발사, 관제·운영과 위성데이터 활용까지 연결하는 산업생태계를 구축한다. 바이오 분야는 제주 청정자원을 활용한 기능성 식음료와 뷰티에서 의료관광, AI·유전체 기반 디지털 헬스케어까지 사업영역을 넓힌다.
제주도는 9월부터 성장엔진별 세부 육성방안을 마련하고 연내 제주권 성장엔진 육성계획을 확정할 예정이다. 기업 투자계획과 연계한 핵심사업을 발굴하고 정부의 7대 지원을 끌어와 기업 집적과 일자리 창출로 연결한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같은 날 기후에너지환경부와 한국전력이 내놓은 '산업용 지역 전기요금제'에서는 제주가 빠졌다. 새 요금제는 전국적으로 동일하게 적용해 온 산업용 전기요금에 '지역별 조정요금'을 추가해 지역마다 다른 전력 생산·소비 여건을 가격에 반영하는 제도다.
전국을 전력계통에 따라 수도권 남부와 수도권 북부, 중부권, 남부권 등 4개 광역권으로 나눈 뒤 지방우대지수와 산업위기지역 등을 반영한 4개 균형성장 권역을 결합해 모두 11개 지역으로 세분화한다.
산정 기준은 송전비용과 전력자급률, 균형성장 등 세 가지다. 전력을 많이 생산하고 상대적으로 산업 기반이 취약한 지역일수록 전기요금을 낮춰 기업과 전력수요의 지방 이전을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할인 폭도 상당하다. 수도권 남부는 현행 요금을 유지하거나 1원 안팎에서 조정되는 반면 인천 등이 포함된 수도권 북부는 최대 약 10원, 강원·충청 중부권은 최대 약 15원까지 낮아진다.
원전과 재생에너지 설비가 밀집한 경상·전라 남부권은 2025년 산업용 전력 평균 판매단가 181.9원의 약 10%인 최대 18원까지 낮아질 수 있다.
정부는 산업용 전기요금 부담이 전체적으로 약 2조8000억원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정부는 전기요금 인하를 통해 첨단산업의 비수도권 투자를 촉진하고 기존 지방기업의 생산비 부담과 수출 경쟁력을 개선하겠다는 목적을 분명히 했다.
그런데 제주에는 이 가격 신호가 적용되지 않는다. 기후부와 한전은 제주를 '도서 지역 및 전력수급 특수성'을 이유로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 배경에는 육지와 다른 제주 전력시장이 있다. 한전에 따르면 2025년 발전량 기준 제주 재생에너지 비중은 약 65%로 육지 약 8%보다 크게 높다. 높은 재생에너지 비중을 활용해 육지 도입에 앞서 여러 전력시장 제도를 실증하는 테스트베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한전의 설명이다.
제주에서는 실시간 전력시장과 재생에너지 입찰제, 에너지저장장치(ESS) 중앙계약시장 등을 먼저 운영하며 새로운 도매시장 제도를 시험하고 있다.
소매시장에서도 기존 시간대별 요금제(TOU)뿐 아니라 피크세이브 요금제와 동적 요금제, 재생에너지 충전요금제 등 도매가격과 실시간 연계가 필요한 제도의 실증이 검토되고 있다.
한전은 이런 상황에서 전국 산업용 지역 전기요금제를 제주에 동시에 적용할 경우 별도 실증 중인 전력시장과 소매요금 체계의 효과를 구분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전 관계자는 "제주는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 실시간시장과 재생에너지 입찰제 등 육지에 앞서 새로운 전력시장 제도를 실증하고 있다"며 "산업용 지역 전기요금제에서 제주를 제외한 것은 혜택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존 실증체계의 연속성을 유지하고 향후 전력시장 제도 발전을 위한 테스트베드 기능을 지속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기업의 입장에서다. 정부는 산업용 지역 전기요금제를 도입하는 목적 가운데 하나로 '기업의 지역 투자'를 명시했다. 특히 생산비 부담을 낮춰 첨단산업의 비수도권 이전을 유인하겠다는 정책이다.
제주 역시 같은 정부로부터 에너지와 우주, 바이오 기업을 끌어모아야 하는 성장엔진산업 거점으로 선정됐다.
다른 비수도권과 경쟁해 기업을 유치해야 하는 제주에 전기요금이라는 직접적인 비용 인센티브가 빠진다면 재정·금융·세제 등 다른 지원이 그 차이를 얼마나 상쇄할지가 중요해진다.
특히 제주가 성장엔진으로 육성하는 에너지 분야는 전력시장 자체가 산업 기반이고, 향후 AI와 데이터 활용산업 등 전력 수요가 큰 기업 유치까지 확대될 경우 전기요금은 입지 결정에서 무시하기 어려운 요소가 된다.
정부의 두 정책이 실제로 충돌하는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성장엔진 7대 패키지는 지원 방향만 제시됐고 제주에 적용될 구체적인 재정·세제·인프라 지원 규모는 연내 육성계획을 통해 구체화된다. 산업용 지역 전기요금제 역시 공청회 단계의 설계안으로 권역 구분과 최종 요금은 확정되지 않았다.
따라서 관건은 제주를 별도 전력시장 실증지역으로 유지하면서도 다른 비수도권에 생기는 전기요금 인하 효과에 상응하는 기업유치 수단을 마련할 수 있느냐다.
제주도가 연내 마련할 성장엔진 육성계획에도 이 문제가 반영될 필요가 있다. 기업 투자에 필요한 전력가격과 계통 접속, 재생에너지 활용, 저장장치, 규제특례 등을 하나의 패키지로 설계해야 '미래산업 프런티어 실증지'라는 정부 전략과 실제 기업의 입지 조건 사이 간극을 줄일 수 있다.
위성곤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성장엔진산업 선정과 관련해 "제주의 지역적 강점과 성장 가능성을 국가 차원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발전시킬 중요한 계기"라며 "기업 투자와 실증·사업화가 이어지는 산업생태계를 조성해 제주를 대한민국 미래산업의 실증·혁신 거점으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제주를 미래산업 실증지로 지정한 효과가 실제 기업 투자로 이어질지는 7대 지원 패키지의 구체적인 내용과 함께 '전기료 할인 없는 제주'의 비용 경쟁력을 어떻게 보완하느냐에 달리게 됐다.
[email protected] 정용복 기자




